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서 미닫이문을 요란스럽게 여닫는 소리가 들려온다. 계집애의 집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하다. 또 매질이 시작된 것일까. 그러나 계집애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설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해도 이제 나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 다행히 만성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만성은 일종의 진통제다. 통증은 반으로 줄고, 관심도 반으로 준다. 아마 계집애의 울음소리에 만성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하루 종일 작업대에 붙어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귀를 크게 부풀려서 문 밖으로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본다. 그러나 문 밖은 거짓말처럼 잠잠하다. 오늘은 배불뚝이 사내가 일찍 외출을 한 모양이다. *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몇 번인가 폭설이 내렸다. 폭설이 내리면 이곳에는 상습적으로 전기가 끊어진다. 몇 번인가 한파가 닥쳤다. 한파가 닥치면 이곳에는 상습적으로 수도가 막힌다. 내 방은 외풍이 드세다. 그래서 자주 손이 굳는다. 굳은 손은 바느질하기에는 치명적이다. 조그만 실내용 히터를 살까 말까 며칠을 고민하다 수진이에게 부탁해 두었다. 수진이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나는 기계라면 질색이다. 질색이니까 다루는 솜씨 또한 젬병이다. 그런 내가 인터넷 헝겊인형 전문 쇼핑몰 [우렁각시]를 운영하며 생계유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수진이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나는 발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다. * ‘달 따는 소년’을 주문한 고객은 단추눈이 어딘지 바보스러워 보여 꺼려진다고 했다. [우렁각시]의 갤러리에 전시된 소년이 마음에 꼭 들기는 한데, 눈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제품을 제작할 때는 단추눈을 달지 말고 면사를 이용하거나 물감으로 그려 달라는 것이다. 사실적인 글라스 안구를 박아준다면, 더 좋겠다는 거였다. 비용이 추가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나는 고객에게 안구는 박을 줄 모른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리고 완성도를 감안하여 눈을 제작하는 일은 내가 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객은 오빠한테 백일기념으로 건네줄 선물이니만큼 정성을 다해 제작해 달라며 이메일을 통해 내내 강조를 거듭하며, 거금 육만 오천 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 멋지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소년을 보면 왠지 오빠의 어릴 적 모습이 연상되어 선택하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나 역시 소년이 오빠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지만 나 역시 고객의 오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 나는 동공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라스 안구나 물감으로 눈썹까지 길게 그려내는 아크릴 눈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글라스 안구나 아크릴 눈을 가진 인형들은 너무 사실적이다. 인형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사람의 형상과 더욱 가깝게 만들어졌다면, 가히 인형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손을 거쳐 가는 조그만 친구들이 사람의 형상과 가까워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사람의 형상을 조금이나마 비껴갔으면 좋겠다. 사실적인 눈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에는 반드시 봐야 하는 것들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투성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추눈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신이었다면 세상의 모든 아담과 이브들에게는 단추눈을 달아주었을 것이다. 나의 조그만 친구들은 자신들의 태생을 잊고, 세상의 단면만을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꿈이 달아나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나는 또 버릇처럼 소년에게 중얼거린다. 나는 달 따는 소년의 몸통에서 얼굴을 가져온다. 소년의 얼굴에 눈을 앉힐 만한 자리를 가늠해 보고 연필로 살짝 점을 찍어 놓는다. 눈은 만들 때마다 긴장이 된다. 소년의 얼굴 속에 임시로 채워 넣어 두었던 폴리에스테르 솜을 빼낸다. 뒤집게 가위를 이용하면 천을 뒤집을 때도 좋지만, 조그만 창구멍으로 솜을 빼내기에도 아주 편리하다. 바늘에 4㎜ 단추를 끼운다. 소년이 눈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까. 나는 매번 이쯤에서 표정 연습을 한다. * 문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발소리는 점점 내 방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계집애인 모양이다. 계집애는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훼방을 놓는다. 잠시 짜증이 인다. 계집애의 방문에는 만성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애써 외면하며 소년의 얼굴에 찍어 놓은 왼쪽 점으로 바늘을 통과시킨다. 동시에 미닫이문이 왈칵 열린다. 내 자취방의 문을 저렇게 무례하게 열어젖힐 사람은 계집애밖에 없다. 계집애가 훼방을 놓기 전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 단추눈을 한쪽 손으로 고정시킨 후 천 뒤로 바늘을 빼낸다. 집게손가락 끝에 실을 두세 번 감고,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비빈다. 그런 다음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 끝을 이용하여 훌치면 매듭이 완성된다. 이렇게 해 놓으면 든든하게 매듭이 지어진다. 결코 실이 풀려 눈이 대롱거릴 염려는 없다. 휴.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허리를 펴고 계집애에게 눈을 돌린다. 계집애는 오늘따라 얼굴이 창백하다. 표정도 오늘따라 다소 시무룩해 보인다. 아침부터 배불뚝이 사내에게 따귀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일까. 더부룩한 상고머리가 유난히 헝클어져 있다. “아빠가 어쩐 일로 오늘은 조용하시니.” 계집애에게 건성으로 말을 건네 본다. 계집애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더니 방바닥에 기어가고 있던 바퀴벌레를 손바닥으로 순식간에 내려친다. 쏜살같이 기어가던 바퀴벌레는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이 나버렸다. 계집애는 유심히 바퀴벌레를 내려다보고 있다. 압사 당한 바퀴벌레의 배에서 점액질이 삐져나와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직 더듬이만은 살아서 미진한 움직임으로 허공을 탐지하고 있다. 도살자의 정체라도 알아내고 죽겠다는 의도일까. 그 끈질긴 생명력에 진저리가 쳐진다. 잠시 바퀴벌레의 그러한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계집애는 다시 한 번 손바닥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해 버린다. 이제 바퀴벌레의 더듬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깜빡깜빡 노란꽃. 누나 닮은 봄꽃. 깜빡깜빡 하얀꽃. 엄마 닮은 눈꽃. 계집애는 옆집 맹인악사가 직접 지어 주었다는 별이라는 제목의 동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계집애의 얼굴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다. 언제나 술에 절어 있는 배불뚝이 사내는 수도호스나 가죽허리띠를 걸핏하면 집어 들어 자신의 외동딸인 계집애를 구타한다. 사내의 악질 근성에 나는 몇 번씩이나 질겁한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계집애를 발가벗겨 놓은 채 연탄집게로 매질을 가한 적도 있다. 그때 우리가 달려가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집애는 시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계집애의 집에서 소란이 일어날 때마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몇 번 배불뚝이 사내를 말리려다 팔뚝에 멍만 얻어 가지고 온 이후로 생겨난 습관이다. 배불뚝이 사내를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몇 번인가 배불뚝이 사내를 계집애 몰래 파출소에 신고한 적도 있다. 그런데 배불뚝이 사내는 매번 잘도 피해 갔다. 계집애가 그런 일 없었다며 역성을 들고 나서는 바람에 나만 바보가 된 것이다. 이제는 계집애가 맞거나 말거나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아빠가 외출하신 모양이로구나.” “언니는 오늘도 인형하고만 놀고 있었어?” 계집애가 딴청을 피운다. 계집애의 처세술은 항상 나를 놀라게 만든다. 계집애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고 태어난 아이 같다. 계집애가 항상 데리고 다니는 보미의 머리카락이 오늘은 양 갈래로 땋아져 있다. 보미는 30㎝ 정도의 신장을 가진 헝겊인형이다. 계집애에게 졸병역, 동생역, 친구역, 식모역 등 일인다역을 겸해주고 있다. 배불뚝이 남자가 사 주었을 리는 만무하다. 계집애가 나를 몇 번씩이나 귀찮게 만들며 얻어간 헝겊조각과 펠릿들로 직접 만든 인형이다. 직접 만들었다지만 대부분의 시침질과 박음질과 자질구레한 장식들까지 다 내 손을 거쳐야 했다. 해주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렇게 못생긴 인형은 만들지 않는다. 계집애가 번번이 교묘하게 내게 흥정을 붙였고, 그때마다 나는 흥정에서 져버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만들어 준 것이다. 보미는 계집애가 붙여준 이름이다. 물론 보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계집애가 자기 이름을 바꾸고 싶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보미는 계집애의 분신과 같다. 자신의 머리는 빗질도 하지 않으면서 보미의 머리에는 엄청난 공을 들인다. 계집애가 내게 가져간 가장 질 좋은 금발머리는 사실 ‘꽃밭의 엘리스’에게 주고 싶었던 머리카락이다. 지금은 보미의 머리에 얹혀 있지만 말이다. 계집애는 언제나 귀신같이 질 좋은 재료를 골라내고, 언제나 악착같이 그것을 내게 얻어내는 재주가 있다. 계집애가 나를 흉내내어 보미에게 강력 본드로 붙여준 단추눈은 간격이 너무 가깝다. 그래서 보미는 언제나 조금 멍청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집애는 보미가 예뻐 죽겠다는 식이다. 보미의 사진이 [우렁각시]에 올라가게 된다면 언니 인형들보다 더 인기가 많을 거라며 매일 으쓱댄다. 지금 보미의 몸통에는 펠릿이 가득 들어 있다. 펠릿의 자잘한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감촉과 소리들이 계집애는 좋았던 모양이다. 굳이 솜 대신 펠릿을 넣겠다고 우겨대는 바람에 건네주기는 했지만 속을 꽉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보미는 언제나 힘이 없다. “언니, 저건 뭐야?” 계집애가 낮은 들창코를 발름거리며 시렁 위에 올려놓은 소품을 가리키고 있다. ‘달 따는 소년’이 바라보게 될 밤하늘이다. 며칠 전 수진이가 완성해서 가지고 온 배경 그림이다. 짙푸른 밤하늘을 가르며 은하수가 흐르고 있고, 동녘으로 보름달이 낮게 걸려 있다. 소년이 장대를 높이 든 채 달을 보고 서 있으면 수진이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사진은 나와 수진이가 운영하고 있는 [우렁각시]의 갤러리에 소장자 이름과 함께 신제품으로 등록된다. 하기야 내가 운영자라고 자처하기에는 조금 부끄럽다. 나는 휴대전화 조작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도 겨우 몇 개의 홈페이지와 이메일이나 둘러보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쇼핑몰의 전반적인 관리는 수진이가 도맡아 하고 있다. 나는 인형을 만드는 일에만 골몰하면 된다. “저건 이 아이가 가지게 될 거야.”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조한다. 계집애가 내 방에 들어설 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나는 몹시 마음에 걸린다. 내 방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계집애가 탐욕스럽게 눈독을 들이는 것도 몹시 거북하다. 아마 내일쯤 수진이가 오면 계집애는 또 보미의 사진을 찍어 달라며 떼를 쓸지도 모른다. 계집애는 [우렁각시]에 사진이 올라가는 것이 텔레비전에 나가서 유명해지는 일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 수진이가 조금 후면 이곳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며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어질러진 바닥을 대충 치워 놓고 공중화장실을 가기 위해 문을 나선다. 햇빛을 보니 눈이 시리다. 내가 살고 있는 두더지굴에는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뿐만이 아니라 방문도 없고 창문도 없다. 미닫이문이 대문이며 곧 방문이며 창문이다. 어떻게 이런 특이한 구조의 집이 생겨났는지 잘 알다가도 모르겠다. 길에서 지나가다 보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어진다. 두더지굴은 말 그대로 건물 등짝에 굴을 뚫어서 만든 거주지이다. 가끔은 두더지가 살 만한 곳에 사람이 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시장통을 향하고 있는 건물 정면은 상가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등짝에 바로 다른 건물이 맞붙어 있기 때문에 두더지굴은 길가에서도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당연히 굴 통로를 따라 종렬로 붙어 있는 세 개의 방에는 일년 내내 햇볕이 들지 않는다. 집으로 드나드는 통로에는 대낮에도 어둠이 매복해 있다. 비위를 건드리는 퀴퀴한 냄새가 사시사철 떠나지 않는다. 두더지굴에서는 시간도 썩는다.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들은 조금씩 건물의 벽을 갉아먹으면서 매일 자라고 있다. 빨래를 널어놓아도 며칠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는다. 내 방은 두더지굴 맨 끝에 자리 잡은 세 번째 방이다.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사나요. 무지하게 방세가 싼 집이 있다는 복덕방 최씨를 무작정 따라 나섰다가 건물 사이에 숨겨져 있는 두더지굴을 발견하고 내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설마. 두더지가 살겠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최씨의 말이 다시 나의 발길을 붙잡았다. 사람이 살지 못할 데가 어디 있어. 이건 거저라구. 말 그대로 거저에 가까운 방세를 지불하고 나는 두더지굴에 들어왔다. 그래, 일 년만이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일 년만 버티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내 이름을 내건 공방이 딸린 상점을 하나 갖고 싶다. 상점은 지상에 있어야 하고, 고객들은 인형을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상점을 마련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모든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체면과 눈치도 보류하고, 허영과 소비도 보류하기로 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개장하느라 얼마간의 목돈이 거의 다 들어간 형편이었다. 만회하려면 일 년 가지고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래, 서른이 될 때까지만. * 상가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은 언제나 더럽다. 누군가 물을 내리지 않고 가 버려 변기에 똥덩어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누군가 뱉어놓은 가래침이 바닥에 그대로 말라붙어 있기도 했다. 무심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똥덩어리 위에 다시 한 무더기의 똥덩어리를 쏟아내기도 했고, 누군가의 가래침 위에 한 움큼의 토사물을 뱉어내기도 했다. 그나마 화장실이 숙녀용, 신사용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국이다. 이렇게 살 줄은 나도 몰랐어. 나는 내가 만들어내는 조그만 친구들에게 그렇게 자주 중얼거린다. 조그만 친구들은 그 해맑은 단추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응답해 준다. 나이를 먹지 않으니 조그만 친구들은 언제나 희망뿐이다. 통로를 지나오다 보니 맹인악사 방에서 나지막한 하모니카 소리와 계집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 계집애가 맹인악사를 졸라 동요를 부르고 있나 보다. 음정도 박자도 모두 엉망이다. 계집애는 음치임이 분명하다. 언젠가 옆집 맹인악사가 농담처럼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이 두더지굴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연탄가스에 중독 되어 혼수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가거나 복권에 당첨되어 자가용에 실려 가는 경우밖에 없을 거라고. 자기야 원체 마음속의 햇볕으로 살아가는 장님이지만 어떻게 햇볕 한 자락 들지 않는 이곳에서 두 눈 멀쩡하게 뜬 사람이 살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치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맹인악사는 집에 있을 때는 반드시 형광등을 켜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어둠 속에서 타인을 식별할 수 있지만 타인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맹인악사 덕분에 나는 그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맹인악사는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으며 동요를 만드는 특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물론 오선지의 금을 따라 계집애가 자를 대고 힘을 주어 연필로 선을 그어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맹인악사가 삼 년 전부터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는 동요는 한 사십 곡에 이른다. 처음에는 무척 쑥스러워하며 보여주지 않았으나 나의 간곡한 부탁에 얼굴까지 붉히며 악보를 내밀었다. 대부분의 곡들이 하늘과 바람, 꽃과 나무, 해와 달, 산과 바다를 노래하고 있었다.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맹인악사의 기억 어딘가에 하늘과 바람, 꽃과 나무, 해와 달, 산과 바다가 떠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콧날이 다 시큰해졌다. 게다가 맹인악사가 하모니카로 연주라도 하게 되면 눈물은 도저히 참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맹인악사 앞에서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의 눈은 선글라스로 가려져 있고, 선글라스를 벗는다 해도 그는 나를 볼 수 없다. 설사 나를 볼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굳이 눈물을 닦아내지 않을 것 같다. 오래 전부터 맹인악사의 선글라스 뒤에는 단추눈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나는 단추눈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계집애는 알고 있을까. 자기가 동요 때문에 맹인악사의 집을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쌀과 연탄을 훔치기 위해 드나든다는 것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계집애가 맹인악사의 쌀과 연탄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낮에 동네 슈퍼에서 우유를 하나 사 가지고 통로로 들어설 때였다. 옆집 맹인악사의 집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맹인악사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이었다. 미닫이문을 살펴보니 문고리에는 열쇠가 꽂힌 자물통이 걸려 있었고, 쉬는 날이면 문설주에 걸어 놓는 맹인악사의 동냥망태기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춤거리며 걸음을 옮기다가, 드르륵 문을 밀며 나서는 계집애와 맞부딪치고 말았다. 순간 계집애는 무척 당황하는 몸짓으로 품에 안고 있던 바가지를 황급히 뒤로 감추고 있었다. 나는 계집애에게 무언가 물어봐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쏘아보는 영악스러운 눈빛 때문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말았다. 나는 계집애의 눈빛에 쫓기듯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낮에 보영이가 댁에서 나오는 걸 봤어요. 나오다가 저와 마주쳤는데 무척 당혹스러워하더군요.” 밤이 되어 맹인악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낮에 목격했던 일을 귀띔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맹인악사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제가 외출할 때 열쇠를 감추어 두는 장소를 녀석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소를 바꿀 생각은 아직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언가 훔쳐 가는 듯한 낌새던데요.” “쌀일 겁니다. 언제인가 제가 직접 쌀과 연탄을 주려고 하자, 자기가 뭐 거지인 줄 아느냐면서 벌컥 화를 내더군요. 그러면서도 제가 집을 비울 때는 이따금씩 쌀과 연탄에 손을 대기 일쑤입니다. 그런 날은 저한테 유난히 많은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조잘거리지요. 그 때문에 오히려 녀석이 더 자주 제 쌀과 연탄에 손을 대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게 남아 있는 알량한 도덕심이 여기서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나도 악착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한낱 엄살에 불과하다. 바퀴벌레를 보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헝겊조각 따위를 오리고 꿰매는 일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는 나를 언제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계집애에게 내가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이유를 얼마간은 알 것도 같았다. 계집애에게 제대로 된 인형 하나 만들어 주는 일이 그렇게 내키지 않았던 이유도 말이다. 몇 억 년 동안 무수한 생명체들이 멸종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멸종명부에 오르지 않고 기어이 살아남은 바퀴벌레. 그 바퀴벌레조차 자신의 경쟁자로 허용하려 들지 않는 계집애. 계집애가 내 인형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간혹 궁금증이 인다. 배불뚝이 사내는 가출이라도 해 버린 모양이다. 오늘까지 사흘이 넘도록 매질하는 소리가 한 번도 들려오지 않는다. 당연히 계집애의 발악적인 울음소리도 실종된 상태다. 배불뚝이 사내가 있는 한 그런 평온은 기대하기 어려울 텐데, 모를 일이다. * ‘달 따는 소년’은 이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탐스러운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다. 달 따는 소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고, 소년의 해진 러닝셔츠와 헐렁한 반바지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수진이는 능숙한 솜씨로 디지털 카메라에 달 따는 소년을 담아냈다. 불과 몇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진이는 소형 조명기를 접어 가방에 넣어두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오직 통풍구라고는 미닫이문 하나밖에 없는 십 평짜리 두더지굴이 담배 연기로 가득 찬다. 미닫이문을 열어 두면 너무 추울 것 같아 나는 조그만 앉은뱅이 양초에 불을 붙여 놓았다. 촛불을 밝혀 두면 담배연기가 금방 사라진다는 계집애의 잔소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계집애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수진이를 훑어보고 있고, 수진이는 계집애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연거푸 담배를 두 개비나 피워 없애고 있다. “여자가 무슨 담배야?” 계집애는 짐짓 수진이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또 계집애가 잔소리를 시작할 모양이다. 걸핏하면 계집애는 서른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런 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건가. 바퀴벌레는 보는 대로 죽여야 해. 알을 까놓으면 정신없거든. 아궁이를 단단히 틀어막아야 연탄불이 오래 가지. 수진이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계집애가 늘 못마땅한 모양이다. 수진이는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며 나를 향해 며칠 부산에나 다녀오자고 한다. 인형작가인 선배 하나가 전시회를 열 예정인데,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설명이다. 나는 무릎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리며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스스. 전신에 오한이 덮치는 걸 보니 또 몸살이 오려는 모양이다. 작업을 끝내고 나면 꼭 며칠씩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선배라는 인형작가의 팸플릿을 들여다보니 구미가 당긴다. 발도로프 인형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인형들과 석분점토로 본을 떠 제작된 다수의 인형들이 게재되어 있다. 섬세하고 치밀한 솜씨다. 경력도 화려하다. 학원에서 아이들한테 산수나 가르치다 문화센터를 다니며 인형을 만들게 된 내 경력은 창피해서 어디 내놓지도 못할 판국이다. 내게는 인형작가라는 말도 요원하고, 작품전시라는 말도 요원하다. 부산까지 다녀올 경비도 내심 마음에 걸린다. 어쩌지. 나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한푼이 내 발목을 붙들고, 한시가 내 손목을 붙든다. 차라리 ‘달의 신부’를 마저 손질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그놈의 혼잣말하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표는 내가 예약해 놓을 테니 너는 내일 아침까지 서울역으로 나와.” 수진이는 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듯 담배를 다시 하나 빼어 문다. 언제나 추진력 있게 일을 진행하는 수진이 덕분에 그나마 내가 학원을 때려치우는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취미로만 생각하고 시작한 인형 제작을 본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도 다 수진이 덕분이다. 내가 인형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수진이는 사진을 찍어 자신의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수치심이 강한 내 성격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 보이며 ‘갖고 싶다’고 문의를 해 왔다. 갖고 싶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동안 안이하게만 버티고 있던 가치관이 뿌리까지 흔들려 버렸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아이들이 두 자리 뺄셈이나 세 자리 나눗셈을 터득하는 일보다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수진이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수진이는 ‘달 따는 소년’을 밤하늘의 배경과 함께 준비해 온 상자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으며 포장을 시작했다. 배송과 고객관리까지 수진이가 전담하기 때문에 나는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수진이와 나의 꼬락서니를 한동안 주시하고 있던 계집애는 보미를 작업대 위에 세워두며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게 만든 후, 왕관을 씌워주면 멋지지 않겠냐는 둥 방학숙제가 많이 밀려 있는데도 보미를 목욕시키고 단장시키느라 아침나절 내내 바빴다는 둥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다를 부산스럽게 떨어대고 있다. 포장을 다 마친 수진이는 금방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수진이는 이곳에 오면 장시간을 앉아 있지 못했다. 수시로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바퀴벌레가 출몰해 벽을 기어 다니는 것도 못 견뎌 하는 눈치였고, 수시로 개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궁창 냄새도 못 견뎌 하는 눈치였고, 수시로 미닫이문을 덜컹거리면서 드나드는 계집애도 못 견뎌 하는 눈치였다. 나는 수진이를 거들며 내일 아침 몇 시까지 나가면 되느냐고 묻는다. 수진이는 오전 열 시까지 나오면 된다고 한다. “언니들. 나 좀 볼래?” 계집애가 우리를 향해 명령하듯 말을 건넨다. 수진이와 나는 엉겁결에 계집애에게 시선을 던졌고, 계집애는 작업대가 놓여진 벽에 붙어 서 있다. 작업대 위에 세워진 보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드레스가 걷혀진 채로 허벅지까지 드러내 놓고 있다. “내가 비밀 하나 보여줄 테니까 우리 사진도 한 장만 찍어줘.” 계집애는 미처 수진이와 나의 의사를 듣기 전에 재빠르게 자신의 누빔 바지를 밑으로 까내리고 말았다. 수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나는 낮게 탄성을 내지르며 계집애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계집애는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 팬티를 입고 있지 않은 계집애의 사타구니에 있는 그것을, 우리는 보고야 만 것이다. “내가 여덟 살 때 생긴 비밀이야.” 민망하게도 계집애는 사타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사타구니와 아직 모양도 갖추지 못한 계집애의 성기에 걸쳐 흉측한 흉터가 드러나 있었다. 어떤 뜨거운 것에 살이 짓이겨진 듯한 흉터였다. 기다란 장화를 닮았다는 칠레의 대륙이 떠오르기도 했고, 쥐들이 천장에 그려 놓은 오줌자국이 떠오르기도 했다. 흉터는 그리 잘 아문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불그죽죽한 자국이 계집애의 사타구니를 보기 싫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가만 보니 보미의 사타구니에도 흉터가 보인다. 아마도 계집애가 붉은펜으로 만들어 낸 흉터일 것이다. 불쌍한 보미. 배불뚝이 사내에 대한 적개심으로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다. 아홉 살이라는 나이가 수치심을 느낄 만한 나이인지 아닌지 나는 가늠하지 못한 채로 계집애에게 어서 바지를 올리라고 조용히 나무랐지만, 계집애는 벽에 달라붙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수진이가 마지못해 디지털 카메라를 들었고, 그제야 계집애는 바지를 걷어 올린다. 몇 번의 셔터가 터지고 나자 계집애는 작업대에서 보미를 철수시키며 우리 사진도 반드시 컴퓨터에 올려야 한다고 몇 번씩이나 당부한다. 계집애에게 연민을 느끼다가도 나는 무언가 당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계집애는 볼일 다 마친 사람처럼 성급히 미닫이문을 빠져 나가 버린다. “뭐, 저런 애가 다 있니.” 수진이가 몹시 기분이 상한 얼굴로 신경질적으로 계집애의 뒤통수에 대고 언성을 높였고, 디지털 카메라에 담긴 계집애의 사진을 삭제해 버린다. 작업대 위에 올려져 있던 쪽가위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 이박삼일에 걸쳐 부산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나는 겨울바다의 귀밑머리조차 보지 못했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만 돌아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의 눈은 두더지 눈처럼 퇴화해 버렸는지 세상이 뿜어내는 빛의 속도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박경숙 인형전(朴京淑人形展)을 관람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감탄을 연발했고, 다소 시무룩해진 나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수진이는 기차표를 끊어 주었다. 이 나라의 중심부를 초고속으로 관통하는 고속열차 안에서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창 밖 풍경은 모두 미완의 수채화처럼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빠른 속도와 화려한 빛깔을 지닌 세상의 풍경들은 마치 인공의 세상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는 빛의 나라에 내던져진 한 마리의 두더지처럼 당황했고, 외로웠다. 나의 토굴로 돌아오고만 싶었다. 내가 이토록 초라한 유배지를 그리워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겨울이 깊어지면서 바퀴벌레의 성충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찬장을 열어 보면 보리알만한 크기의 알집들이 곳곳에 수두룩하게 슬어져 있다. 어쩌다 장판의 모서리를 들치면 눈곱보다 작은 새끼들이 몇 마리씩 무리지어 분주하게 기어 다니는 장면이 목격된다. 녀석들은 군집생활을 할수록 생장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나와는 정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무리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금만 더. 나는 ‘달의 신부’의 뱃속에 양모솜을 틀어넣으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달 연작 시리즈는 반응이 좋다. 달 따는 소년. 달의 신부는 물론이려니와 달마중 나간 누나, 초생달 소녀, 달 짓는 아이, 달맞이꽃 요정, 달바람 꼬마 등 지난 이 년여 동안 나는 달 연작 시리즈에 공을 들였다. 개나리색의 니키천을 골라 달을 만든 후 아이가 타게 하거나 소녀의 머리 위에 얹거나 요정의 발밑에 둥그렇게 세워 두었다. 나의 서툰 솜씨로 달의 사실감을 살리기보다 정서적 공감대를 얻어내는 일에 주력하다 보니 [우렁각시]를 찾는 방문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가입을 요청하는 회원이 늘어났다. ‘달의 신부’는 그 중에 가장 까다로운 작업을 요한다. 유일하게 지점토를 이용하여 얼굴의 본이 되어줄 마스크를 만들고, 미색 트리코지로 피부를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열 번도 넘게 수정을 거듭해서야 마스트의 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12㎜의 갈색 글라스 안구를 심어 주었다. 신부에게는 아주 명료하고 사실적인 눈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백의 달빛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낱낱이 비추듯이 신부의 두 눈도 세상의 모든 것을 낱낱이 바라보기를 원했다. 나와는 달리 달의 신부는 우아하고 도도하다. 몇 달 전 어느 사십대 남자 고객 한 명이 달의 신부를 주문해 왔다. 달의 신부는 전시용이며 똑같은 얼굴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주었는데도 고객은 끈질겼다. 몇 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 반드시, 달의 신부를 제작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 고객이 이메일 말미에 붙여 놓은 한 줄의 청원 때문에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저는 인형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환상을 사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양모솜을 가득 채운 신부의 몸은 이제 풍만해 있다. 신장 42㎝. 신부는 키가 크다. 완성된 신부의 얼굴은 바구니에 담겨 있다. 신부는 자신의 몸을 공정하고 있는 나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그윽한 갈색의 눈동자가 한땀 한땀 신부의 몸통을 잇고 있는 바늘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바늘을 쥔 내 손끝에 열기가 감돈다. 수진이가 가져온 소형 히터의 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하늘이 터졌다!” 문 밖 통로에서 계집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터졌다니. 계집애의 표현은 참으로 저돌적이다. 조만간 통로를 달려오는 계집애의 발소리가 들릴 것이고, 미닫이문이 왈칵 열릴 것이고, 계집애가 나에게 눈 구경을 하자고 졸라댈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미처 채 끝내기도 전에 여지없이 계집애가 미닫이문을 열어젖힌다. 솔직히 나는 흉터를 본 그날 이후로 계집애에게 질려서 얼굴조차 마주치기가 꺼려진다. 부산에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며칠 동안 계집애는 심심했던 모양인지 유난히 붙임성 있게 아양을 떨어댔지만, 그것조차 마땅치 않다. “언니. 하늘이 터졌어. 나와 봐.” 계집애는 내가 자신을 고의적으로 피하고 싶어한다는 낌새를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태연자약한 태도, 한 마리의 거대한 바퀴벌레를 보는 듯 계집애에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나와 보라니까.” “언니는 지금 바빠.” 나는 신부의 두 팔을 조심스럽게 들어 한 쪽씩 솜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신부의 손가락에는 짧은 플라스틱 심을 넣어 두었다. 손가락 끝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계집애의 방학이 어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지루한 겨울도 어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이내 손에서 신부의 두 팔을 놓친다.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바구니에 담겨진 신부의 얼굴 정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더듬이를 놀려대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어떡해. 나는 도움을 요청하듯 계집애를 바라본다. 문설주에 기대고 서 있는 계집애는 난데없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맹인악사에게서 얻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얻었는지, 훔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시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니 바퀴벌레는 순식간에 작업대 모퉁이로 탐색지를 옮겼다. 미닫이문을 통과해 한껏 몰려드는 칼바람들이 방안의 온기를 몰아내며 나의 의식을 들쑤셔댄다. 못 참겠어. 나는 작업대를 떠나 마루로 내려간다. 계집애는 선글라스가 자꾸만 얼굴에서 흘러내려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턱을 한껏 치켜든 채 나를 향해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계집애는 통로 쪽으로 먼저 몸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나도 계집애의 뒤를 따라 통로로 나선다. 어두컴컴한 통로 저편 입구에 한 장의 정지된 화면처럼 밤거리의 풍경이 붙박여 있다.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쏟아 내리는 함박눈들이 마치 수천 마리의 야광충처럼 난무하고 있다. 불 꺼진 영화관에서 빛이 명멸하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듯 비현실적이고 아련한 장면이다. 정말이지 하늘이 터져 버린 모양이다. 엄청난 눈송이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거리는 거대한 무덤으로 변모해 있다. 계집애는 통로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배불뚝이 사내의 십팔번인 번지 없는 주막을 이상한 곡조로 흥얼거린다. 무운패에도 버언지수우도 어엄느은 주우막에. 버려진 소주병들과 불 꺼진 연탄재만이 함박눈을 뒤집어쓴 채 동면의 시간 속에 깊이 처박혀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초라한 가로등만이 인적이 끊긴 밤거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 눈발은 조금씩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구으즌비 내에리느은 이 바아아암도 애에저얼 쿠우려어어. 계집애가 입을 다물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상한 서글픔이 가슴속에 고여 든다. “눈 오는 밤에 무슨 선글라스니.” “하얀 게 너무 추워 보여서 그래.” 가만 보니 계집애가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보미는 몰라 볼 정도로 생김새가 달라져 있다. 내가 없는 사이 보미에게 대대적인 성형수술이 단행되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보미의 그 탐스러웠던 금발머리는 짧게 깎여져 있고, 그 하얀 드레스도 벗겨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보미는 엉성하게 만들어진 체크무늬 윗도리와 감색 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다. 게다가 두 개의 단추눈 위로 검은선이 길게 그어져 있어 마치 찢어진 눈을 연상케 한다. 왜 그랬을까. 보미의 코에 동그랗게 오려 붙인 붉은 헝겊조각도 괴기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보미의 생경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나는 한동안 입을 떼지 못한다. “보미한테는 왜 그랬니.” “이제 보미 아니야. 우리 아빠야.” 그제야 나는 보미에게 일어난, 중대한 변화를 알아챈다. 보미는 이제 여자애가 아니라 남자가 된 것이다. 여느 남자가 아니라 배불뚝이 사내가 된 것이다. 폭력에 대한 보복심이라도 발동된 것일까 짐작해 보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계집애의 변덕이 원망스럽고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며칠 전 계집애가 내 방에서 훔쳐간 쪽가위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 하루가 지나서야 나는 보미에게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신부의 드레스를 장식할 레이스에 눈곱만한 투명 구슬을 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미닫이문을 심하게 두들겨댔고, 계집애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맹인악사가 문 밖에서 다급하게 나를 찾고 있었다. 방으로 안내된 맹인악사로부터 나는 짤막한 내막을 전해 들었다. “보영이의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냄새에 이끌려 녀석의 집에 들어가 보니 아랫목에 시체가 누워 있더군요. 족히 일주일은 된 것 같았습니다.” 맹인악사와 나는 배불뚝이 사내를 화장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경찰이 다녀가고, 앰뷸런스가 출동하고, 몇 가지 조서를 작성했다. 사회복지사가 와서 계집애와 상담을 시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경찰로부터 배불뚝이 사내가 만취한 상태로 잠을 자다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사인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계집애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계집애는 보육시설에 보내질 것 같았다. 사회복지사가 다녀가고 나면 계집애는 보육원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죽어 버릴 것이라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배불뚝이 사내의 썩어가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계집애가 오색가지의 헝겊조각을 아무렇게나 이어 붙여 만든 듯한, 가리개를 빼앗아 불태워 버리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내 방에 굴러다니던 헝겊조각들이 그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집애는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배불뚝이 사내가 살아있을 때는 그렇게 맞으면서도 영악스럽게 억척을 떨어대던 계집애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다도 떨지 않고, 잔소리도 늘어놓지 않으니 오히려 내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깨가 늘어져 있는 계집애의 뒷모습은 차마 안쓰러워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계집애에게 새 인형을 하나 만들어 줄까 고심하다, 바뀐 인형 사진을 [우렁각시]에 올리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나의 제안을 들은 계집애는 일순간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지만, 이내 입을 다물며 그건 절대 팔지 않을 거라고 단언을 했다. 물론 언니도 그 인형을 팔 생각은 전혀 없으며, 찬조작품으로 올릴 생각이며, 계집애의 이름도 작가 이름으로 함께 소개할 거라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계집애는 텔레비전에 나가 유명해지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화된다는 사실에 금방 기분이 전환되어 버렸다. 수진이는 계집애를 어린이 전문 심리치료사에게 한 번 데려가기를 권유했지만, 그보다 먼저 나는 수진이를 두더지굴로 불러들였다. 배불뚝이 사내. 계집애의 아빠였던 그 사내의 형상을 따라 계집애가 괴기하게 변모시켜버린 인형의 사진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수진이는 꼭 이래야만 하느냐고 몇 번을 만류하고 나섰지만, 나는 이상하게 고집을 세우며 이번만큼은 수진이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수진이의 말대로 [우렁각시]의 갤러리에 이 사진이 올라가면 방문객들과 회원들이 득달같이 항의를 해 올지도 모른다. 또한 사연을 캐어묻는 문의들이 빗발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계집애의 인형은 갤러리에 올려진 그 어떤 인형들도 결코 획득하지 못한 호소력과 전율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 찬조작품 작 가 명 전보영 나 이 9 세 작 품 신장 30cm 재 료 헝겊 제작방법 시침질, 붙이기, 그리기. * 작품명을 상의하기 위해 나는 계집애에게 인형의 이름을 ‘우리 아빠’라고 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계집애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앞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이라는 말을 붙여 달라며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아빠’가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나는 받침대를 더욱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