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재, 새로운 기법을 모색하는 11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그 중에서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 신인다운 참신한 상상력, 나름의 진지한 사유와 형상력이 좀 더 나은 5편을 추렸다. 이 5편은 저마다의 장점과 단점이 있어 쉽게 의견합일이 되지 않아 심사 자리에서 다시 독해한 끝에, 이준희의 ‘여자의 계단’을 당선작으로 뽑게 되었다.
한겨울의 막차라는 특수 상황에서 빚어지는 승객들의 이야기인 배명희의 ‘마지막 버스’는 폭력과 그를 묵인하는 집단, 그에 맞서다 오히려 더한 폭력을 당하고 길바닥에 버려지는 주인공이 자기모순을 깨달음으로써 용서에 이르는 과정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강인의 ‘아해, 질주의 끝’은 이상의 시 ‘오감도’를 밑그림으로, 출구 없는 존재의 본질을 진지한 사유로 성찰한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사유의 스펙트럼만으로 구성돼 있어 이야기적 요소가 부족하다. 시신의 얼굴을 화장(化粧)해 주는 이색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차노휘의 ‘얼굴’은 가벼운 스케치풍의 소품이다. 사실적 묘사와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딸을 잃고 자포자기한 주인공이, 장례식장의 동료인 K의 자살한 연인의 마지막 얼굴을 화장해 주면서 잃었던 삶의 의욕과 사랑을 회복하는 결말은 심리의 비약이 심해 공감이 덜하다. 강헌의 ‘그는 나를 모른다’는 시간의 퍼즐을 뒤바꿔 봄으로써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있다. 한 샐러리맨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통해 삶의 감춰진 부분을 드러내고 존재의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점이 참신하다. 다만 관념을 이야기 속에 더 깊이 육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선작인 이준희의 ‘여자의 계단’은 현대인의 관계의 단절, 소통의 부재를 새로운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247개의 계단이 있는, 옆자리 동료였던 ‘여자’의 거처를 계단으로 걸어서 힘들게 찾아가는 이야기는 은유를 풍부하게 함축하고 있다. 고립된 모든 개인을 상징하는 ‘여자’는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단절된 삶을 살지만 내면 깊숙이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다. 드디어 계단을 모두 올라 여자의 방문을 열고 오래된 나무와의 만남을 예감하는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은 이 작품이 당선작에 값하는 충분한 이유로서 의견이 일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