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에서 올라온 9편의 소설들 중 특히 주목하여 읽은 작품은 ‘아라비안살토 1과 3/4회전’ ‘홈스위트홈’ ‘공터’였다.
‘아라비안살토…’는 루게릭병에 걸려 운신을 못하고 죽어가는 젊은 여자와 그녀의 병시중을 들며 살아가는 젊은 남편 사이의 심리적 긴장과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세련된 문장과 치밀한 묘사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리듬체조의 절정인 공중돌기 기법에서 이끌어낸, 도약과 착지라는 상징이 주인공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소유욕과 질투로 인한 살해 욕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여 구심점을 잃고 있다.
‘홈스위트홈’은 성찰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에워싼 혹은 그 밑에 도사린 어두운 심연을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점차 물신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불안한 내면과 강박증을 무리 없이 밀도 있는 단편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나 기왕에 많이 다루어진 소재로서 참신성이 떨어진다. 대체로 무리 없이 무난하고 흠이 적다는 것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공터’는 이즈음에 흔히 볼 수 있는 글쓰기의 유형에서 벗어나 있다. 주인공을 ‘공터’로 상정하여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만화경처럼, 거울처럼 담아낸다. 대도시의 가난한 산동네 꼭대기에 어느 날 용도를 알 수 없는 공터가 생기고 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이곳에 ‘쓰레기’, 즉 나름의 어두운 비밀과 비루함과 거짓을 투기한 후 마침내 시멘트로 봉인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삶의 불길한 징후와 암울한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소설이 내장하고 있는 풍부한 ‘스토리’들과 장면 전환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앞으로 좋은 장편을 쓸 수 있는 역량을 엿보게 한다. 소설을 내면성에 가두지 않고 과감히 공터로 끌어내어 속도감 있는 단문, 드라이한 문체로 비 오고 바람 불고 햇빛 비치는 세상을 펼쳐 보이는 것이 미덥고 반가웠다. 축하와 함께 정진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