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선긋기
성 명 : 이은희
소설 심사평 - 김화영·강석경

그림으로 커가는 성장기… 문학적 성취도 높아

예심에서 올라온 총 9편의 단편들은 대부분 아쉬움을 남겼다. 제목부터 너무 직설적이라 문학의 향취가 삭감되었고, 동성애를 다룬 '숭례문 블루스' 같은 단편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입심은 있으나 결말이 식상했다. 그중 최정나의 '잘 지내고 있을 거야'는 상징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어 마음을 끌었다. 오빠와 동생 부부가 가족 골프를 치러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세밀화처럼 그렸는데, 벚꽃 휘날리는 골프장에 날아오는 까마귀들과 "닌자와 가부키" 같은 호칭은 연극무대를 떠올리게 했다. 리무진과 골프로 대변되는 풍요로운 물질의 이면에 상처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어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지만 골프 이야기가 길어서 약간 산만했다.

◇김화영 문학평론가(왼쪽)와 강석경 소설가.


당선작은 순식간에 정해졌다. 이은희의 ‘선긋기’는 그만큼 문학적 성취도가 높았다. 고가도로 옆에 지은 지 삼십 년이 되며 뒤에는 달동네가 있는 아파트, 그 오래된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소녀가 그림으로 의미를 쌓아가는 성장기는 눈을 사로잡았다.

어른이 되기 전 아이들은 흔히 생각한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자기 존재에 대해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고 반의한다. 32㎏의 선병질 주인공도 “똥처럼 세상에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럽고 두려워하지만 그림으로 무의미를 의미화한다. 7층 아줌마가 죽은 아들에게 매일 공양하느라 창밖으로 던진 문어모양 소시지 반찬을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양으로 그리고, 늘 리어카를 끌고 폐품수집하는 할머니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할머니와의 우정은 “흰색과 검은색, 흰색의 검은 부분과 검은색의 흰 부분, 그리고 그림자의 색” 다섯 가지로 표현하기로 계획한다.

얼마나 절묘한 색깔인가. 소녀는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면의 그림자 색까지 보고자 한다. 예술가의 시선이다. 그림의 바닥부터 맨 위까지 선이 쌓이게 놓아두면서 “이렇게 가득 모아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린다”고 말한다. 이것도 예술가의 행위이다. 어린 예술가의 조용한 분투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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