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감수성으로 분석을 밀고 나가는 평문이 있는가 하면, 해박한 지식으로 강의록 같은 해석을 꾀하는 평문도 있었다. 현실에 대한 굵은 비판의 논조로 문학작품의 결을 확장하는 평문도 있었다. 그 어떤 평문도 문학평론이라는 이름에 충분히 값하는 훌륭한 글들이었다. 그러나 당선이라는 관문 앞에서는 어차피 선택의 순간을 지나가야 한다. 여기서의 선택은 그러므로 시각의 선택을 의미할 뿐, 평문 자체의 질적 우열과 크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묵시적 재난에서 개별화된 재난으로 - 편혜영 『홀』’(정재훈)은 이런 관점에서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재난의 세기라고 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 가운데에서 문학의 위상을 성찰케 하는 비평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평론이다. 그로테스크한 공포를 소설의 소재, 혹은 주제로 내세워온 중견소설가 편혜영을 다룬 작품으로서 주목될 만하다. 신자유주의와 후기 근대가 유발하고 있는 오늘날의 재난을 ‘근대적 재난’이라고 이름하면서 구체적인 소설 분석과 현실세계를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을 조화시킨 비판적 균형감이 신뢰를 준다. 대상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독해의 결과로 보인다.
‘바깥을 향한 손 - 김애란’(강숙영), ‘대화하는 인간, 진화하는 패턴 - 황정은’(오은교), ‘파노라마, 혹은 연속필름의 기억 - 신용목의 시’(이철민), ‘오르토스에 대항하여 - 백민석’(임선우) 등의 평론들은 선자로서도 큰 하자를 찾기 힘든 작품들이다. 구태여 부기한다면, 김애란론은 김애란 속에만 깊이 묻혀서 그야말로 바깥을 보는 일은 좀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황정은론은 대화의 소설적 기법에 대한 심도있는 강의가 연상된다. 그런가 하면 유일한 시론인 신용목론은 시인의 세계를 성실하게 따라가다가 그 이상을 놓친 감이 있다. 한편 패기있게 쓰여진 백민석론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과정과 결론을 안고 있으면서도 깊이있는 새로움에는 다소 못 미친 듯한 인상이다. 신화적 환유와 결부된 현학적 분위기는 이제 지양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선외로 물러난 분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모두들 평단의 새로운 힘을 보탤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