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폭염(暴炎)
성 명 : 황광수

밖으로 나서는 순간, 동생이 행사한 폭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기에 흥건히 젖은 듯이 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도, 손이 닿으면 데일 듯이 뜨겁게 달궈져 길을 가득 메운 차에서도, 에어컨 환풍 기가 주렁주렁 매달린 콘크리트 건물 외벽에서도, 마치 아무도 밖에 나서지 말라는 경고라도 하듯 무서운 열기가 내뿜어져 길가로 나선 내 몸을 집어삼킬 듯이 뜨겁게 휘감았다. 온 몸이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공기는 숨이 턱턱 막 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정말이지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는 견 딜 수 없을 만큼 무더운 열기가 살속을 파고들었다. 머리 위에서는 따가운 햇 빛이 사람을 짓눌러대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조차도 상실감을 느끼기 에 충분할 만큼 태양은 사람을 풀어헤쳐 놓았다.

이런 불볕 더위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땅 위에 발붙이 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다 날려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태양과 지구 사이 어디쯤에서 시원한 폭발이 일어나 햇빛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지구가 날아가 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치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심정으 로는 아무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 난 무얼 했던가… 제기랄! 아버지를 만났다. 이 지독한 무더 위에, 하필,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를 처음 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기막히게도 외로움이었다.

내가 터미널로 마중 나갔을 때, 아버지는 오래된 고목처럼 서 있었다. 넓은 와이셔츠 깃 사이로 햇빛에 그을린 까만 목이 빠져나오고, 그 위로 까만 주름 들이 말라붙은 깡마른 얼굴이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 다. 살짝만 건드리면 와르르 부서져 내릴 것처럼 푸석푸석해 보이는 한 그루 의 까맣게 그슬린 고목 나무였다.

나를 발견하자 아버지는 축 쳐진 한쪽 팔을 약간 들썩이며 네가 찾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는 신호를 보냈을 뿐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작은 키로 서 있던 아버지는 어디냐? 가자, 는 표정만 지 었을 뿐 아무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침묵을 사 이에 두고 마주보고 서 있던 잠시의 시간동안 난 불쑥 외로움을 느꼈다. 아버 지와 나 사이의 그 짧은 거리에는 분명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떠다니고 있었 다. 어쩌면 그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아버지가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몰 랐다. 소유자가 불분명한 외로움이 더운 공기와 함께 내 얼굴로 확 끼쳐왔다.

나는 갑자기 밀려드는 알 수 없는 외로움도 분명 날씨 탓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곧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조 용히 뒤따라왔다. 아버지는 내가 걸음을 멈추면 따라서 멈추었고 걷기 시작하 면 다시 묵묵히 발걸음을 떼었다. 전철을 갈아타고 버스에 올라 경찰서에 도 착할 때까지, 아버지는 더위에 말을 잃은 사람처럼 침묵을 지켰다.

경찰서에 도착해 담당 형사가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가능하면 피해 자 측과 합의 보라는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 다.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할 정도로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담당 형사 는 일목요연하게 말을 쏟아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동생이 얼 마나 큰 잘못을 한 건지, 행여 다치지는 않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가에 대해 전혀 궁금한 게 없어 보였다.

담당 형사가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적어 주었다. 나는 메모지를 집 어들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와 나 그 누구도 동생을 만나보고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먼저 동생의 안부를 묻고 면회라 도 제안하기를 아버지는 바랬을지도 모른다. 옆에서 무관심하게 듣고만 있는 내가 내내 못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 때문에, 그것도 이런 무더위에,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나서서 애간장을 태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동생은 당 신의 아들이었고 나는 그 아들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 마디 말없이 나서는 우리를 담당 형사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담당 형사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경찰서 정문을 벗어 나서야 아버지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자리 잡고 동생을 잘 돌봐줄 줄 알았다." "……" 등뒤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힘이 넘쳐서가 아니었다.

가는귀가 먹어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귀로 확인하기 위해 저절로 커지는 목 소리였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가 생각하는 방식이 었다. 내 생각과 닮은 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다른 그야말로 아버지만의 생각이었다. 바깥의 세균이 아무런 여과 없이 무작정 피부를 통과할 만큼 동생이 얇은 막으로 둘러 싸여, 내가 세상의 온갖 못된 세균의 침투를 두팔 벌려 막으며 동생을 돌보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된다. 동생은 건장한 체구에 얼마나 튼튼한가. 오 죽 건강하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패고 철창 신세까 지 지겠는가 말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바싹 마르고 키만 멀대같이 커 허약해 보이 는 내 체구와, 영양실조 걸린 듯 창백한 얼굴에 쑥 들어간 눈을 보여주고 싶 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느새 내 어깨를 스치며 앞서가는 걸로 내 의도를 외 면했다. 아버지가 일으키고 간 더운 바람이 내 얼굴로 부딪쳐왔다. 나는 이마 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다시 돌아섰다. 하얀 색 와이셔츠 차림의 아버지 뒷모 습이 나와는 무관한 사람처럼 냉정하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만약 아버지가 동 생 일로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면, 그건 아버지가 잘못 생각한 탓이지 결코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를 외면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아버지는 잰걸음을 놀리며 벌써 저만치 앞서갔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아버지를 따라 잡았다.

내뱉듯 그 말 한마디를 꺼낸 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입을 굳 게 다물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피해자 가족들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가는귀 먹은 걸 다 아는 사람처럼 목청을 있는 힘껏 높였다.

나이 든 분에게 침을 튀기며 상스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피해자 가족의 빠 르게 움직이는 입술과, 그냥 흘려듣듯 무표정한 얼굴로 중간중간에 감정 섞이 지 않은 어조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아버지의 메마른 입술을 번 갈아 확인했을 뿐,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 다음 아버지가 보일 행동이 어 떤 것일지 이미 나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듣기에 세상에 태어나 나쁜 생각이라고는 꿈도 꿔보지 못했을 그들의 천사 같은 자식이 겪었을 고통과, 마치 수천 명은 족히 상대했으리라 짐작될 정도 로 무지막지했을 동생의 폭력에 대한 과장 섞인 추궁이 끝나자, 마침내 피해 자 가족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라도 건네듯이 슬그머니 피해보상금 문제를 꺼냈다. 아버지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 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보일 듯 말듯 고개를 숙 여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피해자 가족이 합의금 액수에 대해 흘러가는 말로 운을 떼었을 때, 아무런 대꾸도 않고 돌아섬으로써 아버지는 합의금을 줄 능력도 의사도 없음을 내비 쳤다. 이미 내가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나는 묵묵히 아버지를 따 라 병원을 나왔다.

아버지는 그만한 합의금을 댈 처지가 못됐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어딘가에 서 돈을 구해 이번 일을 합의보고, 동생을 빼낼 생각이라고는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행여 지금 당장 그만한 돈이 있다고 쳐도 아버지가 합의를 해주었을 지,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럴 능력도 의사도 없으면서 이런 무 더위에 경찰서를 방문하고 굳이 병원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고스란히 이런 수모를 당할 바에는 도대체 무 엇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가 말이다.

정작 식구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한 번 꺼내본 적 없는 분이, 낯모르는 사람 들에게 그렇게 많은 사죄의 말을 쏟아 부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계면쩍어 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 떻게 해서든지 동생을 풀려나게 하려고 올라온 게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다기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 얼굴을 한 번 비춘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늘 그런 식이었다.

아버지의 위치감각,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치에 늘 그 자세로 서 있기만 하는 아버지의 그 무능력한 위치 감각을 나는 경멸했다. 오래 전 어머니가 죽어갈 때도 아버지는 자신의 위치 감각을 잃지 않았었다.

대학생이던 내가 다음 학기 등록금을 위해 동분서주 하다가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이 아니었다. 중간 과정이 모두 생략 된 채, 어머니가 오늘내일 하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는 거였다. 기가 막혔 다. 소식을 듣고 시골로 내려간 나는 어머니가 불쌍했다. 음식물을 갈아 삭이 는 작은 위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한 어머니가 불쌍해서, 소의 반추위처럼 어머 니 위가 여러 개로 나뉘어져 그까짓 망가진 위 하나쯤 댕강 잘라내버릴 수 있 다면, 내가 얼마든지 되새김질 해 어머니의 입속으로 음식물을 넣어주고 싶었 다.

하지만 어머니를 잃는다는 슬픔보다, 지금 이 자리로 나를 내몬 장본인이면 서도 저렇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감에, 나는 치를 떨어야 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누렇게 뜬 얼 굴로 복통을 호소하다가, 그나마 뜬 한 숟갈의 음식물에도 구토를 하면서 방 바닥을 뒹구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아버지는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무슨 생각을 하다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허수아비처럼 두손 놓고 바라만 보는 병원으로 어머니를 데려갈 생각을 한 거란 말인가. 감기약 먹이 듯 약봉지 몇 첩 지어다 주는 걸로 자신의 역할은 끝난 걸로 생각하고 입안에 넣은 밥알을 꾸역꾸역 씹어 삼켰단 말인가… 나는 상제가 돼 조문객을 받으면서 아버지 발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길 게 늘어선 개미떼 행렬이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병풍 뒤편으로 까맣게 달려가 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병풍 뒷편 어디쯤에 개미지옥이 있어 그 안으로 미끄러 진 녀석들이 모두 개미귀신의 밥이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아니, 내가 직접 지구상에 단 한 마리의 개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밟아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내 발에 새카맣게 밟히는 개미들과 함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까지 지끈지끈 밟아버리고 싶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인간의 타고난 본 성일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개미들만큼 사회적 본성을 타고난 생명체는 없었다. 그 말 속에는 무서운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개인의 삶과 인격 따위 를 집어삼키려 집단이라는 괴물이 커다란 아가리를 떡허니 벌리고 서 있는 거 였다. 그 괴물 중에 누구도 피하기 힘든 가장 무서운 놈이 바로 가족이었다.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내가 가족이라는 괴물의 아가리에서 나왔고, 안으로 연 결된 혓바닥처럼 그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아버지 는 시커먼 입구를 지키며 서 있었다. 그 무능력한 보호 아래서 어머니는 누렇 게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꼼짝없이 그 고통을 나눠가져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에 아버지가 한 번이라도 식구들에게, 아니 고생만 하다 가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미안하다는 속죄의 표정을 지어 보였 다면, 어쩌면 그 순간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여가 나갈 때쯤 아버지의 멍한 표정은 이제 아예 평온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흙속에 묻으면서 까지도, 그렇게 평 온한 모습으로 서 있으면 남편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훌륭히 끝낸 거라는 듯, 그 순간까지 아버지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그건 결코 상주의 모 습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 세포가 활동을 멈추어버린 어머니의 관 위로 막 흙 이 뿌려지는 순간, 아버지의 깡마른 얼굴에서는 생명을 더 활력 있게 만들기 위한 세포들의 평온한 죽음이 한창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 순간 자신의 평 온한 죽음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때의 표정은 그 자리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온함이었다.

아버지는 늘 서 있던 그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유지된 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냥 무능력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아마 지금도 아버지 는 동생 일로 나를 원망하고 있을 터였다. 형의 도리로써 동생을 돌보지 못했 다는 질책을 함으로써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건 아버지의 욕심이었다. 무능력한 욕심. 한 걸음 성큼 다가서지도 물러서지 도 않고 그 자리만 지키면서 울타리 안에 누군가 있기를, 그리고 무언가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욕심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묻으면서 결심했다. 절대 로 그 울타리 안에 갇힌 채로 무언가를 기대하는 아버지의 욕심을 채워주지는 않겠다고. 내가 형이라는 이유로 동생을 돌볼 이유는 없었다. 만약 그게 아버 지가 바라는 거라면 나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병원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아버지와 나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 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마주 앉아 있던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서둘러 옆으로 시선을 비켰다. 아버지는 맥빠 지고 백내장 걸린 듯 부옇게 흐려 보이는 눈을 끔벅이면서, 이제는 네가 장남 노릇을 해야되지 않겠느냐, 는 표정으로 내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못 본 척 옆 탁자 위에 놓인 신문에 시선을 박았다. 반찬 국물이 덕지덕지 말라 붙은 신문지 바로 옆에서는 새까만 먼지가 들러붙은 보호망 안에서 선풍기 프 로펠러가 달달거리며 더운 바람을 내보내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아버지는 나 를 찾아와 지금 같은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다. 불과 두 달 전에.

형이 죽은 건 두 달 전이었다. 그 날 나는 형과 함께 있었다. 회사 근처 작 은 주점에서 동그란 철제 탁자를 사이에 두고 형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내 가 빈 잔에 소주를 채워 주었을 때, 형은 잠깐 전화를 걸고 오겠다며 가게 밖 으로 나갔다. 잠시후 밖에서 귀에 거스르는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와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올 때까지, 술잔 속의 소주는 형이 탁자 위에 내려놓을 때 받은 충격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채 작은 흔들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후를 기 약하며 밖으로 나갔던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형은 내가 채워준 술잔을 영영 마시지 못할 운명이었다. 부러울 만큼 당당하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났 고, 가족보다 더 큰 사회와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위해 일찌감치 자신의 안녕 을 포기했던 형이, 기껏해야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이 나는 영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위해 가족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만큼 단호했던 형은 좀 더 멋있게 죽었어야 했다. 그게 투사였던 형한테는 어울렸 다. 재수가 없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그런 흔한 죽음이 형에게는 웬지 어색해 보여,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도 나는 형의 죽음을 실감할 수가 없었다.

내게 형의 부재를 실감케 해준 건 아버지였다.

장례식을 치르고 며칠후, 아버지는 불쑥 내가 다니고 있던 인쇄소를 방문했 다.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자, 나는 밖에 쌓아 두었던 광고지 위에 덮인 포 장을 걷어내고 주문한 물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허름한 쥐색 양복에 작 은 체구가 인쇄소 안으로 느린 걸음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여겨보 지도 않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그 사람이 아버지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쌓여 있던 광고지 물량을 확인하기 위해 쭈그려 앉으며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잠시후, 그 허름한 양복바지가 바로 내 코앞에 와 멈추었 다. 바지 양옆으로는 갈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구식 우산과 청주 한 병이 나란히 들려 있었다. 순간 나는 언제나 아버지 주위에만 가면 내 목을 옥죄여 오고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불길한 힘에 놀라 선뜻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 코앞에서 멈춘 바지는 움직일 줄 몰랐다. 우산 끝으로 모인 물방울들이 바짓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옷 속으로 슬그머니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삼형제를 낳았다.' 내가 올려다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그런 것이었다. 삼형제를 낳았고, 이제 장남을 잃었으니, 네가 그 역 할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 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식 맡겨놓고 인사 한 번 못 드렸다." 아버지는 자식 맡겨놓고 사장에게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한 아비로서의 명분 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명분 뒤에 숨어 있는, 형을 잃고 이제 내게 장남 노 릇을 요구하겠다는 아버지의 뻔뻔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 밖으로 나돌던 형 은 동생과는 다른 이유로 뻔질나게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그 생활은 아버지와 의 관계에 초연했던 형이 선택한 자신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가장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런 형이 장남 노릇을 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형이 없다는 이유로, 형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장남의 몫을 내가 물려받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나는 일어서며 아버지를 가로막았다. 학교도 아니고 월급 주고받는 회사에 서 부모까지 나설 필요 없고, 또 요즘 세상에 직장에 찾아와 자식을 부탁하는 사람은 없으니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아버지를 만류했다. 다행히 사장은 거 래처에 가고 없었기 때문에 내 행동은 충분히 명분도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넘보기에 애비가 부끄러우냐?" "……" 색바랜 양복 끝에서 시작됐다가 내 어깨쯤에서 끝나는, 이마와 눈가에 잡힌 까만 주름 사이로 금방이라도 마른버짐이 떨어져 내릴 것처럼 말라붙은 아버 지의 얼굴을 나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장이 거래처에 가고 없다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로 아버지는 충분히 자식을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서고, 회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정문을 지나다, 들어오 는 승용차를 피해 잠시 옆으로 비켜 설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 러서지 않고 굳건히 내 자리를 지켰다. 내가 주춤거리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내 딛은 건, 사장을 태운 승용차가 회사 입구에 고인 물웅덩이를 세차게 밟으며 정문을 들어설 때였다. 승용차는 속력을 늦추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달려갔 고, 그 뒤로 아버지는 승용차가 튀긴 물벼락을 맞고 서 있었다. 아버지의 쥐 색 양복에서는 흙탕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버지는 물기를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축 쳐진 양손에 우산과 청주 한 병을 든 채로, 마치 그게 내 탓이라도 되는 양 정지된 한 장의 흑백 필름처럼 꼼짝도 않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 다.

내가 정문 쪽으로 어정쩡한 발걸음을 떼어놓으려 할 때, 정지했던 흑백 필 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천천히 돌아서서 회사 밖으로 나갔 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정문 기둥 뒤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선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가 잠시 자신의 위치감각을 상실한 아버지가 내게 한발 성큼 다가온 사 건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그 동안 자신이 유지해왔던 무능력한 위치감 각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무능력을 대신해 나에게 적극 적으로 개입해 들어오라는 강요였다. 난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발 뒤로 물러섬으로써 그 거리를 유지했다. 아버지가 선택해서 만들어 왔고 스스로 초래한 울타리였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내가 끼지도 않았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얽혀 들어가야 하고, 이제는 장남 노릇까지 해야한다는 아버지의 요구를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형이나 동생만큼 초연한 자세로 내 삶을 선택하고 거기에 몰두할 권리가 나한테도 있었다.

밥을 먹는 동안 식당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를 향해 고정된 선풍 기에서는 다르륵거리는 소음이 유난히 크게 났다. 그 소음에 섞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은 어떻게 사느냐?" "……"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고 코를 훌쩍거려가면서 뜨거운 국물에 열심히, 그리고 자신감 있게 숟가락질을 했다. 대답대신 이렇게 무더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잘 살고 있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대답이 없자 아버지 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식탁 위로 고개를 숙였다. 더운 바람을 뿜어대던 선풍기는 간간이 온 몸을 떨면서 위아래로 머리를 들썩였다.
그럴 때면 보호망에 달라붙어 있던 새까만 먼지가 금방이라도 식탁 위로 쏟아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식탁 위 로 흙탕물이 한 바가지 쏟아져도 개의치 않겠다는 자세로 한 번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식탁만 내려다보며 느린 동작으로 젓가락질을 계속 했다. 나는 눈을 들어 힐끗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고는 다시 숟가락질을 계속 했다.

나는 두 달 전에 인쇄소를 그만두었다. 아버지에게는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나서야 회사가 부도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뒤따를 지도 모르 는 아버지의 추궁과 참견을 미리 막기 위해서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건, 아버지가 인쇄소를 다녀간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 날 사무실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거래처에서 주문한 물량이 맞지 않는다는 연락이 온 거였다. 내가 광고지 5만장을 확인하고 보냈는데 그 업체에서는 5천장을 주문했기 때문에 그 값밖에 지불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사장이 직접 거래처에 들렀 다가 연락을 해오는 날은 종종 그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 일에 익숙한 직원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담당자를 찾으면 불려가 공손히 잘못 했다는 말을 하고 주의하겠다는 다짐으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사무실 사람들이 다 듣는 데서 불쑥, "사장님이 보낸 팩스에 5만 부로 되 있는데요." 만약 아버지가 옆에 있었다면 아버지의 귀에도 충분히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사장의 실수를 언급하고 말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다른 직 원들처럼 조용히 내 잘못이라고 거짓 시인을 하고 넘어갔을 일에, 그 날은 왜 갑자기 내 혀가 굴러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도 혼잣말이 아니라 사무실에 공표라도 하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사장과 영업이사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주위 직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야 나는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가를 알아챘다. 직원들의 긴장된 표정에는, 사장이 한 실수는 지금 내가 저지르고 있는 실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짙은 우려가 깔려 있었다. 도대체 인간이 언제부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직원들의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인간의 조상이 원망스러웠다. 가능하다면 머나먼 과거로 달려가 막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하는 유인원을 목졸라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당장 내 혀라도 싹둑 잘라내, 피를 뚝뚝 흘리는 빌어먹을 혀를 손바닥 위로 올려놓으며 요즘은 이게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그만 잘못 굴러간 거라고 변명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든 건, 자신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연발하는 사장의 얼굴 위로, 전날 사장의 승용차가 튀긴 물벼락을 맞고 서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그 순간에, 마치 내가 아버 지가 당한 사소한 일에 복수라도 하기 위해서 지금 말도 안되는 일을 가지고 사장에게 대들고 있다는 듯이 그 광경이 떠올랐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나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나는 곧장 며칠전 사장이 보냈던 팩스 사본이 들어있는 서류철을 꺼내왔다. 소동을 일으킨 업체의 주문 물량이 다른 거래처 주문 물량과 함께 제일 아래 칸에 깨알같은 글씨로 '50000장'이라고 휘갈겨져 있었다. 나는 그 사본을 사장과 영업이사 코앞으로 펼쳐 보였다. 이것 봐 라, 맞지 않느냐, 내가 아버지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말이 틀렸느냐, 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류철 을 들고 있는 내 손은 떨렸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내가 책상 위를 뒤지고, 찾고 있던 서류철을 꺼내 펼쳐들며, 그들 앞으로 들이밀 때까지, 묵묵히 내 표정만 살피고 있었다. 나는 서류철을 그들 앞에 떨구면서 돌아섰다. 서류철이 풀어지면서 낱장 사본들 이 사무실 바닥으로 이리저리 흩어졌다. 사무실 분위기는 숨죽인 듯 조용했다. 나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왔다. 아버지가 인쇄소를 방문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지금 아버지가 어떻게 사느냐? 라고 물은 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왜 사느냐? 라고 물었다면 뜻밖의 질문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나는 당황했을 거고, 게다가 그 질문을 아버지가 했다는 이유로 변명하듯 어떤 억지를 써서라도 거기에 답변하려 기를 썼을 것이다. 하지 만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됐다. 왜 사는지는 몰라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이만큼 살아온 아버지라고 해서 왜 사는지를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밥을 깨끗이 비우고 물을 마시는 동안, 이미 수저를 내려놓은 아버지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안 봐도 어떻게 사는 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속이라도 들여다보듯이 유심히 나를 관찰하던 아버지는, 빈 그릇에 눈길을 한 번 주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 어났다. 문가에 있는 카운터로 천천히 걸어간 아버지는 밥값을 계산했다. 그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달려가 돈을 꺼내는 아버지의 손을 막으며,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까짓 직장이야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다, 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열려진 식당문 안으로 비춰오는 새하얀 뙤약볕 아래로 다시 나서느니, 더운 바람일망정 잠시라도 선풍기 앞 에 앉아 있는 게 나았다. 벌써 그 뙤약볕 아래로 한 발 들여놓고 있던 아버지가 나를 홱 돌아보았다. 이제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 탁자에 놓여 있던 신문지가 펄럭거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전철을 타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번 달구어진 몸은 쉽게 식을 줄 모르고 땀방울을 밀어냈다. 등에 달라붙는 셔츠를 뜯어내느라 나 는 자꾸만 등뒤로 손이 갔다. 내 곁에 바싹 붙어 전철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키 작은 모습이 창문에 비쳤다. 아버지는 몸에서 나 는 열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와의 거리를 떼어놓지 않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전철역까지 오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내게서 틈을 벌리지 않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아버지의 느린 걸음을 기 다리는 수고는 생략해도 됐다. 걸음을 조금만 빨리 해도 아버지는 거의 뛰는 듯한 걸음걸이로 내게 반응했다. 마치 조금만 거리를 두면 길 가에 자신을 떼어놓고 내가 도망이라도 칠 것처럼.

나는 등에 달라붙는 셔츠를 연거푸 뜯어내며 창문에 비치는 아버지 얼굴로 눈길을 주었다. 아버지는 벌써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악 착같이 나를 따라붙을 때와는 달리, 이제 달리는 전철에서야 네까짓게 어쩌겠느냐는 듯, 아버지는 창에 비친 내 모습을 외면하려 일부러 눈을 감고 한숨이라도 돌리는 것같은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덜컹거리는 전동차의 진동에도 흔들림 없는 자세로 버티고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조금씩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왜 아버지를 만나 이런 무더위와 싸워가며 고생스럽게 돌아다녀야 하는 건지, 게다가 등뒤로 손을 뻗느라 자꾸만 흐트러지는 내 자세와는 달리 더운 내색 한 번 않고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의 여유 있는 모습에 그만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등에 달라붙는 셔츠를 뜯어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던 팔 동작을 멈췄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두꺼운 천 조각 하나가 등에 찰싹 달라붙는 것처럼 불쾌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허리가 움찔했다. 전화가 문제였다. 어제의 그 잘못 걸려온 전화… 그 전화만 받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 나올 일도,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제 걸려왔던 두 통의 전화 를 원망하며, 다시 거친 동작으로 등에 달라붙은 셔츠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처음 전화는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경찰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단박에 잘못 걸려온 전화임을 알았다. 곧바로 잘못 걸었다는 말을 해주 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싶었다. 담당 형사라는 사람이 동생 이름을 들먹이며 보호자 분이 나와주셔야겠다고 했을 때, 당신네들이 무언가 착 오를 일으킨 모양인데, 그럼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어야지 나한테 전화를 건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따졌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런 반 응도 없었다.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뜨거운 열기에 녹아 내린 전화선에 문제가 생겨 잘못 연결된 전화일 수도 있었 다. 행여 그런 일이 생긴 건지도 모르니 다시 한 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나는 시골집 전화 번호를 또박또박 불러주고는 전화를 끊어버렸 다. 그리고 더 이상 전화가 울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부질없는 희망에 쐐기를 박듯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 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짧게 자신의 용건만 말했다.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보다 더 무뚝뚝한 어조로 아버지는 새 벽 첫차를 끊었다는 말 한마디를 남겼고, 미처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딸칵 하고 전화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로 전화 를 했는지, 몇 시에 도착할 건지, 마중을 나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 지, 아버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알아, 그 말 한 마디면 내가 모든 사태를 단박에 이해하고 척척 알아서 움직일 거라는 듯, 아버지의 전화는 간략했다. 나는 가능하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아버지와의 만남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은 너무 간략해서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나는 두 번째 걸려온 그 전화 역시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느꼈다. 보호자가 나와야 한다는 담당 형사의 요구와, 새벽 첫차로 올라오겠다 는 아버지의 통보는 딱 들어맞는 대화였다. 그 둘간에 이어져야 할 전화선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그 사이 에 불필요하게 끼여들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가까이서 아버지의 체온까지 느끼고 있는 거였다. 이 여름의 무더위만 아니었다면, 힘이 남 아돌아 주체하지 못하고 망나니처럼 돌아다니는 동생이 또 화를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는 일도, 어딘가에서 전화선이 녹아 내리는 일 도, 내 방의 전화기가 두 번씩이나 울어대는 일도, 절대 없었을 것이다. 슬픈 여름이었다.

전철이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3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나는 맞은편 창문 안에 있을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 다. 창 속에서 나만 홀로 오른 손을 든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시후에야 눈에 익은 아버지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얗 게 센 머리에 검은 빛깔을 띠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섞여 헝클어진 머리였다. 아버지는 어느새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번 역에서 내린다는 눈짓을 보내려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로 졸고 있었다. 내 시선이 닿자 고개가 옆으로 떨구어지며 아버지 의 몸이 막 기울기 시작했다. 옆 사람이 일어나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그때 마치 내 생각을 시험해보겠다는 듯,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는 힘없는 모습으로 쓰러져갔다.

"내려야 되요."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행여 내 목소리를 못 들었을까봐, 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여기서 내린다는 말을 해주었다. 잠시 눈을 끔벅이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버지는 곧 일어나 출입문 옆의 기둥을 붙잡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졸음보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새벽부터 올라오며 쌓였을 피로감이, 나와 함께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가속도가 붙어 누적되기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의 표정은 무거워보였다.

나는 가능한 느린 걸음으로 3호선 승강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이제야 자신의 정상적인 보폭을 되찾았다는 듯이 나와 한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었다. 마치 서로 호흡을 맞추어 걷기라도 하듯 아버지와 나는 발을 맞추어 걷고 있었다. 3호선 승강 장에 도착해 내가 멈추자, 아버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걸음을 멈추고는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강남 방향의 전철을, 나 는 불광동 방향의 전철을 타면 됐다. 서로 반대 방향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강남 터미널까지 아버지를 배웅해 줄 생각이었 다. 한 걸음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는 깃이 누렇게 변색된 와이셔츠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더니, 갑자기 지갑을 꺼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의 행동에 놀란 내가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까만 색 지갑에서 만원 짜리 몇 장을 꺼낸 아버지는 불쑥 내게 손을 내밀었다. 헤어지기 전에 악수라도 할 듯 이 쑥 뻗은 아버지의 손이 내 앞에 와 멈추었다. 네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 이제 네 갈 길을 가라, 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내가 화가 난 건 아버지의 지레짐작하는 표정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할 힘도 남아있지 않을 것처럼 왜소한 모습 으로 서 있던 아버지가, 다 큰 자식에게 용돈을 내밀고 있다는 그 상황이 너무나 한심스러워서였다. 내가 무슨 밑바닥 인생으로 추락이라 도 해, 이런 식으로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비 가슴이 찢어지고 자식이 굶어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돈이라면 지금 당장 내 주머니에도 아버지를 시골까지 택시로 모시고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 들어 있었다. 무례했다. 어떻게 다 큰 자식에게 용돈 줄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유난히 희게 보이는 아버지의 하얗게 센 머리를 보며 난 잠시 치욕감에 이를 악다물 어야 했다.

"괜찮습니다." "그냥 받아 두어라." "… 돈 있습니다." "허 참 받아두라니까." "……" 손톱이 뭉그러지고 딱딱하게 달라붙어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린 아버지의 손안에는, 푸른빛을 띠는 만원 짜리 몇 장이 무겁게 들려 있었 다. 나는 아버지의 바지춤 아래로 시선을 떨구어야 했다.

부모품에서 자란 동물은 성장하면 아무런 미련 없이 그 품을 떠나 당당하게 먹이사슬의 경쟁자가 되었다. 내게 가족의 의미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먹이사슬로 걸어 들어가기 전에 불가피하게 머물렀다 서둘러 빠져나와야 하는 곳. 나는 대학에 들어간 후로 한 번도 집안에 손 을 벌려 본 적이 없었다. 사정이 어려워지면 학교를 휴학했지 집 쪽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경제적 독립은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내가 악착같이 홀로서기를 하는 한 아버지가 아니라 그 누구도 내 영역을 침범해오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아버 지가 손을 내밀고 있는 거였다. 이제와서 나를 무시할 작정을 했거나, 아니면 내 생각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동안 지켜온 내 영역을 침범하 겠다는 사악한 심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터미널까지 아버지를 배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불광동 방향의 전철이 승강장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물러설 줄 모르고 여전히 아버지와 나 사이에 버티고 있는 아버지의 거친 손을 노려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어쩌면 내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아니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불광동 방향의 전철이 도착하자, 나는 부리나케 돌아서서 도망치듯 전철에 올랐다. 내리려는 사람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선 나는 무작 정 옆 차량으로 걸어갔다. 아버지와 가능한 멀어지고 싶었다. 맞은편 전철도 막 승강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방향의 전철 을 타고 헤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무작정 전철 안으로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 순간 불쑥, 지금쯤 아버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가 궁 금해진 것이다. 돈을 손에 쥔 채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 아니면 지갑에 돈을 넣고 돌아서서 도착한 전철에 올랐 을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상황에서 어떤 표정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했을지, 예전처럼 쉽게 짐작이 되지 않는 거였다. 순간, 나는 방향을 바꾸어 막 닫히려다 다시 열리고 있는 출입문을 통과해 전철에서 내렸다. 나를 내려준 전철은 곧 출 입문을 닫으며 출발했다.

나는 승강장 기둥에 몸을 가리고 조금 전 아버지가 서 있던 자리를 살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곧 강남 방향으로 가는 맞은편 전철이 출입문을 닫으며 출발했다. 나는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철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비명이라도 지 를뻔 했다. 전철 안에서 아버지가 손잡이를 잡고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였다. 아버지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할 수만 있다 면 내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눈빛은 원망하는 눈빛도, 경멸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연민이 가득 담긴 슬픈 눈으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가장 슬퍼지는 건 자신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의 표정을 확인할 때였다. 아버지는 그걸 다 아는 사람처럼, 내게 너무나 선명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아버지를 태운 전철은 너무나 느리게 움직였다. 더운 날씨에 쇠바퀴가 눌러 붙기라도 한 듯 천천히 움직였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있어야 했다. 정지한 듯 느리게 움직이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한 개의 작은 알 에서 깨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철저히 혼자였다면, 누군가의 표정에서 슬픔을 확인하는 일 따위는 없 었을 테니까 말이다. 여느 짐승처럼 자신을 동정하지도 않고, 자신이 슬프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전철 꼬리가 터널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에도, 나는 한동안 승강장에 선 채로 터널 속 어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의 슬 픈 눈빛이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은 터널 속 어둠은, 아버지와 헤어질 때마다 느끼는 암담함만큼이나 깊었다. 승강장 기둥에 손 을 짚은 채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까지, 머리 위 환기구에서는 더운 바람이 쉼없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 딘가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멍하게 눈만 뜬 채 승강장 안을 맴돌았다. 발걸음을 멈추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어린 아이처럼 엉 엉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만 같아, 사람들과 부딪쳐가며 넋나간 사람처럼 승강장 안을 맴돌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전철역을 빠져 나 왔다.

밖으로 나오자, 새하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눈이 따끔거렸다. 햇볕 아래로 발을 들여놓은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희부연 열 기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사방에서 아른아른거리고, 그 사이로 길을 가득 메운 차와 상가 건물이 흐물거리며 지나쳐갔다. 한낮의 거리에 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인적이 뚝 끊겨 있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꽂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에 심한 통증이 일어서야, 나는 무작정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온 몸은 땀투성이였다.

나는 양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서 순백색으로 익어가는 달걀 흰자위처럼 새하얀 해가, 세상을 달구려 몸부림치는 혹독하고 사나운 열기를 쏟아부으며 하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때 햇빛 사이로 날아가던 작은 새 한 마 리가 까만 음영을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해를 마주한 채 움직일 줄 모르고 길거리에 서 있던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아버지와 헤어져, 나는 이제 영영 혼자가 될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그 순간 나는 온 몸이 떨리도록 심하게 진저리를 쳤다. 모든 땀구멍이 일시에 활짝 열리기라도 한것처럼 내 몸은 다시 흥건히 젖어갔다. 지독한 폭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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