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이 쓸모없는 하나님이 제게도 있습니다. 감사와 은총보다는 원망과 타박이 필요할 때 종종 요긴합니다. 그런데 가끔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좀 놀랍습니다. 아니 많이 놀랍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잠깐 혼동하신 게 아니었나 할 정도로.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받은 성인용 브래지어·팬티 선물세트처럼 당선 통보는 신기하고 민망하고 설렜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시를 잘 모릅니다. 내가 써놓고도 잘 모릅니다. 아무리 봐도 가짜 같아서 어디다 버젓이 내놓을 만한 물건이 못 됩니다. 하지만 가끔 자해공갈단처럼 내 시를 중인환시에 던져놓고 싶었습니다. 온갖 모욕과 모멸을 참담하게 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던 수모 대신 누군가가 칭찬을 해줄 때는 하나님처럼 난감합니다. 그 칭찬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꿈꾸던 농담이지만 비현실적입니다.
무슨 군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앞으로 잘 써야지요. 이렇게 겨우 시를 흉내 내는 데도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빚졌는데요. 특히 진주의 김언희, 유홍준 선생님, 하동의 김남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산타클로스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신 친정의 어머니와 극진한 간병인이신 아버지께 이 선물을 고스란히 드립니다. 잠시 효도한 것 같아 위안이 됩니다.
끝으로 뽑아 주신 김사인, 황인숙 선생님과 세계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 한 줄의 약력을 쓸 때마다 상기하겠습니다. 이 어색한 소감문은 얼른 끝내고 서둘러 나를 학대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