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어떤 사이
성 명 : 이한슬

그림=김영미 화가


루에게 먼저 같이 살자고 한 건 그녀였다. 구부정한 자세로, 부동산 유리창에 붙어있는 매물 공고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루를 보았을 때였다. 내 집에 빈방이 있어. 그녀가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루는 그녀에게 방을 볼 수 있는지 물었고, 방을 보러 온 그날 저녁부터 그녀와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전까지 그녀가 루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이따금씩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다는 것뿐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이긴 해도 가파른 언덕에 있는 정류장이라 버스가 많지 않았고 배차간격도 긴 편이었다. 이 년 전, 회사와 가까우면서 제일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한 것이었는데 살다 보니 동네에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도 아침 일곱 시 버스정류장에는 언제나 루뿐이었다. 청바지에 낡은 컨버스를 신고 있었고, 여행을 하는 사람처럼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릴 때면 그녀는 루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큰 키에 마른 체구, 짧은 녹갈색 머리칼, 회색빛 눈동자를 가진 외국인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사실이 그러니까. 하지만 대학시절에 동기들과 함께 갔던 삼 주간의 유럽여행이 외국에 가본 유일한 기억이었던 그녀는―게다가 그 여행은 동기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피곤했던 기분만이 남았고,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낯선 외국인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소년 같은 행색 때문에 처음에는 루가 남자인 줄 알았지만 몇 번 더 마주친 뒤에는 어쩐지 여자처럼 느껴졌다. 하이. 무심코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네 온 루의 목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반대로 돌려 버렸다. 루와 한집에 살게 될 거라고는, 게다가 그렇게 말하는 쪽이 자신이 되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무렵이었다.

루는 짐이 별로 없었다. 바퀴가 달린 28인치 여행가방 한 개와 늘 메고 있던 배낭이 전부였다. 그녀가 여행을 하는 중인지 묻자 루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말한 뒤에, 여행 중인 것도 맞다고 덧붙였다. 그건 한국이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는 방에 있는 물건들은 마음대로 써도 좋다고 루에게 말했다. 등받이를 접을 수 있는 소파베드와 3단 서랍장, 철제 책상과 접이식 의자는 그녀가 이사 오기 전부터 그 방에 있던 것들이었다. 집주인은 이전 세입자가 두고 간 모양이라며 마음대로 처분해도 된다고 했다. 버리기엔 가구들의 상태가 좋았다. 살면서 차차 정리하려던 것이 어느새 이 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녀의 침실은 훨씬 더 넓고 햇빛이 잘 드는 반대편 방이었기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 손거울이나 탁상달력, 카세트테이프 겸용 라디오, 낡은 성경책과 은행 로고가 수놓아져 있는 무릎 담요는 엄마가 쓰던 것들이었다. 이따금씩 집안일을 해주러 온 엄마가 그 방에 머무르면서 물건들이 늘어나 있었다.

쓰지 않을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루에게 그녀는 반쯤 열린 루의 방문 앞에 빈 상자를 내려놓으며 여기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뒤돌아서는 순간 딸깍, 거리는 소리와 함께 루의 방 안에 노란 불이 켜졌다. 루가 책상 위에 놔둔 스탠드를 켠 모양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성경책을 보다 잠이 드는 습관이 있던 엄마를 위해서 그녀가 몇 주 전에 사둔 것이었다. 너무 밝으면 눈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점원의 말에 그녀는 버튼으로 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탠드로 골랐다. 스탠드를 보고 기뻐할 엄마의 얼굴을 자연스레 그려보았던 기억도 났다. 열린 문틈으로 바닥을 따라 곧게 뻗어 나온 빛을, 그녀는 불 꺼진 거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룸메이트로서 루는 그녀와 잘 맞아 보였다. 루는 아침에 일찍 움직이면서도 그녀처럼 집에서 아침을 먹지 않았다. 화장실이 하나였으나 화장실 입구에 작은 간이 세면대가 별도로 달려 있어서 아침 시간에 서로 부딪칠 일도 없었다. 방은 각자 알아서, 거실과 부엌 같은 공용 구역은 격주로 돌아가면서 청소했다. 쓰레기와 분리수거는 루가 했고 그녀는 대신 욕실 청소를 맡았다. 두 사람은 성실하게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했다. 집은 대체로 깨끗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찾아와 주던 시절에 비하면 영 두서가 없어 보였고 정갈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식기받침대 위에 컵들과 접시들, 냄비들이 뒤섞여 아슬아슬한 탑을 이룬 모습이나 청소기를 돌려도 금세 서걱거리는 바닥, 개는 것을 잊는 바람에 수건들이 며칠씩 빨래건조대에 방치되는 모습 모두 그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처럼 느껴졌다. 햇빛을 너무 오래 받으면 수건들의 촉감이 까칠까칠해진다는 것도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자연스레 씻기 전에 한 장씩 걷어 쓰게 되면서 수건을 갤 필요도 없어졌다.

엄마는 집안일에 대해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었다. 평생 동안 집안일을 해온 여자들이 그렇듯이 곳곳에 만성적인 관절 통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결국 그 바람에 허리 수술까지 받았음에도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독립한 딸의 살림살이까지도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알아서 할 테니 올 필요 없다고 그녀가 거듭 부탁해 봐도 내가 이것 말고는 해줄 게 없잖니, 라며 엄마는 가뿐히 넘겨 버리곤 했다.

엄마가 다녀가고 나면 색깔별로 층층이 쌓인 보송보송한 수건들이 욕실 선반에 가지런히 놓이곤 했다. 바닥은 매끄러웠고, 식기받침대 위에는 컵들과 접시들, 냄비들이 각각 줄지어 정리되어 있었으며 환기를 시켰는지 공기 냄새도 달라져 있었다. 자신이 어질러놓았던 모든 것들이 엄마의 규칙에 제자리에 돌아가 있는 모습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고작 한 달에 한두 번일 뿐인데도 그 광경을 마주할 때마다 고마운 마음보다 짜증이 앞섰다. 마치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울타리에 갇혀 버린 기분이었다.

도움이 없었더라면 구할 수 없었던 집이었다는 사실도 마음 한 구석에 부채감처럼 남아 있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는데 보증금이 절반 가까이 부족하다고 토로하듯 말한 다음 날, 아버지로부터 부족한 금액과 정확히 같은 액수의 돈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다.

―미련하게 굴지 말고 받아라.

전화를 걸었을 때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먼저 말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아버지에게 돈을 돌려주려던 그녀를 말린 건 엄마였다. 너도 참, 아버지 그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닌데. 아버지가 딸 도와주는 게 행복이 아니고 뭐겠니. 다용도실 선반을 정리하다가 넘어지면서 다친 허리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엄마는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그녀를 타일렀다. 갚을게요. 그녀가 그렇게 써서 보낸 문자메시지에 아버지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눌 때면 루와 그녀는 언제나 영어를 사용했다. 한국에 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루는 몇 개의 짧은 단어들 외에는 한국어를 전혀 익히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일을 더 쉽게 구한 것 같다고도 했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하니 어학원에서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학창시절 내내 강제로 견뎌내야 했던 주입식 영어 수업의 기억들과 스마트폰 번역기, 그리고 서로 알아들으려는 노력이 모이니 딱히 불가능한 대화는 없어 보였다. 그 이상의 실력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두 사람 사이에 없었다. 둘 다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집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각자의 방에서 보냈기에 마주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보일러 가동법과 에어컨, 텔레비전 리모컨의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언제든 편하게 사용해도 된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루가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루와 함께 산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외근을 마치고 평소보다 몇 시간 일찍 집에 돌아와 보니 루가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실내에는 진한 고기 냄새가 내려앉아 있었다. 같이 먹겠는지 묻는 루의 말에 그녀는 망설이느라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긍정의 표시로 알아들었는지 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를 열고 접시에 음식을 옮겨 담았다.

루가 식탁에 내려놓은 접시에는 아이 주먹만 한 고깃덩어리들 서너 개와 조각난 감자들 위로 크림소스가 부어져 있었다. 스웨덴식 미트볼이라는 루의 말에 그녀는 처음 먹어본다고, 그렇지만 정말 맛이 있어 보인다고 대답했다. 루가 웃으며 대학생 시절에 학교 앞 스웨덴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말했다. 돈도 적게 주고 일도 고됐지만 맛은 꽤 괜찮은 곳이었다는 루의 이야기에 그녀는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루가 입고 있는 크림색 앞치마의 가슴 부근에 자수로 수놓아진 연꽃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건 몇 년 전 엄마가 이모들과 갔던 베트남 여행에서 그녀를 위해 사온 선물이었다. 본가에 갈 때마다 똑같은 모양의 연꽃이 새겨진 갈색 앞치마를 입은 엄마가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움직이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마다 엄마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가족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데에 평생을 쓰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까지도 말이다.

―이거, 침대 아래에서 찾아냈어.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루가 앞치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 예전에 그 방에서 살던 사람이 놓고 갔나 봐.

루가 입 안에 음식을 잔뜩 문 채 오물거리며 덧붙였다. 그녀는 묵묵히 음식을 입에 넣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두 사람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셨다. 루가 함께 산 이래로 거실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녁만 먹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가 민망한 마음에 그녀가 제안한 것이었지만 어색한 분위기까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녀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대개가 한국어 프로그램들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멈췄을 때, 하얀 빙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면이 나왔다. 펭귄이나 물개, 곰들의 모습들도 간간이 보였지만 그보다는 북극의 빙하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듯했다. 내레이션이 영어로 나오면서도 한국어 자막이 삽입되어 있었다. 두 사람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 같았다.

그녀와 루는 하얀 눈덩이들이 부서져 내리는 모습을 얼마간 지켜보았다. 바람이 부는 소리 외에는 대체로 고요한 세계였다. 빙하끼리 서로 충돌해서 금이 가거나 덩어리째 무너져 내리고 부서질 때만이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부서진 빙하는 그대로 얼었다가 다시 녹으면서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했다. 커다란 스탠드 조명만 켜놓은 거실에서 하얗게 뒤덮인 화면 속의 세계는 유난히 빛나 보였다. 그건 낯선 만큼 경이로워 보였고,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광경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텔레비전의 좋은 점이야, 그렇지?

루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평소라면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혼자 나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 집에 남는 텔레비전이 있어서 들고 오기는 했지만 텔레비전을 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에 엄마는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켜놓곤 했다. 텔레비전을 켜둔 채로 엄마는 청소와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요리를 했다. 회사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기던 아버지는 좀처럼 일찍 귀가하는 일이 없었기에 엄마의 습관을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 독립했을 때, 마침내 텔레비전 소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게 느껴질 정도였다.

때때로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문밖까지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로 그녀는 엄마가 집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발, 전화 좀 하고 오면 좋잖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설거지는 언제 할 생각이었냐고, 물을 마실 컵 하나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응수했다. 보고 있던 연속극 줄거리를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그녀가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 몇 번이나 텔레비전을 싫어한다고 말해도 엄마는 그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여겼다. 어릴 적에는 만화영화 봐야 한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더니. 늘 그런 식이었다. 엄마는 그녀가 어릴 적에 좋아했던 음식들이나 함께 갔던 여행에 대해서는 또렷하게 기억하면서도 정작 어른이 된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엄마를 몰랐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저 코트 예쁘네. 너 맘에 들면 엄마가 사줄게. 이리 와 봐.

홈쇼핑 채널을 보며 그녀를 향해 거듭 손짓하는 엄마를 거실에 남겨둔 채 그녀는 주저 없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그게 자신이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되리라고는, 그녀는 그때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따금씩 두 사람의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가 혼자 살 때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이들에게 루는 모두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회사에 다녀오면 신문구독 신청서나 헬스클럽 할인 문구가 적힌 광고지들, 요구르트와 우유 또는 십자가가 그려진 전단들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무한테나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루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주말에 말소리가 들려 나가보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현관 앞에 서있는 루가 보였다. 난처한 표정으로 루와 마주 보고 있던 이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신문 보세요, 우유 드세요, 라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런 부류의 사람들만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루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음식이나 와인, 맥주들을 가득 들고 초인종을 누르는 이들도 있었다. 루의 친구들로, 루와 마찬가지로 어딘가에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들이었다. 두세 명, 많을 때는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오기도 했다. 그들이 찾아오기 며칠 전에 루는 그녀에게 먼저 허락을 구했다. 언제나 예고된 방문이었고, 고작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단 몇 사람이 더 왔을 뿐인데도 조용했던 집이 떠들썩하게 느껴졌다. 거실 탁자 위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종류의 음식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밀며 그들이 앉으라고 권하면 그녀는 얼마 동안 그 사이에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꼭 외국 드라마 속의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루와 친구들의 대화는 너무 빨라서 절반 정도밖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다 알아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니 마음이 편했다. 종종 루가 유창한 불어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자신과 그들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 또 만나.

루와 친구들은 단 한 번의 어울림으로도 서로를 친구라고 칭했고 집을 떠날 때면 다음을 기약했다. 그녀는 그들의 룰을 따랐다. 그래. 언제든지 놀러 와. 그들의 경쾌한 어조를 따라 그녀도 답했다. 물론 그녀는 그런 식으로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루를 찾아온 이들이었다. 그녀로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이들이었고,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할 이들이었다. 다시 보지 못한다 해도 그녀의 인생에서,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이였다. 그녀가 어떤 사람처럼 보였을지, 나중에 후회하게 될 말을 해버리지는 않았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해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아파할 일도, 참다못해 화를 냈다가 그 사실에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일도 없었다.

―여자애치곤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구석이 있지. 저래서 누가 데려가려고 하겠어.

열다섯 살 무렵, 그녀가 자신의 방을 마구 어질러 놓은 사촌들을 모두 쫓아낸 뒤에 문을 걸어 잠근 적이 있었다. 명절이었고 집에는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아버지의 말이 벽 너머 그녀에게까지 또렷하게 들려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딸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아버지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크면 반드시 이 집을 나가겠다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던 나이였다. 그렇게 여기면서도 그 시절의 생채기는 십오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낫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아버지와의 골이 깊어지지 않은 건 엄마 덕분이었다.

―어디 당신만큼 괴팍할까. 다 당신 닮아서 그런 거죠, 뭐.

엄마의 말에 친척들은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다. 몇 달간 아버지와 말을 섞지 않으려는 그녀를 달랜 것도 엄마였다. 아빠가 상냥하게 말할 줄 몰라서 그래. 그녀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달래준 것도 엄마였다.



그림=김영미 화가


이 년 전, 그녀가 대기업 1차 면접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도 직접 만든 음식들로 식탁을 가득 채워 축하해 주었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식탁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대기업의 생리에 대해서 설명했다. 큰 집단에서는 단순히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들 무리 안에 엮어 있는 거미줄 같은 연결고리들을 제대로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아버지의 어조에는 대기업에서 차례대로 수순을 밟아 이사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성공적으로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의 확신이 배어 있었다.

―그게 힘들면 소규모 회사에서 시작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게다. 넌 어릴 때부터 사교적인 편은 아니었잖니.

한번쯤은 그냥 축하해 주면 안 되는 거냐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거냐고, 날카롭게 아버지에게 응수하던 그녀가 결국 식탁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집을 나서자 엄마는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채 버스정류장까지 쫓아오며 그녀를 달랬다.

―아버지가 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괜히 겁주는 거야. 엄마는 하나도 걱정 안 해.

그러나 회사 생활 내내 그녀의 마음속에 낙인처럼 새겨져 버린 건 아버지의 말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밥을 잘 챙겨 먹으라거나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너무 자주 들어서 무뎌진 엄마의 말들과 달리 아버지의 말들은 딱 한 번 쏘아진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그녀의 심장으로 날아와 그녀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얼어버린 그녀가 부서지지 않도록 온기를 불어넣어주려 애를 쓰던 엄마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주무시던 도중에 호흡 이상이 몇 번 있었을 거예요.

잠결에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를 담당했던 레지던트는 경위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어떤 순간들이 엄마를 지나갔고 언제 엄마의 심장이 완전히 멎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손을 쓸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병원에 도착했을 땐 엄마의 심장은 이미 멈춰버린 후였다고 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는 머리까지 하얀 천을 덮고 있었다.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도 저희도 뭔가 할 수 있었을 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말고 레지던트가 깊숙이 목례를 해보였다.

매년 받아온 건강진단에서 엄마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저 엄마와 비슷한 나이 때의 사람들이 겪는 흔한 질환들, 고혈압과 당뇨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고, 자궁에 근종이 한두 개 있지만 폐경이 되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의사가 말하는 것을 그녀도 들었다. 엄마가 허리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는 수술 동의서 보호자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 앞으로 이런 순간이 더 자주 오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장례식 삼 일 내내 큰 소리로 쉬지 않고 울어대던 이모들과 달리 그녀는 차분했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침착하게 조문객들을 응대했다. 아니요, 지병이 있으셨던 건 아니고 갑자기 그렇게 되셨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울게 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장례는 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부모님이 상조회사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추모공원은 부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 경치도 좋았고 공기도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이모들의 대화에서 엄마가 몇 달 전에 아버지와 함께 직접 살펴보고 고른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와 매일같이 통화했으면서도 정작 그녀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심하게 진눈깨비가 날리는 날씨 때문에 버스가 언덕을 아주 느린 속도로 올라갔다. 봉안을 마친 후 내려올 때는 그보다 훨씬 더 느리게 움직였다.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계속 밟는 탓에 귀에 거슬리는 굉음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기사가 히터를 껐는지 버스 안에 한기가 감돌았다. 그때였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은수야,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집을 나간 뒤로…… 우리는 각방을 썼다.

아버지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네 아빠가 코를 얼마나 고는지, 그래도 이제 네 방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건 좋더라. 아버지가 서재에 계시면 엄마도 그녀의 방에서 책도 읽곤 한다고, 숙면을 해서 그런지 요즘에는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며 엄마는 웃었다.

엄마에게 들었을 때와는 달리 아버지의 말은 꼭 항변을 하는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 같기도 했다. 대기업 최종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는 선포하듯 집을 나가겠다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나가고 싶은 마음에 보증금을 모으느라 몇 개월이 더 걸렸고, 결과적으로 크게 도움까지 받아 겨우 이룬 독립이었지만, 어쨌거나 그건 매우 뿌듯한 일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울컥 솟아올랐을 때, 비로소 그녀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엄마가 있었다면 아버지의 날 선 말들이 그녀의 마음에 내리꽂히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습기로 차오른 유리창 너머,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온통 하얬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마치 커다란 얼음 덩어리 위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루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났을 무렵, 그녀는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근무하는 병원으로 이직했다. 5층짜리 중소병원으로, 그간 대기업 회계부에서 쌓아온 그녀의 경력과는 무관한 일이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다. 급여는 적어졌을지라도 그만큼 일도 쉬웠고 스트레스도 적었다. 집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데다가 야근도 없었다. 환자들이 보험사와 합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요청할 때마다 준비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서류를 신청하는 이들 중에서는 소위 말하는 나이롱환자들도 있었으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입원하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서류를 부탁하며 그녀에게 사고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곤 했다.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쩌다 사고가 일어났으며,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사연은 제각각 달랐지만 끝에 다다르면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그나마 이만하길 다행이죠, 그리고.

―건강이 제일이에요.

그건 그녀와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가 제일 자주 했던 말이었다. 본가를 나온 뒤로 엄마는 하루도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엄마의 당부대로 밥을 제때 챙겨 먹고,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회사부터 그만두어야 했다. 대기업은 봉급이 높은 만큼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일들로 야근이 일상이었다. 그녀가 무심코 털어놓은 몇 마디 푸념에도 엄마는 속상해하며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해.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야.

그때 그녀는 평생을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엄마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집을 떠난 딸을 두고두고 못마땅해하던 엄마였다. 그때는 엄마의 그 뻔한 말이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을 무겁게 짓누를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루에게 앞으로 조금 더 일찍 퇴근하게 되었다고 말한 뒤에 이직을 했다고 덧붙였다. 루가 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건지 물었다. 그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루는 축하를 해주겠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병맥주를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TV를 켜기 위해 리모컨을 들어 올린 그녀를 향해 루가 고개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나 사실 텔레비전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 루가 말했다. 정확히는 상업 광고를 보는 게 싫다고 했다. 그건 그녀가 자신의 엄마에게 줄곧 했던 말이었다.

―은수,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맞출 필요는 없어. 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봐도 돼.

두 사람은 맥주를 마시며 거실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들었다. 선곡은 번갈아가면서 했다. 대개 오래된 팝송이었고 낮은 목소리의 샹송이나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운 언어의 노래들도 있었다. 장르는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오래된 노래들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이들의 목소리여야 한다는 규칙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듯했다.

루가 아르바이트하는 펍에서 얻어온 훈제 연어를 접시에 내어 왔다. 그녀는 루가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이 많은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루는 비밀이라고, 학원에서는 알면 안 된다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가 그토록 늦게까지 일을 하면 피곤하지 않은지 묻자 루는 사실 학원은 오전 시간에만 근무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다고 털어놓듯 말했다. 부엌이 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넌 완벽한 룸메이트 같아.

맥주 두 병에 취기가 오른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에야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런 자신에게 놀랐다.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한국어로는 그렇게 직구를 던지듯이 말을 하는 습관은 없었다. 게다가 함께 살기 전까지는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던, 지금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은. 하지만 무심코 내뱉은 말이긴 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 세 번째 계절이 끝나갈 동안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조차 한 적이 없었다. 서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상이한 생활 습관이 있지도 않았다. 루와 한집에서 사는 건 마치 잔잔한 바다 위를 순항하는 배에 함께 올라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적으로 날카로워질 일도,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거듭해야 될 때도, 그러다가 목청이 높아져 얼굴을 붉힐 상황도 없었다. 그건 루가 평소와는 다른 시간에 귀가하거나 며칠 동안 외박을 해도 그녀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녀가 방 안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고 웅크린 채로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베갯잇이 축축해지는 나날이 있다는 것도, 루 또한 알지 못했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어느 주말 오후, 초인종 소리가 났을 때 그녀는 샤워 중이었다. 틀어놓은 물소리 때문에 그녀는 늦잠을 자던 루가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얼마간 굳은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현관 앞에 누군가 루와 마주 서 있었다. 아버지였다.

―은수, 너의 손님이 왔어.

루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루와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새삼 떠올렸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안아주며, 마음을 추스르면 연락하라던 친구들 누구와도 그녀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그녀의 아버지와도 마찬가지였다. 한 손에 케이크 상자를 든 아버지는 목이 늘어난 베이지색 면 티셔츠와 수면바지 차림에,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떨어지는 그녀와 멀뚱히 서 있는 루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잠깐 같이 사는 친구예요.

그녀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긴 채 말했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덧붙인 뒤에 그녀는 방문을 닫으려다 말고 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그 사람 한국말 못해요.

옷을 갈아입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도 그녀의 신경은 온통 바깥을 향해 있었다.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틈틈이 말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한국말을 못한다고 아버지에게 단언하긴 했지만 그 사이 루의 한국어 실력이 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새 루와 같이 살고 나서 세 번의 계절이 지나갈 만큼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녀는 주말 아침부터 들이닥친 아버지의 심중을 추측해보려고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연락도 없이 집에 찾아오거나, 보고 싶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집에 오라고 채근하고, 다 먹지 못할 양의 음식들을 냉장고 가득 만들어 놓고 가는 엄마와는 달랐다. 적어도 그녀에게 먼저 말은 할 사람이었다. 통보하는 듯한 말투로라도, 하지만 휴대폰에 아버지로부터 온 연락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가 그녀의 집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를 데리러 차를 끌고 근처까지 온 적은 있었으나 아버지는 집을 구경할 겸 들어갔다 가라는 그녀와 엄마의 권유에도 곧 차가 막힐 시간이니 빨리 출발해야 한다며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엄마의 기일이라면 아직 한 달 하고도 보름 남짓한 기간이 남아 있었다. 방문 너머에서 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턴 뒤에 옷만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다.

식탁에 루와 나란히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퍽 낯설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옆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본 아버지의 머리칼은 흰색과 검은색이 반반이었었는데 이제는 전체적으로 옅은 회색빛이 되어 있었다. 다른 것들은 엄마와 살아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버지는 엄마가 손수 짠 니트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에 익숙했던 그녀로서는 그 모습마저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케이크를 던 접시 세 개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루가 그녀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녀는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말한 뒤에 물을 담은 전기 포트의 스위치를 누른 뒤 찬장을 열어 찻잔들을 꺼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그때 아버지가 영어로 말했다. 주어와 동사, 명사와 형용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놓인 문장이었다.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영어 공부를 해왔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운전을 하거나, 여가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영어 회화를 들으며 아버지는 혼자 익힌 영어 문장들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절대 늘지 않는다고, 언어는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아야 느는 거라고 그녀가 말했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루는 아버지에게 국적은 스코틀랜드이고, 자라난 곳은 영국 북부 끄트머리에 있는 바다 근처 작은 도시라고 답했다. 해가 잘 뜨지 않고 비가 일상처럼 내리는 우울한 곳이어서 한국의 여름이 정말 좋다고도 덧붙였다. 그녀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당신은 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까?

그건 그녀가 물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루는 불편한 기색 없이 순순히 답해주었다. 학창시절에 한국에서 온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때문에 줄곧 와보고 싶었다는 루의 이야기를, 그녀는 찻물이 끓어가는 동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이어서 아버지는 루에게 얼마나 많은 나라에 가보았는지 물었다. 루는 나라 대신 도시를 나열했다. 대개 유럽 쪽이었고 아시아 지역에 있는 도시명들도 들려왔다. 그녀가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도 많았다. 루는 그곳들에 가게 된 계기나 감상을 짧게 덧붙였다. 아버지는 듣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정확히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루의 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동시에 그녀는 마치 자신이 취조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영어는 그녀가 들어본 아버지의 언어 중에서 가장 정중하게 들렸지만 아버지가 하는 질문들은 그동안 루와 그녀가 지켜왔던 선을 제멋대로 넘나들고 있었다.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유지되었던 두 사람 사이의 편안함, 그 적당한 거리를 아버지가 다 망가뜨릴 것만 같았다. 그나마 아버지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루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계속 여행을 하며 살아갈 생각이에요.

루의 말에 그녀는 새삼 루가 자신과 영원히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빗방울이 타닥타닥 거리는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터키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루는 아니요, 라고 답했다.

―나는 오래전에 터키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뒤에 아내와 함께 9박 10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고 이어 말했다. 아내, 라는 말에 전기 포트를 들어 찻잔에 물을 붙던 그녀의 신경이 곤두섰다. 아버지는 9박 10일간의 터키 여행에 대해서 사소한 것까지 말하려 들었다. 여행 내내 무슨 음식이든 잘 먹었던 아내와 달리 자신은 음식이 맞지 않아 버스에서 내내 메스꺼운 기분을 느껴야 했다는 것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는 여행객 때문에 툭하면 버스가 세워졌던 상황들, 그런 순간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말이 길어질수록 아버지의 말들은 점점 문법이 맞지 않거나 가끔은 루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루와 달랐다. 그 엉망진창인 말들을 그녀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가 갔던 해외 여행지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육십 번의 해를 보내는 동안 엄마가 한 여행은 그리 많은 횟수는 아니었다. 이모들과 패키지여행으로 갔던 베트남과 태국,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 부부들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간 중국이 다였다. 그녀가 분명히 기억하기로 그중에 터키는 없었다.

지난겨울, 엄마의 인생이 갑작스럽게 끝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엄마와 일본에 갈 예정이었다. 언젠가 그녀의 집에 왔던 엄마가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밤중에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눈이 깔린 오타루 운하를 아이처럼 신기한 눈빛으로 보는 것을 보고 그녀는 여행사 패키지 관광 상품을 구입해 놓았었다. 회사 일이 바빠 엄마의 생일에 전화 한 통으로 대신했던 그녀는 자신의 죄책감을 그렇게 해소하고자 했다.

식탁 위에 그녀 몫의 케이크가 놓여 있었지만 그녀는 두 사람 몫의 찻잔을 식탁에 내려놓은 뒤 싱크대 쪽으로 돌아와 괜히 행주를 들어 이곳저곳을 닦았다. 그러다가 식기세척기를 열고 안에 있는 그릇들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릇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일부러 더 요란한 소리를 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아버지와 엄마는 열기구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전날 열기구 착륙 과정에서 몇 사람들이 타박상을 입는 작은 사고가 나는 바람에 예약했던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타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아내는 꼭 그걸 타고 싶어 했소.



그림=김영미 화가


아버지의 말에 그녀가 얕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 말도 믿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이라면 거절할 줄 몰랐던 엄마였다. 그녀는 엄마가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공항에서 사온 마그넷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본가의 냉장고에 붙어있을 마그넷들 중에 터키와 관련된 것을 본 일은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엄마와 터키 여행을 갔었다던 그해 봄은, 졸업을 앞둔 그녀가 회계 관련 자격증 공부를 막 시작했던 무렵으로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이 열흘 동안 여행을 떠난 것을 그녀가 모를 수는 없었다. 어두워진 창밖에서 빗소리가 한층 더 무겁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혼자서도 괜찮다면 타고 오라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가이드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열기구는 원래 가족끼리는 함께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만약 같이 탔다가 추락하면 가족들이 한꺼번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릴 틈도 없이 아내가 탄 열기구가 하늘을 향해 순식간에 솟아올랐소. 열기구와 땅 사이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소. 나는 어떤 연결이, 하다못해 얇은 줄이라도 걸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나 아이의 문제라면 작은 일에도 쉽게 놀라고 지나치게 불안해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혼자서 열기구 위에서는 전혀 겁을 내지 않더군요.

아버지가 점점 더 제대로 된 영어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횡설수설하다 못해 엉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루가 난처해하고 있다는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루의 저녁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몇 분만 지나면 루가 출발해야 할 터였다.

―아내가 탄 열기구가 새끼손톱보다도 더 작아지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소. 아내가 이대로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면, 영원히 내게서 멀어져 버린다면…….

아버지는 거기까지 말한 뒤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혼잣말을 되뇌듯 말했다.

―적어도 남겨지는 쪽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에게서 희미하게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는 아버지가 주정뱅이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술이 아주 센 편이어서 웬만해서는 좀처럼 티가 나지 않았다. 다시 보니 아버지의 얼굴색이 붉게 달아올라 보였다. 꾹 눌러놓았던 화가 터지듯이 솟아올랐다.

―제발, 거짓말 좀 그만하세요.

그녀가 한국어로 말했다.

―엄마는 터키에 간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그녀를 향해 답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니?

아버지는 여전히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조가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싱크대에 놓인 그릇들을 집어 수세미로 닦기 시작했다. 사기그릇들이 부딪칠 때마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는 잠시 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네 엄마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번에는 한국어였다. 언제나 그랬듯 단호하고 날카로운 어조였다. 그 말에 그릇을 문지르던 그녀의 손이 일순간 멈췄다. 그녀는 얼어붙은 듯 잠시 그렇게 있다가 몸을 돌려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잘 아셨으면 엄마 심장이 멈추기 전에 병원에나 데려가지 그랬어요.

다시 싱크대를 향해 돌아선 그녀가 수도꼭지를 제일 세게 틀었다. 요란한 물소리가 실내에 쏴 하고 울려 퍼졌다.

엄마의 죽음에는 아무런 예고도, 징조도 없었다. 그 사실을 상기할 때면 그녀의 시간은 전화를 받았던 겨울의 캄캄한 그 새벽녘으로 돌아가 버리곤 했다. 그날, 잠이 들기 전에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음에도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저녁은 먹었어? 라고 시작될 게 뻔한 엄마의 말들은 늘 똑같아서 굳이 들을 필요도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벨소리에 눈을 떴을 때 어둠 속에서 디지털시계가 4:54 모양대로 빛을 내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을 알리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떠오

르면서도, 정작 엄마의 목소리는 그토록 매일 같이 들었음에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때때로 엄마가 없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엄마가 컵을 꺼내주지 않으면 물통을 통째로 입가에 가져가던 아버지, 엄마가 동동거리며 집안일을 하는 동안 언제나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버지, 색깔별로 수건을 정리한 뒤에 흐뭇해하는 엄마를 강박증이라고 일축해버리던 아버지를, 집 안을 가꾸는 일을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라고 여기던 아버지가 그 일을 해주었던 엄마 없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하지만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옆에 있던 엄마의 자리는 이제 블랙홀처럼 새카맣게 뻥 뚫려 있었다.

루는 그녀를 대신해서 아버지를 배웅해 주었다. 루가 신발장에서 우산을 꺼내어 챙겨주고,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아버지의 팔을 붙잡아 줄 동안 그녀는 싱크대 앞에서 물을 틀어놓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 뒤 출근 채비를 마친 루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전과 똑같은 어조였다. 하지만 루가 아버지와 그녀 주위에 내려앉아있던 싸늘한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루의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아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닐 터였다.

식탁에는 그녀 몫으로 덜어놓은 케이크가 남아 있었다. 생크림이 녹아 모양이 흐트러져 있었다. 맞은편에는 아버지가 마시던 찻잔이 놓여 있었다. 잔에 말라버린 얼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는 아버지가 왜 찾아온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케이크를 좋아한 건 엄마였다. 그제야 오늘이 엄마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엄마가 죽은 날짜에 매여 엄마가 살아있던 순간들을 자신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몫으로 남겨진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상상해 보았다. 열기구를 타고 순식간에 하늘 높이 저 먼 곳으로 날아가는 엄마를, 그 모습을 땅에서 하염없이 올려다봐야 했을 아버지의 심정을. 어쩌면 아버지가 갇혀 있는 건 그 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그녀가 엄마와 전화를 하는 꿈을 꾸는 것처럼, 그럼에도 자고 일어나면 엄마의 목소리를 전혀 떠올릴 수 없어 먹먹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엄마의 죽음에 있어서 그녀가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건 아버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발 언저리에서 뭔가가 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식탁 아래로 머리를 숙여 내려다보니 아버지의 외투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단추가 바닥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엄마의 물건들을 아버지가 어떻게 했을지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집에 남아있던 엄마의 흔적들을 치워준 건 루였다. 방에 남아있던 몇 안 되던 엄마의 물건들을 박스에 담아준 건 루였다. 엄마가 썼던 방에 루가 들어온 이래로 그녀는 그 방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부엌에 정리되어 있는 식기들이나, 서랍 안에 개어진 옷들에서도 이제 엄마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도 엄마를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녀는 다음에 아버지가 다시 터키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잠자코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대화라 할지라도 예전처럼 꽁꽁 얼어붙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적어도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만큼은 그럴 터였다. 그들을 따뜻하게 녹여주던 엄마는 곁에 없지만 두 사람이 엄마의 온기까지 잊었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비로소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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