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모대가리금풍뎅이 한 쌍과 가시돌거미 새끼들의 삶과 죽음을 빌려서 ‘애벌레 같은 아이를 안고 뛰어내린 어미’를 보여준 ‘잃어버린 길’(박여주), ‘탱탱한 가지 위에서/ 포슬포슬한 감자 위에서/ 아삭아삭한 오이 위에서/ 알싸한 쪽파 위에서/ 팔랑거리는’ 나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린 ‘세 시의 나비’(이승주), ‘열 아홉 평 진달래 아파트 가판대’에서 ‘오천원에 세 장’씩 싸구려로 팔리는 ‘30수 면사 런닝셔츠’ 같은 ‘이력서’, 서양문물이 세계화의 이름으로 동양을 점령해버린 이 시대에 ‘아시아 갈대’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태평양을 건너가서 미국의 오대호 연안에 뿌리를 내렸다는 ‘여정기’(김미안) 등이 그러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편의 시,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평가되기에는 모자라는 데가 있어서 아쉬웠다. 부분을 다루는 이들의 솜씨가 전체를 마무리하는 기량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당선작으로 뽑힌 ‘작은 손’(문신)은 오늘의 평범한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지하보도에 엎드려 있는 남자의 손’과 ‘제 목숨조차 스스로 거두지 못한 친구의 손’을 오버랩시키면서, 죽은 친구의 영안실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인이 남기고 간 ‘빈자리의 쓸쓸함’, 조객들의 허황된 농담과 공허한 웃음, 피상적인 관습이 되어버린 조문과 속내에 감추어진 삶의 슬픔이 저녁에 내리는 싸락눈처럼 잔잔한 공감을 일으킨다. 아무런 내면적 교감도 없이 겉 모습만 스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에 숨겨진 우수를 평이한 일상어로 형상화했다. 억지로 만들어낸 은유적 표현이 적어서 친근하게 읽히고, 산문의 어조에 시적 정취를 담았다. 구체적 부분에 충실하면서도 전체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함께 투고한 ‘숲으로 가는 곰 인형’에서도 이 작품과 대등한 수준의 저력이 드러난다. 새 시인의 등단을 축하하며, 계속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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