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었다고? 아니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


최종심 마지막 투표에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11회 세계문학상 대상 작품으로 확정됐을 때만 해도 심사위원 9명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2차 예심에 오른 4편 중 상대적으로 문학성이 높다는 데 심사위원 과반수가 동의한 결과였다. 우수작으로 결정된 3편도 각기 다양한 소재와 가독성으로 충분히 독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힘을 지녔다는 데 동의했다. 정작 심사위원들의 탄성이 터진 대목은 대상 수상자의 이력에 대한 짧은 보고에서였다.

김근우(35)씨에게 전화로 대상 선정 사실을 통보하면서 간략한 이력을 물었다. 어느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멈칫거리다가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언제 졸업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중학교가 최종학력이라고 답했다. 그는 하반신이 불편해 목발을 짚고 다닌다고 했다. 편집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 통화를 끝냈다. 이 사실을 논산 탑정호 박범신 집 거실에 모여 있던 심사위원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 일제히 탄성 같은 한숨을 쉬었다.

목발을 짚고 편집국에 나온 그는 전화 통화에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던 것보다 훨씬 불편한 걸음걸이였다. 사진을 찍고 인근 커피숍에 정좌해 소감을 묻자 그는 짧게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문들에도 그의 대답은 두어 문장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천성이라 외롭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면서 “남들과 같이 있을 때 오히려 힘든 전형적인 내성적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질문에는 자신의 의견을 더 길게 말하고 또 어떤 질문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는, 적어도 우울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맑은 얼굴의 청년이었다.

‘고양이를 잡아먹는 오리’가 현실에서 가능한가.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었으면 먹었지, 오리가 그 작은 부리로 어찌 그 날렵한 고양이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김근우는 은평구 불광천을 매일 산책하면서 오리를 보다가 가끔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접하면서 이 둘을 같이 엮어볼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엉뚱한 작품이 이번 수상작인데, 이 소설은 88만원세대인 남자와 여자, 꼬마가 셋이서 한 팀이 돼 노인의 엉뚱한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이야기다. 자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사진 찍어오라는 과제인데, 노인조차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지는 모른다. 김근우는 가짜와 진짜 사이에 갇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양립시킬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신경계의 이상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9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그나마 나아진 게 지금 상태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저히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둔 뒤 1996년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피시통신 게시판에 ‘바람의 마도사’를 연재해 인기를 얻어 출판까지 했다.

이후 ‘흑기사’ ‘괴수’ ‘위령’ ‘피리새’ 등을 펴냈지만 그는 장르소설을 쓰는 ‘가짜’ 소설가라는 자의식을 얻었을 뿐이다. 그가 3년 전부터 다시 소설의 길을 가기 위해 각종 공모전에 소설을 투고하다가 이번에 다시 나아갈 명분을 얻었다. 실제로 이번 수상작의 등장인물인 장르작가 남자는 “재미있는 소설, 잘 쓴 소설, 재미 없는 소설, 잘 쓰지 못한 소설은 있어도 진짜, 가짜는 따로 없다”면서 “남들이 말하는 진짜가 아니라 나의 진짜를 쓰고 싶었다”고 소설에서 토로한다.

김근우는 롯데백화점에서 청소 일을 한다는 어머니 이신옥(64)씨를 ‘강철엄마’라고 표현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놓고,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울더라도 나중에 우는 엄마라고 했다. 그 강철엄마는 수상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고 다만 안아주었다고 했다.

서울 바깥으로 나간 적이 7살 외가에 간 이후로는 아직 없다는 그에게 갇혀 지내는 삶이 소설에는 방해요인 아니냐고 물었다. 그이 또한 솔직하게 안타깝다면서 국내에서는 ‘경주’와 바깥으로는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 가고 싶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와 모차르트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소설이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했다. 이 고전적인 청년에게 날개를 달아줄 파트너가 생기면 좋겠다. 왜 소설에 매달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여전히 담담한 톤으로 답했다.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게 가슴에 맺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을 대신해 언어로 구체화하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주는, 대신 울어주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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