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고, 마음 맨 안쪽까지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진 낙엽 한 잎이 다 닳아진 옷깃을 세운다 밥 익는 소리 가난히 새는 낮고 깊은 창을 만나면 배고픔도 그리움이 되는 걸까 모든 길은 나를 지나 불 켜진 집으로 향한다 그리운 사람의 얼굴마저 도무지 생각나질 않는 바람 심하게 부는 날일수록 실직의 내 자리엔, 시린 발목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으며 새우잠을 청하던 동생의 허기진 잠꼬대만 텅텅 울린다 비워낼수록 더 키가 자라는 속 텅 빈 나무 앞에 가만히 멈추어 섰을 때, 애초에 우리 모두가 하나였던 시절이 그랬던 것처럼 먼데서부터 우리 삶의 푸르른 날은 다시 오고 있는지! 길바닥에 이대로 버려지면 어쩌나 부르르 떨기도 하면서 구로동 구종점 사거리 횡단보도 앞, 누런 작업복 달랑 걸친 낙엽 한 잎이 한 입 가득 바람을 베어 문다 세상을 둥글게 말아엮던 달빛이 하얀 맨발을 내려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