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이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너무들 비슷비슷하다. 유행처럼 생긴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각종 문학강좌 탓이 아닌가 싶다. 시란 어차피 남과 다른 시각 없이는 쓸 수 없는 것, 이런 시각은 손기술의 훈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감각적으로 세련된 시들이 적지 않으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시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이다. 하지만 최승철('눈 덮힌 돌'목도장이 있는 골목' 등), 이현승('근황'모과'등), 장만호('수유리에서'겨울잠' 등)의 시는 크게 돋보인다. 최승철의 시에는 생활의 음영이 짙게 배어 있다. 특히 '목도장이 있는 골목'의 분위도 시를 재미있게 읽히는 데 한몫을 한다. 표현을 공연히 모호하게 하여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게 만드는 버릇은 고쳐야 할 것 같다. 이현승의 시는 남과 비슷하지 않은 시로서 매우 개성적이다. '근황'이 가장 좋았는데 이만큼 유니크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데 수준에 미달하는 시가 여러편이다. 장만호의 시는 우선 읽기에 편하다. 자연스럽고, 그 나름의 리듬도 갖고 있다.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회한이며 안타까움, 그리움이며 깨달음 같은 시적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남의 것이 아니고 진짜 자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억지로 만든 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 점은 매우 값진 것이다. '수유리에서'가 가장 빛나는데, "점자를 읽듯 세상을 더듬거렸으나" 같은 비유도 시에 생기를 더한다. 밝고 환한 분위기의 '원정'(園丁)은 생명감으로 충일해 있고 완결성에 있어서도 돋보인다. '청어'(靑魚)도 그가 시를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자질을 가졌음을 말해주는 균질감 있는 시다. 우리는 그가 시인으로 출발할 준비를 충분히 끝냈음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주저하지 않고 '수유리에서'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