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사람은 알 것이다. 소설은 내용이 형식을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이’의 첫 문장―루에게 먼저 살자고 한 건 그녀였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제대로 된 점화이다. 엄마의 빈자리에 루를 끌어들이면서 소설의 구조를 얻은 것이다. 개인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경계와, 필요가 충족되고 친밀함이 유지되면서 침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영원히 엄마를 놓쳐버린 상실과 애도를 섬세하고 정교하며 때론 날카롭기도 한 구도 속에서 잔잔하게 그려냈다. 침묵이 만드는 여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성찰 속에서 인간의 체온과 삶의 풍경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깊고 안정된 작품이다. 한 편의 소설에는 잊히지 않는 하나의 장면이 있어야 성공한다. ‘어떤 사이’에는 루가 엄마와 정반대의 의미에서 관계의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다하는 후반부에 그 하나의 장면이 마련돼 있다.
‘로맨틱 홀리데이’는 작품 속에 안개처럼 흘러 다니는 홀리라는 인물과 그녀가 관용적으로 어디에나 붙여 쓰는 로맨틱을 결합한 제목이다. 기대 없이 묻힐 수 있는 제목이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전에 없던 이미지가 생기며 완전히 새로워진다. 등장인물들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여서 보편적인 현실의 중력을 조금 벗어난 것 같지만, 젊은 여성이 주변과 다투며 만들어 가는 정체성과 만만치 않은 현실과 버거운 공백은 별반 차이가 없다. 소설에서는 모두 홀리이면서도 조금 다른 홀리라는 차이가 이해의 끝이기도 하지만, 성장의 희망이기도 하다. 나른한 채로 핍진성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라이머’는 서술의 층위를 달리해 막 나가는 엄마와 화해를 끌어냄으로써 학교 폭력을 다룬 다른 소설들과 큰 차이를 벌려 눈에 띄었으나 제목인 라이머의 의미는 끝내 알 수 없어 아쉬웠다. 과대망상인 아버지로부터 불행을 물려받았지만, 절망과 유폐와 파국의 이야기를 유쾌한 내러티브로 전개해 폭소와 감동을 자아낸 ‘우주 쇼맨’도 잘 읽었다. 이 작품은 너무 많은 정보를 배치한 시작 부분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 최종심에서 ‘어떤 사이’와 ‘로맨틱 홀리데이’를 두고 두 심사위원이 논의한 끝에 ‘어떤 사이’를 당선작으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