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공어와 빙어
성 명 : 신현대

당선 소식을 듣고 집 앞 초등학교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언 손을 녹이며 체육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운동장엔 겨울이 눈처럼 쌓여만 가고, 구석진 곳에선 길 잃은 아이들이 얼어버린 땅 위에 웅크리고 앉아 삭정이로 뭔가를 적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적고 있는 것이 무엇인줄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누구인줄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갈 아이들.

손으로 꼽아보니 벌써 십 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해 가을,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이었죠. 스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턱대고 집을 뛰쳐나와 스님이 되려고 했습니다. 가슴에 맺힌, 언젠가부터 가슴을 옥죄어 밭은 숨만 몰아쉬게 하던 무엇인가를 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인가 지리산 여기저기를 헤매다 마지막에야 불일암이란 곳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불일폭포 위에 있다던 작은 암자. 몇 끼를 굶은 허기진 배로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산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폭포 앞에 다다랐고,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 앞에서 목놓아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불일암이란 곳은 소실되어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자주 그 생각을 합니다. 폭포 앞 바위에 앉아 안개에 휩싸인 계곡을 바라보던 아이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만 내려가라고, 너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등뒤에서 가슴을 후려 패던 폭포소리도 기억납니다.


십 년이 지났지만 그때와 달라진 걸 찾으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어집니다. 가슴에 쌓여만 가는 것들을 풀어내려 글을 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미욱한 글을 뽑아주신, 작은 인연의 한 자락을 잡아 주신 김윤식, 오정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호된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신 본교 선생님들과 동기들, 소설분과 친구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끝으로 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항상 하늘에서 지켜봐 주시는 아버지에게 이 기쁨을 전합니다.

<약력>

▲1976년 충북 단양 출생

▲1994년 제천고등학교 졸업

▲1996년 세종대 영문과 입학

▲1997년 군입대

▲1999년 세종대 중퇴

▲현재 동국대 문과대 문예창작과 2학년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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