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예심 통과 작품이 담긴 봉투를 열어보는 건 사실 숙연한 일이다. 어떤 진기한 보석, 혹은 어떤 신비로운 식물이나 동물과 감전되듯 조우하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지만, 그런 행운이 닿지 않더라도 봉투 안에는 자신의 생을 시에 걸어보려는 이들의 시적 감수성을 꿈틀거리게 한 삶과 최선을 다한 기량이 오롯이 지어낸 시편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처음에 심사자들은 본심에 올라온 21명 응모자의 작품들이 다 고만고만하고 확 오는 게 없다고 착잡해했는데, 최종 후보자 세 사람을 두고 당선작을 고를 때는 다 뽑을 만한 것 같아 행복한 갈등으로 갈팡질팡했다. 같은 작품들을 두고 상이한 반응을 일으킨 원인은 아마 처음에는 너무 큰 기대치로 티끌 같은 흠도 잡아내게 됐고,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에서는 내려놓기 아까운 장점이 마음을 붙들어서이리라.
‘꽃밭과 물고기와 뛰는 물’ 외 4편을 응모한 정금하씨의 작품들은 깔끔한 감각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특히 ‘공중무덤’이 심사자들의 눈을 끌었는데, 자기의 기록을 깨는 게 목표인 운동선수처럼 그만한 웅숭깊음을 기준으로 시를 쓴다면 참으로 매혹적인 시인이 될 듯하다.
‘지난 시간은 풍경이 된다 해도’ 외 4편을 응모한 장정희씨 작품들 중 ‘은행나무 솜틀집’은 완성도 높은 따뜻한 시로서 재미있게 읽힌다. 리듬감 있게 언어를 이끌고 가는 감각이 범상치 않은데, 굳이 흠을 잡자면, 소재가 좀 신선도가 약하다.
당선자는 ‘돋보기의 공식’ 외 4편을 응모한 우남정씨다. 그의 응모작 중 ‘죽은 발톱’은 섬세하고 적확한 묘사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탄탄한 구조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세상을 지키는 힘은 저 묵묵한 마중에 있었다.”로 마감되는 희망의 메시지도 새해 첫날을 장식하는 신춘시로 제격이어서 물망에 올랐지만, 우남정씨의 감각과 목소리를 더 섬세히 음미할 수 있는 ‘돋보기의 공식’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축하합니다!
싱싱하고 싱그럽고 신선할 듯한, 새파란 청년 응모자가 줄어드는 추세는 아마도 생존문제가 절박한 ‘77만원 세대’에게 시가 사치여서가 아닐까.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생활에 쫓겨 ‘습작 단절’ 시기를 가졌다가 다시금 문학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대로 묻혔으면 아까울 재능을 발굴한 듯한 즐거움이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