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소설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부분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 소설이 당선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 두 분께서 부족한 제 소설에서 어떤 가능성을 읽어주셨기 때문이겠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화영 선생님과 은희경 작가님께서 심사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기뻤습니다. 좋은 글만 읽고 쓰기에도 바쁘실 분들이 제 소설을 읽었다니요. 한편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합니다. 두 분께서 읽어주신 가능성이 가능성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할 사람이라면, 훌리오 꼬르따사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Gracias. 그가 토끼를 토하는 남자가 나오는 괴상한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제 소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당선소감을 쓸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 소설은 당신의 소설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아직 시작이니까요, 나아지겠지요.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추고 떨리는 마음을 한 뼘씩 더듬게 했던 무수한 소설들이 생각나는군요. 그 작가들은 어떻게 그런 기막힌 것을 쓸 수 있었을까요. 대체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요. 허탈한 질투를 추스르고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보냈을 불면의 밤들과 틀림없이 지난했을 무수한 퇴고의 과정을요. 아마도 그런 짜증스러운 반복이 마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쓰는 것밖에 없군요. 그런데 열심히 쓴다는 게 또 무엇일까요. 많이 쓰겠다는 걸까요. 그런데 많이 쓴다고 해서 꼭 잘 쓴다는 보장은 없는데, 그렇다면 잘 쓸 수 있도록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면,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할까요. 잠꼬대 같은 소리군요. 좋은 소설을 열심히 쓰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고민해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