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공터
성 명 : 박화영

그림=류하완(화가)
이 도시에 공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불길한 징조였다. 공터는 도시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는데 이른바 깔딱고개라 불리는 악명 높은 긴 고갯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네에 있었다. 고갯길 양옆으로는 연립주택과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 특히 사거리를 형성하는 부근에는 편의점과 게임방, 세탁소 등이 자리했다.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갑자기 평지가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고원지대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집값이 쌌다. 특히 고원지대에는 편의점이나 게임방, 술집, 노래방 등등의 이른바 문명 시설이 없어 불편했다. 단지 한아름마트란 이름의 작은 동네 슈퍼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고원지대에 속한 사람들은 어쩌다 생필품이 떨어지는 새벽이면 맥주나 물, 컵라면 등등을 사러 가까운 편의점까지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야만 했다. 이 고원지대 한가운데에 바로 문제의 공터가 있었다.

처음 인근 주택 대여섯 채가 헐리고 그 자리가 공터가 됐을 무렵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이 금세 그 자리에 연립주택이나 원룸 같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리라 짐작했다. 그때까지 공터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등교하는 학생들이나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어쩌다 한번 공터에 눈길을 던지는 정도였다. 늦은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을 향해 깔딱고개를 넘어오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공터 주변에 토사물을 게워낼 때 이외에 공터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났건만 공터는 여전히 버려진 채였다. 사람들은 조금씩 공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공터에서 빈 술병이나 본드 같은 것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터를 모든 범죄의 근원지이자 종착지처럼 여겼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 말대로 이 도시에 공터를 내버려두는 짓은 불길한 징조를 넘어 죄악이었다. 이 말을 듣고 그 일대의 주민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공터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달이 뜨지 않거나 초승달이 뜨는 으슥한 밤이면 사람들이 하나둘 공터를 방문했다. 그들 손에는 으레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게 마련이었다. 간혹 양손으로 양동이나 대야를 받치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음험한 재단에 몰래 재물을 바치러 오는 신자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은밀하게 쓰레기들을 버린 다음 얼른 뒤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골목으로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우연찮게 사람들끼리 마주치기도 했다. 사람들은 애써 서로를 외면한 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공터에는 이내 쓰레기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들거나 혹은 몇몇이 불면에 뒤척이는 밤이면 작은 트럭이 조심스럽게 동네의 굽이진 길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용히 운전한다 해도 엔진 소리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그럴 때마다 뒤척이던 사람들이나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새우등을 한 채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음 날이면 공터 한쪽에 망가진 소파나 장롱, 책상이나 의자 따위가 버젓이 놓여 있곤 했다. 그 무렵 몇몇 아이들이 공터에 와서 놀기 시작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어른들은 이내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저주받은 땅을 서둘러 벗어나기라도 하듯 종종걸음으로 공터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공터는 아이들이 놀기에 위험한 곳이었다. 언제, 어떻게 다칠지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터에서 놀 시간이 없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모두들 학원에 가야 했다. 물론 공터를 찾던 그 몇몇 아이들도 하나둘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터는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의미로 완벽하게 버려지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이왕 버려진 공터에 뭔가를 하나 더 버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공터에는 늘 악취가 맴돌았다. 공터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은 창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공터 맞은편 길가에 놓여 있던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는 손님이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안 그래도 아랫동네에 들어선 편의점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형편이었다. 그는 곧 구청에 공터에 관한 진정서를 낼 작정이었다.

사람들은 단지 버리기 위해서만 공터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를 태우거나, 파묻거나, 뿌리기 위해서도 공터를 찾았다. 눈 밑으로 짙은 기미가 낀 여자는 자주 뭔가를 태우러 공터로 왔다. 친절하게도 공터에는 여자를 위해서 누군가 버리고 간 드럼통이 있었다. 여자는 그 드럼통에 편지며 엽서, 혹은 곰 인형 따위를 집어넣고 불을 붙이곤 했다. 인적이 끊긴 한밤중에 술에 취해 공터 곁을 지나는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인가가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불길 앞에서 등을 보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은 여자에게 치근덕거리거나 혹은 주의를 주기 위해 말을 걸려고 다가서다가 문득 드는 오싹한 느낌에 서둘러 자리를 피하곤 했다. 여자와 달리 인근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살던 남자는 새벽녘이면 뭔가를 파묻으러 자주 공터를 찾았다. 그는 늘 사람 키만 한 것을 검은 비닐로 감싸 안고 삽을 든 채였다. 남자는 불이 붙은 드럼통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여자의 뒷모습을 한번 쓰윽 훑어보았을 뿐 자신이 가져온 것을 파묻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나마 여자와 남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밤에 몰래 움직였기에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노파의 경우는 달랐다. 노파는 공터에 소금을 뿌렸는데 낮이건 밤이건 그 일을 한 탓에 금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사람들은 노파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치매 증상이 있는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번은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가 소금을 뿌리고 있던 노파의 행동을 저지한 일이 있었다. 그는 이 동네의 터줏대감으로서 남들보다 솔선수범해야 하고 교양 없는 주민들을 선도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노파의 행동을 저지하고 집으로 얌전히 데려다 줘야겠다고 항상 마음먹고 있었다. 그날따라 노파는 늘 준비해 오던 소금을 깜빡 잊고 나온 탓에 한아름마트에서 소금을 한 봉지 샀다. 물론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는 소금은 소금대로 팔았다. 그런 다음 뒤를 조용히 따라가 막 소금을 뿌리기 시작한 노파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돌려세웠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와 대낮부터 강소주를 나눠 마시고 있던 이씨와 김씨가 파라솔에 앉아서 그 모습을 멀거니 구경했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와 노파가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렇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아니었으므로 이내 이씨와 김씨는 시들해지고 말았다. 고개를 돌린 채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고 소주를 비웠다. 이씨는 오징어다리를 질겅거렸고 김씨는 소주잔에 다시 소주를 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놀라서 급하게 일어서느라 소주병이 쓰러져 바닥에 뒹굴었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가 두 사람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인 남자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주인 남자를 맞으러 달려 나갔다. 이씨가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 어깨에 팔을 두르는 동안 김씨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는 김씨의 다그침에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다시 가게 앞에 세워 놓은 파라솔이 있는 데까지 왔다. 이씨가 가게에서 새 소주를 들고 와 주인 남자에게 따라주었다. 주인 남자는 단박에 술을 들이켰지만 여전히 몸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공터 한가운데에 서 있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노파는 두 사람에게 등을 보인 채 뭔가를 중얼거리며 계속 소금을 뿌려댔다.

공터가 생긴 그해는 여러모로 우울한 한 해였다. 거리 곳곳에 파격세일을 알리는 전단이 나붙었고, 대낮에도 동네를 방황하는 남자들이 늘어갔다. 고원지대 아랫동네에서는 심심치 않게 좀도둑이나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고원지대에서도 몇 차례인가 강도가 들었다. 바야흐로 창문에 방범창이나 경비 시스템을 달지 않은 채 창문을 열어놓고 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즈음 고원지대의 주민들을 가장 절망에 빠트렸던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박씨가 곗돈을 들고 도망갔던 것이다. 이 일은 두고두고 분란거리를 만들었다. 그 결과 두 집이 이혼을 하고, 한 집이 야반도주를 했으며, 여러 집에서 부부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던 계절이었다. 이처럼 하루하루가 어수선했던 이곳에 고양이가 첫발을 내디딘 것은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조금 흐리다가 날씨가 갤 것이라고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날씨가 개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음울한 날씨만큼이나 축 처지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황량한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걸어 다녔다. 그중 몇 사람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깔딱고개를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과 달리 고양이의 발걸음은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다.

최초의 고양이 한 마리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이내 그들은 동네 전역을 장악했다. 제일 먼저 점령한 곳은 물론 공터였다. 그곳은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이었기에 곧 고양이들의 땅으로 편입되었다. 그 네발 달린 생물은 왕성한 번식욕과 정복욕으로 차츰 그 세를 넓혀갔다. 다음 세상은 고양이들의 세상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의견을 낸 것은 역시나 예의 그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였는데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공터는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살고 있던 고양이들에게 약속의 땅이자, 안식의 대지였다. 우선 공터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쳐났다.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들 중에는 처치가 곤란한 음식물들도 꽤 있었다. 공터와 면해 있는 연립주택이나 빌라에서는 공터까지 일부러 나오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 다음 음식물이 담긴 비닐봉지를 떨어트렸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공터에 터를 잡은 고양이들은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내 공터만의 독특한 먹이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이 먹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들이었다. 사람들은 공터 생태계를 지탱하는 생산자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은 곧 1차 소비자인 쥐들을 불러들였고, 다시 최종 소비자인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고양이들은 여러모로 골칫거리였다. 집 마당이며 부엌이며 계단이며 아무튼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거나 혹은 대문을 나설 때마다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것들은 재빨라서 잡기도 쉽지 않았다. 큰 소리를 지르거나 뭔가를 던져서 쫓아버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도 고양이들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잡으려고 뛰어갈 때에나 그들은 그 특유의 날렵함을 선보이며 도망쳤다.

게다가 밤만 되면 고양이들은 서로 서열을 다투느라 시끄럽게 싸웠다. 발정기에 접어든 고양이들은 특유의 애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특히 부슬부슬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심한 밤에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는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 소리를 가장 참지 못했던 사람은 공터와 바로 인접해 있는 원룸 3층에 세 들어 살던 서른 중반의 여자였다. 그녀는 밤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뒤척였고 그 때문에 눈가에 주름과 기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불면증에 시달리던 여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 자신의 하이힐을 집어 던진 다음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여느 때 같으면 사람들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큰 소리로 쫓아내더라도 고양이들은 잠시 흩어졌을 뿐, 다시 모여 들어 예의 그 소름 끼치는 합창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신기하게도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출근하려고 막 현관에 섰을 때에야 자신의 하이힐 한 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자는 샌들을 발에 꿰 차고 고양이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은 다음 자신 몫으로 긴 한탄을 중얼거리며 하이힐을 찾으러 공터로 나갔다. 여자는 자신의 하이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동시에 왜 어젯밤에 고양이들이 그토록 잠잠해졌는지도 금세 깨달았다. 여자가 던진 하이힐의 뾰족한 굽이 죽은 고양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공터에 소금을 뿌리러 오던 노파가 그 고양이를 발견했다. 노파는 고양이 머리에 박힌 하이힐을 뽑은 후 고양이의 몸 전신에 굵고 하얀 소금을 뿌렸다. 하지만 묻어주지는 않고서 자리를 떴다. 하이힐에 맞아 죽은 고양이는 하루 내내 바깥에서 썩어가다가 겨우 다음 날 새벽에서야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 안식을 준 사람은 반지하방에서 살던 남자였다. 그는 그날도 한 손에는 검은 비닐로 감싼 뭔가와 삽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전등을 비추며 공터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중이었다. 전등 불빛에 죽어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고양이 옆으로 가서 쪼그려 앉은 다음 손전등으로 고양이의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그는 고양이의 몸 주변에 뿌려져 있는 굵고 하얀 결정들을 어리둥절해 하며 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들고 온 삽으로 고양이 바로 옆을 파기 시작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생기자 그는 삽으로 고양이 시체를 밀어 넣은 다음 흙을 덮어서 표면을 평평하게 골랐다. 고양이를 다 묻은 그는 자신이 가져온 것을 묻을 만한 장소를 찾아 공터 여기저기에 손전등을 비추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죽은 다음 날, 도시에는 큰 비가 내렸다. 마치 증오와 파괴로 똘똘 뭉쳐서 미쳐버린 태풍이 만들어내는 듯한 비와 바람이었다. 물론 공터에 비가 내린 적은 그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장대비가 쏟아진 적은 없었다. 

그림=류하완(화가)


노아의 방주를 떠올릴 만큼 많은 양의 비였던 터라 고원지대의 주민들마저도 수해를 입지 않을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비는 곧 그쳤다.하지만 햇살이 드러나는 대신 여전히 어두운 구름이 뒤덮여 있어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터에 파묻혀 있던 수많은 비밀들 중 일부가 빗물에 씻겨 비로소 지상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하이힐에 맞아 죽고, 노파가 소금을 뿌리고, 반지하방 남자가 묻어주었던 고양이 시체도 땅 밖으로 드러났다. 그 밖에도 공터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숨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숨겨진 것들의 속성이 늘 그렇듯이 비밀스럽고 또 비열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것은 공터에 다시 고양이의 시체가 드러난 지 일주일 뒤였다. 그새 고양이들은 한동안 공터에 모이지 않았다가 다시 한두 마리씩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사건을 목격한 사람 중에는 인근의 대학교에서 고고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몸매에 검은 안경테를 쓰고 얼굴에 여드름까지 난 그는 공터에 남다른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고원지대의 아랫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즉, 꽤 여유 있는 생활을 해왔던 셈인데 그 같은 즐거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중소기업의 임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손이자 맏이로서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발생한 집안의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외면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대신 그가 취한 유일하며 실질적인 행동은 집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그해 여름 바로 이 고원지대로 전입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취직을 더 미루고 자신의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공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공터는 미지의 신대륙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공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공터를 구석구석까지 촬영했다. 촬영한 사진들이 그의 자취방 한쪽 벽면에 가득 나붙었다. 또한 공터를 A부터 I까지 9개 영역으로 나누고 각 부분에 무엇이 버려져 있는지를 일일이 기록했으며 그 목록을 매일 체크하고 수정했다. 그는 언제나 유카탄반도로 가서 마야 문명을 탐험할 꿈을 꿨다. 전사의 신전을 찾아 사람의 심장을 올려놓았던 돌 재단에 귀를 대보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이 지난한 작업들이 언젠가 자신에게 반드시 찾아올 유카탄반도의 유적 발굴을 위한 연습이 되리라 믿었다. 또 그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이 가진 고민들, 즉 다음 해 등록금을 자신이 벌어야 하며 아버지의 재취업이 갈수록 가망 없어 보인다는 사실 등등을 머릿속에서 버릴 수 있었다.

고고학과 학생의 기록에 따르면 마네킹은 C구역에서 발견되었다. 처음 마네킹을 발견한 것은 하이힐을 고양이에게 던진 예의 그 여자였다. 여자 역시 공터에 남몰래 쓰레기를 버리곤 했는데 주로 아침 출근 시간을 이용했다. 그녀의 출근 시간은 무척이나 이른 편이었다. 아침 일찍 회사 근처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웰빙에 가깝다고 여겼고, 거기서 남들과는 다른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여자는 아침이면 생과일과 야채를 갈아서 마셨고, 점심 도시락도 손수 쌌다. 저녁은 대체로 굶는 편이었고 먹어도 간단한 샐러드 위주였다. 여자의 가장 큰 즐거움은 백화점 방문이었다. 여자가 백화점을 찾는 이유는 순전히 마네킹을 보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마네킹 위에 입힌 옷보다 마네킹의 마르고 길쭉한 몸매를 늘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여자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삶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들 때문에 여자는 최근 자신의 생활리듬이 깨진 것을 느꼈다. 그 때문에 우울했던 여자는 아침 출근길에 공터에 버리곤 하던 쓰레기들을 그날따라 유독 묵직하게 느꼈다. 여자는 자신의 손에 들린 쓰레기들을 보며 건강하고 자연적인 삶을 꿈꾸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배출물들이라고 생각했다. 평상시 같으면 여자는 쓰레기를 저 멀리 공터 한구석을 향해 던진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따라 땅 위에 불쑥 솟아 있는 뭔가가 보였다. 그때 그냥 뒤돌아섰다면, 하고 여자는 그날 일을 회상할 때마다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자는 뒤돌아서지 않았고, 역시나 그날따라 평상시 차가운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꿈꾸는 그녀답지 않게 그 뭔가를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처음 그것을 멀리서 봤을 때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땅에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가서던 여자는 땅속에서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린 것이 사람의 팔임을 알아보았다. 사실 여자가 본 것은 마네킹의 팔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팔이라고 착각한 여자는 비명을 질렀고 이내 공터에 면한 인근 건물의 창문 몇 개가 열렸다. 몇몇 사람이 창에 고개를 내밀고 공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러 내다보았다. 하지만 공터는 어제와 달라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저 웬 여자 하나가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내 시큰둥한 표정으로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만이 창문을 연 채로 계속 공터를 주시하다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그는 공터를 연구하던 고고학과 학생이었다. 고고학과 학생은 먼저 여자를 일으켜 세운 뒤 여자의 팔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곧 고고학과 학생도 마네킹의 팔을 보았다. 그는 조금 주저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마네킹의 팔에 다가섰다. 그리고 이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그것은 그저 마네킹의 팔이었기 때문에 사람 팔과는 다른 점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마네킹 특유의 관절에다가 칠이 벗겨져서 하얗게 드러난 부분도 보였다. 그는 마네킹의 팔을 붙잡고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쉽사리 뽑히질 않았다. 여자는 고고학과 학생의 행동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빠르게 뒤돌아서서 도망쳐버렸다. 동네 일이라면 대놓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가 주춤주춤 고고학과 학생에게 다가와 어깨 너머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고고학과 학생은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도 곧 그것이 마네킹임을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땅 위로 불쑥 솟은 마네킹의 팔 주위를 파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마네킹의 전신이 발굴되었다. 두 사람은 이마를 훔치며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는 고고학과 학생의 어깨를 툭 치더니 손동작으로 술잔을 들이켜는 시늉을 해보였다. 고고학과 학생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뒤 마네킹을 가슴팍에 안고서 한아름마트까지 걸어갔다. 두 남자는 아침나절부터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출근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런 두 사람과 마네킹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인생 낙오자들이 벌이는 술판에 끼지 않고 오늘도 온전히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반응에 개의치 않고 이 나라의 정치 문제부터 경제, 교육, 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고학과 학생이 자기 옆에 세워 놓은 마네킹을 바라보았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 역시 마네킹의 위아래를 한번 훑어보더니 입맛을 다시고 술을 들이켰다.

장대비로 인해 마네킹이 드러난 뒤에도 도시는 일주일 동안이나 비구름에 덮여 있었다. 하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먹구름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도시의 일부인 고원지대 역시 비구름 아래에서 납작하게 엎드린 모양을 취했다. 일기예보에서는 때늦은 장마전선이 형성되었다고 공언했고, 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상 이변이 일어난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덧붙였다. 사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한 기상 이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탓에 사람들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그러나 뒤숭숭했던 그해만큼은 몇몇 사람들에게 일기예보가 불길하게 다가왔다. 그 몇몇 사람들 중에서도 또 일부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으로 날아들지 모르는 검은 편지를 떠올렸다. 검은 편지는 ‘어둠의 통첩’이라는 유치하고 잔뜩 힘이 들어간 명칭으로 불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명칭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이 편지가 뒷골목에서 은밀히 배달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 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그가 손을 대서는 안 될 돈까지 빌려 썼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더 이상 빌린 돈을 모두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검은 편지를 받은 집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집 안이 모두 텅텅 비어버리곤 했다. 가구는 물론이고 그 집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누렇게 변색된 벽지만이 바로 어젯밤까지 이 집에서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검은 편지가 어떤 모양이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이 검은 편지가 돌아다니고 있는지,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검은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항간의 소문대로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이 도시에서 사라져버렸을 터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검은 편지를 그저 단순한 괴담 정도로 치부했다.

공터에 실질적이고 전향적인, 모든 동네 주민들을 위한 해결책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이 일의 계기가 된 것은 하이힐을 고양이 정수리에 꽂아 죽인 여자였다. 여자는 공터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사실 그전에도 비슷한 민원이 이미 몇 건이나 들어온 상태였다. 하지만 구청은 진정서를 이면지로도 활용하지 않은 채 그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묵살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구청장이 지나가다 여자의 민원서류를 훑어보았다. 그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점심시간에 비서와 밥을 먹다가 자신의 지지율이 10퍼센트 가까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직후 내린 용단이었다. 공무원들은 구청장이 정말 열심이고 헌신적이라고 쑥덕거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구청장은 내심 흐뭇해했다. 구청장이 자리를 뜨자 공무원들은 언제 그런 잡담을 나눴냐는 듯이 돌아서서 각자의 업무를 보았다. 물론 모두가 업무를 본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키보드나 마우스를 내리치거나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는데, 이런 경우 십중팔구 컴퓨터 모니터에는 주식 시세표가 떠 있었다.

며칠 뒤 공터 입구에 이른바 양심 거울이란 것이 설치되었다. 사실 그것은 인근 도로에 설치되어 있던 도로반사경을 그대로 뽑아온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앞에 서면 사람의 모습이 굴절되어 보였다. 양심 거울을 설치한 뒤 공무원들은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 쓰레기봉지를 든 채 양심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고 온 쓰레기를 다시 그대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다. 쓰레기는 여전히 쌓였다. 어느 날 구청의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쓰레기 수거차가 고원지대를 꾸역꾸역 올라왔다. 물론 정해진 날짜마다 올라왔지만 그날은 공터 앞에 멈춰 섰다는 점이 달랐다. 쓰레기 수거차에서 몇 사람이 내리더니 공터의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은 비로소 공터가 정화되었다고 여겼다. 비록 며칠간이었지만 공터는 처음 비워져 있던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누군가가 다시 양심 거울 바로 아래에 페트병과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쓰레기를 놓고 갔다. 그 지점을 시작으로 쓰레기는 바이러스가 번지듯이 공터 여기저기로 번져 나갔다. 다시 예전처럼 작은 트럭이 헤드라이트를 끈 채 조심스럽게 동네의 굽이진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중 한 트럭이 빈 드럼통을 내려놓고 잽싸게 동네를 내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드럼통이 얼마 후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 쓰레기였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공터 주변에 접근금지라고 쓰여 있는 노란 테이프를 둘러치던 날, 동네가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주요 일간지 및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명실상부하게 동네는 이 도시에서 유명한 지역이 되었고, 그에 걸맞게 집값과 땅값은 폭락했다. 공터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갈 수 없었다. 공터는 강력한 자석처럼 주변 사람들을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옭아맸다. 바야흐로 사람들은 공터가 가진 거대한 힘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공터는 철저히 버려졌다. 사람들은 공터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멀리 돌아갔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꼭 누군가와 같이 붙어 다녔다. 물론 밤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사라졌다. 덕분에 공터에 쌓인 쓰레기 더미는 더 이상 늘지 않았다. 오랜만에 공터는 편안한 안식을 찾은 듯했다. 공터에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는 고양이와 노파뿐이었다. 소금을 뿌리던 노파는 경찰 통제선을 무시하고 들어가 조심조심 고양이를 피해 밤이고 낮이고 소금을 뿌렸다. 사건 현장을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들마저도 웬일인지 노파가 소금을 뿌리는 일련의 의식만은 완전히 막지 못했다.

사건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살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저 어느 집에서 요란하게 고기를 굽는다고 생각했다. 그중 한 부인은 냄새가 공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저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사실 그 단계에서 여자의 행동을 저지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드럼통에 넣은 팔은 불이 붙은 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팔은 훨씬 오래전에 누군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뒤였다.

경찰 취조에서 여자는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물론 드럼통에 넣은 팔이 누구의 팔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사람을 생각하면 항상 가늘고 여성스러워 보이던 팔이 생각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에 DNA 검사를 의뢰해야만 했다. 게다가 곧 난관에 봉착했는데 이번 사건이 시체나 유괴된 아기를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맡은 경찰들은 가늘고 여성스러운 팔 하나를 잃어버린 외팔이를 찾는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결론, 즉 여자가 아마도 내연관계의 남자를 죽인 후 시체를 유기했으며 팔 한쪽만 잘라 불에 태웠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곧 공터 여기저기가 파헤쳐졌다. 포클레인과 삽이 동원되어 공터를 구석구석 헤집자 동네 주민들이 몰려들어 경찰의 삽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노란 테이프를 쳐놓고 사건 현장으로 들어서려는 사람들과 취재진들을 막아섰다.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소금을 뿌리던 노파와 검은 비닐에 싸인 뭔가를 줄곧 파묻던 남자, 고고학과 학생,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도 있었다. 노파는 공터를 헤집는 경찰들을 향해 소금을 뿌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잔뜩 중얼거렸다. 평상시에는 노파의 출입을 막지 않았던 경찰들도 방송국 카메라가 돌아가던 이날만은 노파를 막아섰다. 결국 노파는 두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뭔가를 파묻곤 하던 남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빼며 연신 불안한 표정으로 경찰이 공터를 파헤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는 이내 자기 옆의 동네 주민에게 공터의 위험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고고학과 학생은 섬세하지 못한 경찰의 발굴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이래서 이 나라는 문화 후진국의 오명을 벗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공터 한쪽에서 찾았다, 란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쏠렸다. 취재진이 근처 현장으로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썼고, 경찰은 그 취재진을 막아서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모여들었던 경찰들은 이내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흩어졌다. 한 경찰이 소리를 지른 경찰의 뒤통수를 때렸다. 소리를 지른 경찰은 욕을 내뱉으며 자신이 파헤친 것을 경찰 통제선 밖으로 가지고 나와 전봇대 아래에 버렸다. 몇몇 사람들이 경찰이 버린 것을 보러 몰려들었다. 경찰이 파낸 것은 마네킹이었다. 나체의 몸에 반쯤 두른 검은 비닐이 마치 찢겨 나간 옷처럼 보였다. 이내 사람들은 싱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흩어졌다. 남자와 고고학과 학생만이 우두커니 서서 마네킹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철저한 조사 끝에 경찰은 공터에서 다수의 음식물쓰레기와 반쯤 부패한 고양이 시체 하나, 부서진 전자레인지와 텔레비전, 자전거 바퀴 등등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던 시체는 찾지 못했다. 조사는 곧 난항에 빠졌다. 여자는 계속 묵묵부답이었고 외팔이를 찾는 경찰의 탐문수사도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게다가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가고 있었다. 공터에서 나온 것이 그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팔 하나라는 점이 문제였다. 경찰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여자가 태운 것이 차라리 누군가의 머리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랬다면 금세 수사가 끝났을 게 분명했다. 방송국 기자들도 경찰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누군가의 잘려나간 팔 하나는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인 방송거리였지만 아무래도 머리보다는 임팩트가 약했다. 그즈음 오랫동안 전봇대 아래에 방치되어 있던 마네킹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접근금지를 알리던 노란 테이프는 어느 날 슬그머니 없어졌다. 다시 고양이들이 공터로 몰려들었다. 담력이 큰 사람들 순으로 공터를 찾는 사람 그림자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공터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공터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쓰레기가 버려졌다.

적월이 뜬 어느 날 밤 수상한 사람 하나가 공터에 나타났다.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그림자가 공터에 음산하게 드리워졌다. 여자는 곧 하얀 접시를 내려놓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고양이들을 불렀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멀찍이서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자는 접시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차분히 기다렸다. 곧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조심 여자에게 다가오더니 접시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여자는 고양이가 귀여운 듯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고양이는 날카로운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더니 멀찍이 떨어졌다. 여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잠시 어렸다가 사라졌다. 여자는 하얀 접시를 들고 공터에서 조용히 벗어났다. 여자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에 소금 봉지를 든 노파가 공터를 찾았다. 노파는 다시금 소금을 뿌리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다가 땅 위에 흩어져 있는 음식물들을 보았다. 노파는 두 번째라고 중얼거리다가 하늘에 떠 있는 붉은 달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봉투를 탈탈 털어 마지막 소금을 뿌린 후 뒷짐을 지고 공터에서 사라졌다. 그 후 노파는 더 이상 공터를 찾지 않았다.

검은 승용차 세 대가 조용히 고원지대로 올라왔다. 승용차에서는 검은 양복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동네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 무렵 공터 맞은편의 한아름마트에서는 불을 끈 채 조심조심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찢겨진 검은색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아내에게 나직이 욕을 내뱉으며 핀잔을 주었다. 모든 식구들이 발꿈치를 들고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조용히 한아름마트의 유리문이 열렸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침입자 중 한 사람이 병에 든 우유처럼 보이는 액체를 그의 얼굴에 뿌렸다. 곧 그의 얼굴은 플라스틱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 뒤에서 주저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던 식구들 머리 위로 건장한 체격의 검은 그림자 세 개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림=류하완(화가)

검은 승용차를 타고 온 또 다른 한 무리의 침입자들은 고고학과 학생의 원룸에 침입했다. 고고학과 학생은 그 무렵 패닉 상태였기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침입자들에게 순순히 끌려 나갔다.

그의 집 침대에는 잘려나간 사람의 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리 주위로는 온통 흙이 뿌려져 있었다. 마치 방금 땅에서 다리를 파온 것처럼 보였다. 침대 밑에서 흙이 담긴 비닐봉지가 발견되었다.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간 마네킹은 그의 옷장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침입자들은 피에 젖은 그의 침대 시트를 비롯해 마네킹과 관련된 모든 물건과 검은 비닐봉지, 벽에 붙어 있던 공터 사진 등을 회수해서 말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검은 승용차를 타고 온 마지막 한 무리는 새벽녘마다 뭔가를 버리던 남자의 집으로 갔다. 남자는 알몸인 채로 마네킹 옆에 등을 보인 채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들 중 하나가 알몸인 남자를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남자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한동안 멍청한 얼굴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침입자들은 잠자코 남자의 행동을 내버려두었다. 남자는 침입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침입자 중 한 사람의 가슴팍에는 침대에 누워 있던 마네킹이 안겨 있었다.

각자의 일을 모두 끝낸 침입자들은 공터에 집결했다. 승용차 한 대에는 대여섯 개의 마네킹이 포개져 놓여 있었다. 다른 두 대의 승용차에는 고고학과 학생과 남자가 나뉘어 타고 있었다. 침입자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키가 큰 사내가 공터로 들어섰다. 그 옆으로 두 사내가 나란히 섰다. 공터 구석구석에서 노란 안광을 발하는 눈빛들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중 눈 하나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가 큰 사내는 주먹으로 빠르게 달려들던 그것을 내려쳤다. 고양이 한 마리가 등뼈가 부러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여기저기서 위협하는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내는 불안해했지만 키가 큰 사내만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한 사내가 남자의 침대에서 가져온 마네킹을 안고서 공터로 달려왔다. 키가 큰 사내는 마네킹을 안은 사내에게 고갯짓을 했다. 사내는 들고 온 마네킹의 손목 하나를 부러트린 다음 땅바닥에 던졌다. 키가 큰 사내는 쭈그리고 앉아 부러진 마네킹의 손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내의 얼굴에 언뜻 놀라워하는 빛이 어렸다. 마네킹의 손목에서 조금씩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키가 큰 사내는 손목을 집어 든 다음 다른 사내에게 그것을 건넸다. 사내는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마네킹의 손목을 천으로 감싸 그의 양복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다시 승용차에 오른 뒤 조용히 고원지대에서 사라졌다.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들을 뒤쫓았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틀 동안 고원지대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동네 주민들 몇이 한아름마트 주인 내외가 야반도주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난리를 피웠다. 그에 비해 고고학과 학생이나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하던 남자의 행방불명은 그들 가족과 집주인만이 관심을 가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다. 파출소에 두 사람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들은 수많은 실종자 명단에서도 맨 끝에 위치했다. 두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인쇄되어 동네 여기저기에 붙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되기 전에 그 위로 급매물로 나온 주택이나 저이자의 사채 광고지가 나붙었다. 그마저도 한아름마트 자리에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설 즈음에 전단이 모두 찢겼다. 한아름마트의 중년 남자에게 돈을 뜯긴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네 주민들은 이곳에 들어선 편의점에 만족을 표했다. 그 무렵 공터에 시공계획을 알리는 푯말이 섰다. 동네 주민들은 연이어 골칫거리들이 해결되어 간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곧 공사 차단막이 설치되고 고양이들이 쫓겨났다. 밤마다 음산한 바람 소리와 고양이의 울부짖음이 들리던 공터에서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고양이들은 동네 여기저기로 흩어졌지만 이내 한두 마리씩 시체로 발견되었다. 누군가 독극물을 풀어 고양이들을 죽이고 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애완견을 기르는 동네 주민 몇이 음험한 그 행동에 분개하고 반감을 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이름 모를 범인을 감사히 여겼다. 고양이가 동네에서 모두 자취를 감춘 이튿날 인근 원룸 옥상에서 한 여자가 뛰어내렸다. 여자가 벗어놓은 굽 높은 하이힐과 유서가 옥상에서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드디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여전히 고양이 눈이 보인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공터는 평평하게 다듬어지고 그 위로 두꺼운 시멘트가 발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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