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인문학자시다. 그분이 읽던 흑백의 서책들은 이제 나비 한 마리 꿈꿀 수 없지만 아버님은 가끔씩 내 삶의 철자법이 맞지 않을 때에도 설핏 숨어들기에 좋은 내 인문학의 서책이셨으며 따뜻한 은신처였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내 문학의 시원은 아버지로부터의 어쩔 수 없는 유산일 것이며 유산이란 때로 세월의 미시성을 강의 깊이로 흐르다가 문득 마주치는 어머니와도 같은 것. 그리고 나에겐 내 필생의 힘으로도 낳을 수 없는 어머니라는 의미와 인연의 텃밭, 그 대신 신생의 어머니를 만나는 세월의 대가가 곧 나비였으리라.
권태가 욱신거릴 때마다 텃밭을 찾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 사나이는 내 권태의 목록과는 관계없는 도시 저쪽의 서류철을 뒤적이거나 어느 소인국의 작은 병정처럼 돌아오곤 했다.
나비가 우화를 꿈꾸는 건 오후의 우울을 낳기 위함이지, 젖은 소낙비가 파줄기의 어느쯤을 똑똑 부러뜨리기도 하는 그 놀랍고 목이 긴 은유 속을 낮은 금속질의 열쇠로 딸깍, 열어주던 한 아이 그 속에서 올겨울엔 아들 정환이와 오월이 되어 은신시킬 새로운 파씨들을 골라보는 일…
내 문학의 항해가 검은 돛배일 때마다 은밀한 등대가 되어주신 박경원 선생님과 ‘차령문학’ 그리고 시내에서 십분 거리의 내 귀가길을 동행해준 몇십년 동안의 평택 방축리행 시내버스에게도 겸손한 감사를 전합니다.
또한 저에게 큰 기회를 주신 유종호 신경림 심사위원님과 세계일보사에 감사드리며 더 깊은 문학의 길로 정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