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종이를 먹었던 날을 기억한다. 중학교에서 치르는 첫 시험이었을 것이다. 평소 무관심하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돌연 나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날 처음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머리가 상당히 나쁜 부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아버지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유능한 회계사였던 그에게 공부 못하는 아들이라니. 아버지는 같은 내용을 세 번 이상이나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는 요령 없는 간수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나대로 스스로의 머리 나쁨을 한탄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이내 나를 혼자 두고 가버렸다는 생각에 원망스러웠다.
당시 내가 외우고 있던 과목은 역사였는데, 시대와 사건들이 아무리 외워도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야 할 내용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나를 괴롭혔다. 새벽 동 터올 무렵까지 나는 고작 한 단원도 외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얼굴이 빨개져 내게 종이를 찢어 먹으라고 소리쳤다.
“먹어라! 그러면 기억이 날 게다!”
아버지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정작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 것은 나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가 이토록 머리가 나쁜 인간인 줄 몰랐던 것이다.
나는 활자가 새겨진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활자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물러섰고, 잡으려고 애쓰면 달아났다. 나는 부딪치고, 구르고, 나자빠졌지만 소용없었다. 활자들은 내 정신만 온통 헤집어놓은 채 사라졌다. 나는 아버지가 던진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는 활자 하나하나를 다시금 눈에 새긴 채 종이 한 장을 뜯어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입 안에 구겨 넣었다. 입천장을 따갑게 찌르는 겉 종이를 씹기 위해 다량의 침을 분비했다. 종이는 점점 딱딱해졌다. 나는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종이를 씹어 넘겼다. 한 장의 종이를 다 삼키자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다. 놀랍게도 종이를 씹어 먹은 후, 거기에 새겨져 있던 내용들이 기억났다.
“하나의 의식 같은 거였어. 기도를 하기 위해 성수를 떠다 놓듯이, 나는 기억을 하기 위해 종이를 씹어 삼키는 식이었지.” 후에 나는 유신에게 내 행위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내 이런 행위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책 한 권을 배 속에 삼킨 뒤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나의 턱관절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뭘 씹고 있는 거냐?” 아버지가 물었다.
“종이요.” 아버지는 놀라 입이 벌어졌다. 나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 신기하게 다 기억이 나던걸요.”
아버지는 자신이 홧김에 던진 한마디가 아들의 인생을 바꿔놓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런 것은 그만둬라. 그렇게까지 해서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미 종이를 먹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고, 빠져서는 안 되는 기도처럼 성스러운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충고는 내가 들키지 않고 종이를 먹는 방법을 터득하게 했다. 얼마 뒤, 나는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논문을 썼다는 의사는 그 문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비정상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어요. 인류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수많은 것들을 먹어치웠답니다. 종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하면서 무해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잔인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으면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염려하실 필요는 전혀 없답니다. 그저 남들과 식성이 다른 정도로만 여기면 됩니다.”
나는 그가 너무 많은 정신병자들을 상대하다 정신이 이상해진 의사라는 결론을 내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
아버지는 어머니의 무덤에 난 잡초를 뽑기도 전에 재혼했다. 대대로 부를 거머쥐었던 집안은 아니었으나 대단한 재력가임에는 틀림없었다.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녀가 새로운 안주인이 되자 집안 곳곳에는 빠짐없이 십자가가 걸렸다. 거실과 부엌, 심지어 화장실 안에도 인간을 위해 희생한 위대한 구원자가 눈앞에 있었다. 어머니 사진이 끼어 있던 내 탁자용 액자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신음하는 구원자가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사지를 내맡긴 채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의구심이 일었다. 그는 충분히 다른 형태로, 다른 방법으로 무지한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끔찍한 고통을 택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밖에 증명해내지 못했을까. 나는 그가 우리에게 죄의 굴레를 덮어씌우기 위해 일부러 그러한 희생을 자처했다고 여기고 있다. 한쪽 벽면을 당당하게 차지하기 위해, 죄의 속박으로 우리를 몰아붙이기 위해.
나는 그의 시선 아래 종이를 먹었다. 나의 식지(?紙) 행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취향을 갖게 되었다. 그 즈음 나의 배 속에는 다양한 종이들이 서로 뒤섞였는데, 흔한 중질지부터 시작하여 크래프트지까지 먹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보통은 문제집이나 책에서 찢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선호했던 것은 두꺼운 사전에 자주 쓰이는 박엽지였다. 바이블 페이퍼(bible paper)나 인디언 페이퍼(indian paper)라고 불리는, 많은 양의 정보를 위해 사용되는 종이였다. 얇았기 때문에 다른 종이들에 비해 목 넘김이 수월했다.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것과 무색무취의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히 박엽지를 사와 그곳에 외워야 하는 정보를 옮긴 후 씹어 삼키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나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에 들어갔다. 기숙사는 2인 1실로, 학교 뒤쪽의 언덕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규모는 상당했다.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체로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소위 있는 집 자제들이 많았다. 때문에 선생들이 그들을 컨트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생들은 그들이 좋은 성적만 유지해주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것이 암묵적인 룰이었고, 대개 지켜지는 편이었다. 학생들은 그다지 선생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선생들은 더 이상 학생들을 제자로 보지 않았다. 서로의 신분은 학교 안에서만 유효했다. 그들은 서로의 본분에 맞게 공부를 했고, 가르쳤으며 학교를 떠나면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기숙사가 더 편안했다. 언젠가 한 번 노크도 없이 내 방으로 들어온 아버지 때문에 종이를 씹고 있는 것을 들킬 뻔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서 공부를 할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런 감시자가 없는 이곳이 거리낌 없이 종이를 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적은 문제될 게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룸메이트 없이 기숙사에서 1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이때가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왔고,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식사를 했다. 대부분 항상 이른 시간에 밥을 먹고 돌아왔다.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시험기간을 핑계로 가지 않는 횟수가 늘어났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내 식성이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실 맨 앞줄에 앉은 누구는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손톱을 질겅질겅 씹어댔다. 손톱은 피부의 일종이니 살을 뜯어먹고 있는 것과 진배없었던 셈이다. 장담하건대 한 달에 0.1킬로그램 정도의 살은 먹어치웠으리라. 나 또한 틈틈이 종이를 먹어댔다. 새로 들어온 룸메이트인 유신은 하루 종일 AV 동영상을 보며 밥을 굶기도 했다. 유신은 헤드셋을 낀 채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곁에는 밤꽃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유신은 특히나 학대당하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좋아했다. 여자의 비명 소리가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고, 쾌감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유신이 여자의 비명 소리를 수집하며 온종일 듣는 동안 나는 간간이 종이를 찢어 삼켰다. 그러면 유신은 “맛있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즐겁냐?”고 물었다. 유신은 씨익 웃어보였다. 이따금 헤드셋 밖으로 여자의 비명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스스로가 결코 유별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안심했다.
*
고대 아즈텍인들은 종이에 심오한 세계가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중국에서는 종이를 태운 재를 허공에 날림으로써 사람의 영혼이 천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시신을 종이에 묶어 염을 하고 제사를 지낼 때 소지(燒紙)함으로써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그러니까 종이는 시대에 따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고,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페이퍼의 종말이 머지않았다고 예견한다. 어쩌면 우리가 종이를 사용하는 마지막 세대인지도 몰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태블릿PC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점이나 사무실에서는 많은 양의 종이들이 소비되고 있었다. 정말 사라질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지만 무엇인가가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었을 때 몸무게는 4kg가량 줄어 있었다. 그 즈음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종이를 먹고 있었다. 주말 아침이면 기숙사 휴게실에 무료 비치되어 있는 신문을 읽었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나의 행동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다 낡아빠진 소파 한구석에 앉아 기사를 읽으며 신문지를 씹어 삼켰다. 그곳에 비치된 신문을 읽는 학생들은 거의 없는 터라 날짜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도리어 나는 날짜가 좀 지난 신문을 선호했다. 그 편이 잉크 냄새도 덜 나고 먹을 만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 발행된 신문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 최고(最古)의 문자가 바뀌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중국 저장성 핑후(平湖)시 좡차오(莊橋) 고분 유적지에서 갑골문자보다 1400년 앞선 문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갑골문자는 더 이상 현존하는 최고의 문자가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 지식은 하루아침에도 뒤바뀌었다.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까지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예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한때 지구가 네모꼴이라고 믿었던 것이나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돌아간다고 믿었던 사실 또한 분명히 존재했었고, 몇 세기 동안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로 믿었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가 무성생식 동물이며 강바닥 진흙 속에서 뱀과 짝짓기하여 나왔다고 믿었다고 한다. 어쩌면 앨빈 토플러가 경고한 쓸모없는 지식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몰랐다. 무엇이 압솔리지(Obsoledge)인지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어머니는 지식은 별로 신용할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먼저 말을 걸고 방해하는 쪽은 어머니였다. 심지어 시험 직전에도 잠든 나를 깨우지 않았다. 왜 깨우지 않았느냐고 다그치자 어머니는 “똑똑한 멍청이보다는 어리석은 바보가 낫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한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약간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각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어. 방학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 두 달 만에 그 친구는 완전히 망가져버렸어. 그들이 배운 지식으로 그녀를 그렇게 죽여 놨단다.” 그러면서 똑똑한 멍청이라면 집안에도 한 명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웃었다.
어쨌든 어머니는 너무 빨리 죽어버렸고, 아버지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나는 신문지를 먹다 말고 옆으로 치웠다. 습관적으로 종이를 씹는 탓에 식욕이 떨어진 것이 원인인 듯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대비해 종이의 양을 좀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림= 반미령
시험주간이 다가오자 늦은 시간인데도 불이 켜져 있는 방이 많았다. 곧 기말시험이었고, 다들 부모가 원하는 수준의 점수를 내야 했다. 그것도 우리들만의 계약이었다.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수준의 점수를 내놓으면 사생활 간섭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우리들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잠시잠깐 타협을 보았다. 이 시험이 끝나면 겨울방학이 찾아오고 그러면 곧 수험생이 될 터였다. 나는 마음이 조금 심란해져 유신의 곁으로 다가가 헤드셋을 뺐다. 특별히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나는 유신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런 멍청한 질문이 어디 있어? 뭐가 될 수 있냐고 물어야지.”
“알았어. 뭐가 될 수 있는데?”
“검사 혹은 변호사.”
“그게 꿈이야?”
“설마, 날 뭘로 보는 거야? 당연히 AV 감독이 되고 싶지. 내 취향에 맞는 여자들의 비명을 듣고 싶다고.”
나는 조금은 감탄하고, 조금은 맥이 빠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넌?”
“몰라, 아무것도 생각한 게 없어.”
유신의 아버지는 유명한 검사였고, 그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조계로 입문할 것임이 분명했다. 비명소리를 좋아하는 검사라니, 절대 법을 어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학교에 있을 때는 하루빨리 졸업을 원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온 그녀가 교묘하게 어머니의 물품을 숨겨놓았기 때문에 어머니를 추억하는 것도 점점 힘이 들었다. 기억은 자꾸만 일그러지고, 뭉개지다 이내 흐릿해졌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므로 나는 어떠한 언질이나 예고도 없이 불행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가장 억울한 사람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인생을 채 정리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으니까. 나는 가끔 부지불식간에 삶이 끝장난 사람이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 중 누가 더 불행한 것일까 생각했다. 그것은 어려운 문제였으나 나에게는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더 안타까웠다. 만약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예고통지를 받았으면 했다. 그러나 인생은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편이고,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취향―대부분 글자가 새겨진―에 맞는 종이를 잘라 담뱃갑 안에 넣어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담배는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무난하면서도 격에 맞는 사춘기 행동 중에 하나였고, 그런대로 어른들이 눈감아 줄 수 있는 반항이었다. 나에겐 담배가 종이였던 셈이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저 조금 식욕이 떨어져 살이 빠진 정도였다. 체중도 6킬로그램 정도 빠지더니 더 이상 변화가 없었다.
아버지와 그녀는 외출하는 날이 잦아 형식적으로 저녁식사 시간에만 얼굴을 비추면 되었다. 그마저도 거의 혼자 먹는 날이 많았다. 부엌 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만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고통이 석상으로 만들어져 지속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문득 나는 그의 선택이 무지한 인간들을 깨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을 위한 자기파괴 행위. 자신을 죽이는 것 이외에 다른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겨울방학은 평탄하게 흘러갔다.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수학공식을 외우고, 영문법을 필기했다.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학생 본분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영단어 두 권을 배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피도 살도 되지 않는 공기를 흡입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개학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학생 한 명이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평소 조용하고 존재감이 희미한 지원이라는 아이였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언론매체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며 제각각 상황을 진단했다. 대부분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뒤늦게 구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체를 부검해보니 직장은 찢어져 있었고, 항문이 파열되어 있었다. 부검의는 사체가 너무 피로 뒤범벅되어 있던 탓에 뒤늦게야 그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정불화가 언급되었고, 평소 피해자가 약간의 우울증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자살의 동기를 정확히 파악해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피해자 학생에게 폭력을 가한 학생들을 찾아내어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지원을 괴롭힌 무리들을 잘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들로 인해 지원이 창문 문턱에서 발을 뗄 용기를 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지, 계산적인지 까먹었다. 단지 그들을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욕만 해댈 뿐이었다. 그 미치광이들이 곧 옷을 갈아입고 사회 곳곳에 투입된다는 생각은 잊어버렸다. 아마도 누군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없애버리기 전까지는 모른 척할 속셈인 듯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흘러 ‘불장난’이 ‘테러’가 되면 모를까 그 전까지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시대 탓만을 하며, 모든 것을 시대의 잘못으로 돌릴 것이다. 실제로 누구의 잘못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지원의 죽음은 여러 곳의 신문에서 다뤄졌다. 1면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면 2면 정도에 제법 지면이 할애되었다. 그런데 다섯 곳의 신문사는 하나의 사건을, 지원의 죽음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해석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청소년들의 폭력성, 자식을 방기한 무관심한 부모 세대의 문제까지.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 신문을 깨알같이 채운 글자들 속에서 진실이 존재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일부분은 사실이었고, 또 진실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들이 지원의 죽음을 온전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 기사들을 전부 오려 씹어 삼켰다. 신문지 특유의 씁쓸한 냄새가 났다. 그것이 순전히 종이의 맛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내가 먹었던 종이 중에 가장 씁쓸했던 것은 확실했다.
그날 오후, 나는 지원이 창문에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지원은 건너편 건물 8층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원의 추락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지원은 열려 있는 창문을 닫으려는 듯 손을 밖으로 내뻗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중력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듯 몸을 내맡겼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어서 나는 지원이 떨어졌다는 것과 자살이라는 단어를 매치시키지 못했다. 곧이어 수박이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겉껍질이 터지고 빨간 속살이 흘러나왔다. 아주 잘 익은 과일처럼 과즙이 풍성했다. 과즙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뒤이어 튀어나오는 비명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방 안으로 숨겼다. 나는 그가 몸을 던지기 전 눈이 마주친 것도 같다고, 희미하게 웃는 얼굴을 본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선생들은 사건을 수습하느라 전에 없이 바빴다. 가해자들을 색출해냈고, 정학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미성년자라는 신분이 훌륭한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거기에 약간의 돈과 권력도 힘을 보탰다. 주동자 세 사람에게 10일 정학처분과 사회봉사활동 명령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잠시잠깐 술렁였으나 곧 수험생의 신분을 깨닫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림= 반미령
*
날이 너무 더워 식욕은 거의 일지 않았다. 간간이 종이를 씹으며 더위를 견뎠다. 종이는 항시 담뱃갑에 있었고, 이틀에 한 번꼴로 채워 넣었다.
종이를 배 속에 집어넣을수록 몸이 점점 납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팔다리가 가늘어지는 것도 같았다. 종이에 쓰인 수많은 역사들과 기록들, 갖가지 이론들과 내용들은 하나의 문자(文字)일 뿐이었다. 그것은 기호였고, 체계였으며 공식이었다. 그 이상 내게 어떠한 의미도 주지 못했다.
이제 나는 누가 보더라도 확연하게 말라 있었고, 자주 빈혈을 일으켰다. 길을 가다가도 아무 데나 기대 있거나 앉아 있기 일쑤였다. 거의 방 안에 들어앉은 채 종이를 씹고 공부를 했고, 형식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 종이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중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고: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내 가족, 이웃까지도 병들게 합니다. 담배 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있습니다.
담뱃갑에 새겨진 경고는 나에게 이렇게 바뀌었다.
경고: 식지(?紙)는 무력증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내 정신, 몸까지도 병들게 합니다. 종이에는 발화성 물질인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이 들어있습니다.
나는 담배 애호가들처럼 별 뜻 없이 경고문을 읽었고, 숙지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에 걸릴 확률보다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과 교통사고보다 자살로 인한 사망 확률이 더 높다는 통계적 근거를 들며 그만두지 않았다. 실제로 전쟁, 살인, 자연재난에 의한 사망 건수를 합한 것보다 자해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았다. 그러므로 종이를 먹고 죽을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봐야 했다. 몸이 무거워진 것을 빼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고, 그것이 종이를 먹은 대가라면 무난하다고 여겼다. 이제 나에게 종이는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기보다 기호식품에 가까웠다.
*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졌다. 어느 날, 폭양에 시달리고 있는데 몸이 지나치게 뜨겁다고 느꼈다. 책상 옆에 놓인 물을 쉼 없이 마시며 공부에 열중하려 했지만 열기는 더더욱 심해졌다. 무언가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순간 팔 한쪽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내 비명은 목적지를 잃고 공기 중에 힘없이 흩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불길이 사라졌다. 팔은 말짱했다. 나는 팔을 매만졌다. 피부는 살짝 그을린 것처럼 새빨갰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더위와 공부에 지친 나머지 환각을 보았다고 생각하며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이제 미뤄왔던 하나의 사실을 얘기해야겠다. 그러니까 사건 당일 전날, 나는 지원을 괴롭히던 무리와 마주쳤다. 나는 그날 처음 지원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같은 반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마주친 일이 없었던 그였다. 그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그 무리에는 익히 아는 얼굴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신이었다. 비명 수집에 열심이던 유신이 실제로 비명을 채집하기 위해 합류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유신은 일종의 관람자였다. 그것도 VIP석을 얻은. 나는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던 중이었다. 그날 그들이 점찍은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보통은 체육기물 보관소나 학교 뒤 공터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별 상관하지 않고 지나가려 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성인으로 넘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졌고, 형식적 구타와 욕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힘없이 붙잡혀 있는 지원을 힐끔 바라 본 뒤 유신에게 적당히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유신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로도 유신은 자신의 데스크톱에 저장되어 있는 은밀한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했다. 나는 전보다 더 자주, 은밀히, 자신이 애용하는 사이트에 접속하는 유신을 목격한다. 그리고 가끔 그 방을 어슬렁거리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한다.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가 소문이 되었다가 결국 ‘역사’가 되어버린, 텅 빈 역사를 애도하는 그림자를. 그 그림자는 한참 동안 창문턱을 서성이다가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언젠가는 소멸할지도 모르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태로.
*
그때 내가 본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더위에 지쳐 본 신기루도 아니었다. 한밤중 후덥지근한 공기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다리의 절반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내 몸의 일부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괴이한 기분이었다. 나는 재빨리 담요를 덮어 불길을 잡아냈지만 어디에서 불길이 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몸에서 불이 나.” 내가 말했다.
“내 몸에는 전기가 흘러.” 유신이 대답했다.
“장난 아냐. 진심이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 진짠데.”
말이 통하지 않자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제야 유신이 진지하게 물었다.
“어디 다쳤어?”
그제야 나는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 앉았다.
“그게 아냐. 요즘 갑자기 몸에서 불이 나.”
“열이 난다구?”
“아니, 불. 파이어.”
유신은 진지한 나의 태도에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내 말뜻을 오해했는지 “수박을 못 먹게 된 것으로 충분해. 너까지 협력할 필요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지. 그러니 자살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야.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신에게, 운명에게, 혹은 세상에게 대항하는 거지.”
유신은 나의 말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나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자살이 정말 생을 끝내기 위함인지, 새로운 생을 시작하기 위함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니 이 게임에는 승자가 없고, 오로지 선택만 존재한다는 거였다. 너무도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강의하는 유신 덕분에 나는 대화를 포기해버렸다.
그림= 반미령
*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자 그 사건은 수분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책 속에 파묻고 잠시나마 광기를 더위 속에 부유하게 내버려두었다. 정학처분을 받았던 아이들마저 이 시스템에 동참했다.
나는 나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 때문에 거의 소화기를 휴대하다시피 가지고 다녔지만 종이를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헤로인이나 코카인과 같은 심각한 중독 상태였던 것이다. 내 영혼이 종이에게 좀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은 이성과 별개였다. 더군다나 수능이 코앞이었다.
내가 지원의 유언을 발견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사건 당시, 경찰측은 유서를 발견하지 못했고, 주변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지원은 ‘느닷없이’ 혹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죽어버렸다. 조사팀은 끝내 지원의 유서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지원은 우발적 충동이 불러일으킨 안타까운 죽음으로 매듭지어졌다. 그날 나는 아침에 먹은 우유 때문인지 배탈이 났고, 수업시간 도중에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면서 낙서들을 읽었고, 그중에 지원이 남긴 유언을 발견했다.
새를 펴면 종이가 된다/ 새 속에는 아무것도 써 있지 않다/ 덜 펴진 곳은 뼈의 흔적이었다
그것은 수업시간에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을 위해 선생이 들려준 이원의 시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나는 언젠가 우연히 내신에도, 수능에도 나오지 않을 그 시를 열심히 베껴 적는 지원을 본 적이 있었다. 낙서되어 있는 글들 가운데―대부분 욕설이긴 했지만―유일하게 단정한 글씨체이기도 했다. 거기엔 지원의 이름이 조금도 거론되어 있지 않았지만 나는 직감했다. 이것은 지원의 유언이라고. 그 순간 문득 내가 진실로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지원이 더러운 화장실 벽면에 유언을 남겨야 했던 것처럼, 내가 습관화하면서까지 종이를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기숙사로 돌아와 박엽지 한 장을 꺼내 이름 석 자를 썼다. 그리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씹어 삼켰다.
*
나는 결말이 빤히 보이는 영화 한 편을 관람하고 있다. 그런데도 상영 도중에 뛰쳐나가지 않고 예상된 결말을 기다리는 관객이다. 그것이 습관인지, 혹은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도 아니면 누구도 상영 도중에 뛰쳐나가지 않기 때문에 덩달아 잠자코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여하간 나는 결말이 예상된 영화를 관람 중이고, 도중에 뛰쳐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따금씩 불길에 휩싸이는 내 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종이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온갖 공식들이 뒤섞여 있고, 심지어 배 속에도 문자들이 뒤섞여 부글거렸다. 나는 식지 행위를 그만두어야 했다. 나는 많은 것들을 먹어치웠지만 그 기억들 중에 정작 필요하고 쓸모 있는 지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기말고사가 끝난 기숙사는 묘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공백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짐을 쌌다. 곧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여름 방학이었다. 짐은 많지 않았다. 책과 옷가지가 전부였다. 내가 관리실에서 얻어온 박스에 짐을 다 채울 때까지도 유신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었다.
“집에 안 가?”
내 물음에 유신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더니 생각 중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도 없을 텐데, 집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그게 그거야.”
유신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게 그거야. 집이나 기숙사나 별 다를 게 없지. 나는 박스에 묵묵히 테이프를 감았다. 그게 그거야.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기숙사 관리실에 포장된 짐을 맡기고 일괄배송처리에 동의했다. 한쪽 구석에 박스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관리인은 장부에 무언가를 적으면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다음 주면 소포가 집으로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택배 주소를 확인하고 방으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관리인이 나를 보며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학생, 몸에서 불이 나!”
그제야 나는 내 손목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황급히 근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지만 새끼손가락은 이미 불에 타 없어진 뒤였다. 나는 물에 젖어 축축한 옷을 동여맸다. 화상에 그을린 팔뚝에 고통은 없었고, 오로지 공포만이 남아 있었다.
내 몸 어딘가에 점화장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을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금 떨고 있었다. 유신은 여전히 동영상에 몰입하고 있었다. 나는 헤드셋 밖으로 새어나오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환희에 찬 비명인지, 고통에 찬 신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축축해진 소매를 붙든 채 침대에 주저앉아 유신의 등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봐, 정말로 타고 있다니까.
내 말을 믿지 않았던 유신에게 증명해보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몸이 발작적으로 떨려왔다.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한여름인데도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그날 밤, 나는 내 몸 안에 무엇인가가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내 몸 안에 지구의 내핵과 같은 부분이 있어 5500도의―태양과 맞먹는―열기가 순식간에 발산되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가 시험을 위해 외는 목소리를 들었다.
“질량보존의 법칙. 화학 변화에서 반응 전후의 총 질량은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된다. 물질은 화학 반응 뒤 생성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변할 뿐이며 소멸하거나 새로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종이가 타 재가 되어도 종이의 성분은 티끌만큼도 없어지지 않는다. 일부는 공기 안으로 날아가고, 나머지는 시커먼 재 안에 남을 뿐이다.”
그 순간 나는 미소처럼 보였던, 종말로 치달아가던 한 인간의 마지막 외침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 여기 있어.
*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 사체는 완전히 연소되어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이불과 베개는 멀쩡했다. 부검의는 “이불을 전혀 태우지 않으면서 두개골이 완전히 연소될 만큼 강렬한 화재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진을 찍다가 깜짝 놀랐다. 하얀 뼛가루가 마치 종이처럼 보였던 탓이다. 그것은 뼈의 흔적이었고, 새로 태어난 듯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