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근무 중 잠깐 집에 들렀다 현관 앞에서 낯선 여자를 봤다. 죄송하다는 말을 웅얼거리며 나는 황급히 문밖으로 나섰다.
“뭐야, 오자마자 또 나가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여자를 돌아봤다. 분명 모르는 여자다. 아닌……가.
기겁을 한 여자, 그러니까 아내에게 이끌려 신경정신과엘 갔다. 안면인식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증상으로 봐선 그렇다고 젊고 빠릿빠릿해 보이는 의사는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외국인을 본 것처럼 사람 얼굴을 분간 못하게 되는 현상이라 했다. 뇌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기능이 고장 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려 살고 있죠.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요. 아내도 어처구니없어 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좋아질 수도 있겠죠, 라고 의사는 표정도 꾸미지 않고 무성의하게 답했다. 개나 소나 다 스트레스라지. 들으라는 듯 소리치며 돌아서는 내게 그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정신적 충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단 말에 그대로 아내 손을 끌고 나왔다. 내 뒤통수에 대고 의사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병이 계속 진행되면 거울에 있는 자신을 보고도 못 알아보게 될 겁니다. 나불대는 입을 낚아채 수갑으로 채워두고 싶었다.
그림=화가 김경렬
“어때요, 매번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건?”
함께 잠복근무 중인 지모가 보인 깜찍한 반응이었다. 잠시 사태의 심각성을 잊고 나는 장단을 맞췄다.
“옆에 누운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지. 잠자리도 새롭더라니까.”
지모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매번 뉴페이스인 거지.”
지모와 내가 뿜어내는 입김으로 뿌예졌던 차창이 투명해지면서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사람을 구분하죠?”
비로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모가 물어왔다.
“나를 기억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지.”
짐짓 비장한 투의 내 말을 지모는 무시했다. 키가 큰지 작은지, 덩치가 있는지 없는지, 헤어스타일은 어떤지,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뭐 그런 걸로 구분해야겠네요. 의사 처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키가 비슷하고 몸집이 비슷하고 헤어스타일까지 같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한 명 한 명 다른 무언가로 인식해 나가야겠지.”
“뭘로요?”
“눈은 해태가 됐지만 귀만은 멀쩡하니까.”
큰소리는 쳤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다. 얼굴이 낯설면 목소리도 구분 안 되는 법이다.
“저는 어때요?”
지모가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자네는 기억할 수 있지. 자네를 보면 심장이 기분 좋게 뛰거든.”
말을 하고 나서 나는 급격히 의기소침해졌다. 정작 그래야 되는 사람은 신참 파트너 지모나 늘 인상을 구기고 있는 반장이 아니라 아내여야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모가 편의점 앞에서 자판기커피 두 잔을 뽑아왔다. 좁은 차 안에서 덩치 큰 두 남자가 종이커피를 입에 문 채 오가는 사람들 뒤통수만 지루하게 쫓고 있었다. 모든 수사는 인상착의부터 시작된다. 한 번 대면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에서 힐끗 본 얼굴조차 나는 잊지 않았다. 앨범에서만 본 아내의 친구를 종로 한복판에서 아내보다 먼저 알아보는 바람에 그녀가 기겁한 적이 있을 정도다. 정말 나쁜 짓하고 도망가면 안 되겠네. 아내가 놀라서 되뇌었다. 나쁜 짓 안하면 되잖아. 나는 웃음으로 받아쳤지만 경직된 그녀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내가 아내 얼굴에서 읽은 건 두려움이었다. 그랬던 내가 안면인식장애라니. 반장은 허허 웃기만 했다.
“반장이 다른 말은 안 해요?”
지모가 빈 종이컵을 손바닥으로 납작하게 누르며 물었다.
“검사결과 보고 얘기하자는데 떠름한 얼굴이야.”
“하긴, 다들 빠져나가는 분위기니까요.”
듣기 거북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일 수도 없었다. 반장도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 눈친 아니었다. 수습 나오는 신임경찰관 대부분이 형사계는 못 가겠다며 머리를 흔든다. 경찰됐으니 형사 한 번 해봐야지, 하고 들이밀었다 제풀에 지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반장은 난감한 표정부터 지었다. 설마 얼굴 분간이 안 된다고 십년간 형사 생활로 얻은 직감이 어디 가겠어. 일단 이번 사건은 마무리하고 보자고. 크게 인심 쓰듯 말했지만 실은 한 사람의 손발도 아쉬운 판이다.
이 주 전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본부는 정신없었다. 피해자 박형석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둔기로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삼일 후 아파트 관리인에게 발견된 박형석은 입을 벌리고 큰 대자로 뻗어 있었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카펫은 빨갛게 물이 들어 원래 색을 알 수 없었다. 죽고 죽이는 일은 한순간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몸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여러 각도에서 벌거벗은 사체 사진을 찍는다. 소소한 인간관계까지 모두 파헤쳐 단서라는 이름이 붙은 서류철에 꼼꼼히 기록한다. 가족들을 불러 죽은 자와의 관계가 어땠는지도 밝혀야 한다.
캐나다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다 연락받고 온 박형석의 부인은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닥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그와 같은 자신의 심경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남편과는 오래전부터 각방을 썼다 했다. 그러나 삼 년간 박형석은 아이 둘의 학비와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냈고 현지에 대저택이라 할 만한 집도 장만했다. 월급만으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마침 회사에서 공금횡령이 의심돼 내사를 받던 중이었다. 주변의 입을 통해 박형석이 아파트 말고도 개인 명의로 된 오피스텔에 자주 들락거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 팀으로 나눠서 일이 진행됐다. 1팀은 살인이 있던 날 살인이 있던 시각으로 추정될 무렵 아파트에 드나들던 사람들을 집중 조사했다. cc-tv 조사에 서른 두 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2팀은 회사와 주변 인물 탐문, 3팀은 P오피스텔에서의 잠복근무였다.
나와 지모는 김시호 사건 처리로 뒤늦게 3팀에 투입됐다. 우리가 합류할 당시 경비원의 입을 통해 박형석이 오피스텔에서 주기적으로 만난 여자가 있음을 알아낸 상태였다. 평소라면 지모가 내 지시에 따랐겠지만 이젠 내가 지모 표정을 살펴야 할 형편이다.
“보면 알 수 있겠어?”
경비원이 작성한 몽타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내가 물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누군지 기억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지모 역시 영 자신 없어하는 얼굴이었다. 저는 몽타주인식장애가 아닐까요, 하는 바람에 기어코 내 손바닥이 그의 뒤통수를 강타하게 만들었다.
“십 년간 내연관계라면 부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감상에 젖은 듯한 음성으로 지모가 말했다.
“무슨 근거로?”
“박형석이 오피스텔을 구입한 시기가 십 년 전이라니까요.”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 내연녀가 계속 바뀌었을 수도 있고 경비원이 말한 여자가 내연녀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지모는 의아해했다. 직감을 믿고 덤비던 평소의 나와 다르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 역시 나답단 생각이 안 들었다.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성격까지 바뀔 수 있는 걸까.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지모가 화제를 바꿨다.
“일단 목격자를 찾아야겠죠?”
나는 보조석 창문을 내렸다. 어둠이 내린 지 오래지만 바람 한 점 없었다.
“목격자가 있다고 전적으로 믿을 건 못 돼.”
아무리 억울하게, 잔인하게 살해당해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기댈 것은 가해자와 목격자의 진술뿐. 그러나 결정적 단서가 돼야 할 이들의 진술이 사건을 미궁 속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작년 7월, 꼭 이맘때였다. 실종된 소년이 인근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같은 반 여학생은 소년이 어떤 아저씨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나 식당 주인은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향하는 소년을 봤다 했다. 목격자들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뇌에 저장돼 있는 수많은 정보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서로 연결돼 있다. 이 네트워크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내면서 기억은 재구성된다. 소년의 친구인 김군이 산에서 내려오는 걸 봤다는 또 다른 목격자 제보에 따라 김군을 추궁했다. 처음엔 집에서 만화책을 봤다 주장했지만 결국 자백했다. 그러나 면회 온 엄마에게 김군은 말했다. 사람들이 다 내가 그랬대. 결국 초동수사부터 다시 시작됐다.
“범인은 잡혔어요?”
“응.”
“누군데요?”
“어떤 아저씨.”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교대조가 나타나서야 철수했다. 지모는 괜찮다는 나를 억지로 집 근처까지 태워주고 경찰서로 향했다. 수사보고서도 작성해야 했고 김시호사건 기소를 위해 검찰에 필요한 서류도 넘겨야 했다.
지모를 보내고 아파트 입구를 지나는데 발소리 하나가 따라왔다. 발소리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웠다. 한쪽 귀와 다른 쪽 귀가 서로 다른 무게의 소리를 따라 쿵닥쿵닥 댔다. 균형이 맞지 않게 걷고 있는 건 나일지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긴장했다. 걸음이 빨라지자 뒤따라오는 걸음도 빨라졌다. 모퉁이를 돌면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도 나를 봤다. 반사적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자 입에서 가느다란 비명이 새어나왔다. 여자가 내 팔을 꼭 잡았다.
“여보.”
그와 같은 호칭으로 나를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자신을 아내라고 주장하는, 아니 아내가 분명 맞을 여자의 눈빛에서 놀라움이 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러지 마.”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여전히 나는 며칠 동안 한 페이지도 읽어 넘기지 못한 책을 보듯 그녀를 봤다. 글자는 읽히지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의사 충고대로 아내의 신체 특징을 기억해 외워두었다. 작은 키에 단발머리, 새하얗게 분을 바른 분통 같은 얼굴. 그러나 여자는 분명 파마 머리였다. 여자는 나를 먼저 집에 가 있으라 하고는 사라졌다. 파마를 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머리를 깨끗하게 편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짧은 단발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작은단발분통이 됐다. 나보다 아내가 더 안도했다.
아내는 잠잘 때만 빼면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나는 그녀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보다 돈을 더 잘 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덕분에 동료들 사이에서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됐다. 아내는 컴퓨터 모니터 속에 들어가 종일을 있다 잠잘 무렵이 돼서야 잠자리 안으로 슥 들어왔다. 하루 열 시간 넘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눈 밑은 기미로 새까맣다. 피곤하면 더 두드러지게 올라온다.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장을 두껍게 한다. 분가루가 입안까지 들어올 것 같아 나는 그녀가 가까이 올 때마다 입을 꾹 다물었다. 밤이 되면 아내는 불을 끄고 나서야 세안을 했다. 아기는 내 집을 마련한 후에, 라고 한 것이 벌써 칠 년째다. 탁월할 만큼 아내는 지루한 일상을 잘 견뎠다. 삼 년 전 그녀가 이혼을 요구해왔을 때 나는 안심했다. 아내도 사람이구나, 싶어서였다. 직업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어떨 땐 왜 나와 살아주는 걸까, 의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헤어지자고 했을 때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지금일까.
그림=화가 김경렬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공무원으로 소개했다. 내 어깨에 닿을락 말락할 만큼 작고 아담한 여자는 웃을 때면 가지런하지 못한 치아가 다 드러났다. 입가에 항상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고 말도 어찌나 가만가만 하는지 귀를 바싹 가져다 대야 했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오히려 더 커서 애를 먹었을 정도다. 공무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굳이 알리진 않았지만 결국 알게 됐다. 교제한 지 7개월이 조금 지나서였다. 계속 피하기만 하는 그녀를 두고 볼 수 없어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잠수교 아래 세워둔 차 안에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볍고 경쾌한 피아노곡이 귀에 닿는 대로 흩어져버렸다. 나는 와이퍼를 켰다.
“왜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비가 오잖아요.”
나는 가만히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수도권은 전형적인 화창한 봄 날씨였다. 그러나 한강둔치에 주차된 내 차를 에워싼 한 평 공간엔 장대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그녀가 내릴 때까지도 와이퍼는 계속 움직였다. 이 주가 지나서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와이퍼, 아직 작동 중인가요?
아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땐 오히려 담담했다. 아내가 참을 수 없다고 하면 정말 참을 수 없는 상태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참아 주리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턱없는 믿음이었지만 아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와이퍼가 다시 작동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내가 집에 있으면 나는 아내가 아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아내 옷을 입고 아내 목소리를 내고 아내 머리 모양을 한, 낯선 얼굴의 여자를 보고 있으면 어지러웠다. 와이퍼가 내 눈앞에서 달캉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락가락했다.
자꾸 나를 소개하게 된다. 아침만 해도 오피스텔 경비원에게 인사를 하고 신분을 밝혔다.
“알고 있습니다. 형사님 아닙니까.”
“아, 예.”
내가 당황한 걸 보면 상대도 당황한다. 정말 형사가 맞으신가요? 상대가 나를 의심하는 순간 비로소 이성을 되찾는다. 상대는 나를 안다. 상대를 모르는 건 나다. 문장을 머릿속에 몇 번이고 왼다. 그나마 몇몇 사람의 얼굴은 잊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검사 결과를 알기 위해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차츰 적응이 될 거라고. 당장 죽는 게 아니면 사람은 다 적응하고 살게 된다고. 의사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들은 말 중 가장 긍정적인 멘트였다.
일주일의 잠복근무로 성과 없이 몸만 축내는 동안 서에서는 피해자의 아파트를 찾아온 사람들에 관한 조사를 마쳤다. 외부인은 단 두 명이었다. 한 명은 택배직원이고 또 한 명은 학습교재를 파는 방문영업사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 침입했을 가능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박형석의 아파트까지 아홉 개 층 난간에 찍힌 지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2팀은 피해자의 횡령 사실을 밝혀냈다. 영수증을 위조하는 케케묵은 수법이었다. 다만 포토숍 프로그램으로 계좌이체영수증을 위조한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달 수 있었다. 박형석은 컴퓨터로는 보고서도 혼자 작성 못하는 위인이었기에 내연녀가 공범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나왔다. 오피스텔 컴퓨터에 포토숍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추적결과 그가 횡령한 20억원의 돈은 캐나다에 저택과 요트를 사는 데 대부분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내연녀가 관여했다면 박형석에게 이용만 당한 셈이다. 내연녀는 격분했을 테고 말다툼을 벌이다 우발적 살인을 자행하게 됐으리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각본이었다. 본부에선 당연히 이쪽 보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작열하는 햇살만큼이나 지모와 나의 눈에선 불이 뿜어졌다. 그러나 태풍이 게릴라성 폭우를 뿌리고 소멸한 뒤 계속되는 무더위 탓인지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삼십 분간 토의 끝에 점심은 편의점에서 해결하기로 지모와 합의를 봤다. 몇 분 후 검은 봉투를 흔들며 다가오는 지모가 백미러에 비쳤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지모는 평범한 기업체 연구소직원 같은 인상이다. 실제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을 밟다 뒤늦게 경찰시험을 봤다. 이 바닥에서 버틸 깡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데도 묵묵히 삼 년을 있었다.
“어제 일은 어떻게 됐어?”
삼각 김밥의 포장을 벗겨내며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어렵겠는데요.”
우유 곽에 빨대를 꽂던 지모가 내 눈치를 살폈다. 사건은 간단했다. 이웃에서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출동했을 때 안방에서 반이 썩은 60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김시호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목 졸라 죽였다고 자백했다. 문제는 김시호의 형이었다. 사체유기가 의심됐지만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정황증거만 가지고 기소할 수 없답니다.”
지모가 풀죽어 말했다.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사건을 그대로 마무리하려는 반장을 설득해 시간을 만들었다. 헌데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시간만 버린 셈이 됐다. 형제는 시체 썩은 내가 진동하는 집에서 석 달을 살았다. 코가 뭉그러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김시호가 형에게 둘러댄 거짓말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엔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해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석 달이다. 지모와 나는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서로를 봤다.
“우리가 뭘 놓쳤지?”
가슴이 답답한 것과 달리 머릿속은 깨끗했다. 김시호의 증언과 형의 증언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고 사체를 옮기거나 건드린 흔적도 찾지 못했다. 한숨을 푹 쉬는데 뒤엉킨 전선과 지열로 달아오른 콘크리트 사이로 한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긴 생머리, 검은 원피스, 얼굴을 가리는 커다란 챙 모자. 여자의 외형을 보고 나는 급한 대로 외었다. 여자는 그대로 오피스텔 건물을 지나칠 것 같더니 다음 순간 사라졌다. 평소라면 내 몫이지만 이번엔 지모가 건물로 향했다. 내 파트너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차로 돌아왔다. 잘못 짚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췄다는 것이다.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어?”
지모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내 입에서 한숨이 먼저 나왔다. 혹시 홀수층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 아냐? 지모는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미처 그것까지는 확인 못한 모양이다. 박형석의 오피스텔은 4층에 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오피스텔로 향했다. 지모를 5층으로 보내고 나는 4층에 내려 복도를 살폈다. 숨을 크게 몰아쉬고 박형석의 오피스텔 벨을 눌렀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다시 내려와 차로 향하는데 긴생머리챙모자가 도로에 서서 택시를 잡는 게 보였다. 재빨리 시동을 걸고 핸들을 쥐었다. 마침 오피스텔에서 달려 나오는 지모가 백미러에 비쳤다. 충분히 여유가 있음에도 나는 도로 한가운데 그를 남겨둔 채 택시 뒤를 쫓았다. 지모를 태우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에게도 대지 못했다.
택시는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비교적 막힘없는 도로를 삼십 분 정도 내달렸다. 여자는 대로에서 택시를 세우고 주위를 살핀 뒤 걷기 시작했다. 나도 근처에 차를 세웠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발 밑에서 고무 타는 내가 났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여자의 빠른 걸음을 쫓았다. 내 직감은 분명 여자를 안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러나 뒤엉킨 나의 뇌 회로는 그녀가 누군지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 텅 빈 거리를 지났다. 여자 뒤를 따라 주택가로 접어들자 맹렬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들은 물론 골목의 과속방지턱이며 주차구역 표시, 배수구와 벽에 붙은 광고 하나하나까지 낯에 익었다. 예전에 살던 집을 다시 찾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야말로 착각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내가 사는 아파트와 초등학교 사이 골목이었다.
엉뚱하게 일곱 살 때 기억이 의식 밖으로 튀어나왔다. 살면서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았던 기억 속 소년은 낯선 골목에 서 있었다. 금방 온다던 아버지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무작정 허공에 대고 아버지, 나예요, 소리쳤다. 엄마, 나 여기예요. 주위는 너무도 고요했다. 지열이 끓는 신작로에선 라디오 주파수를 돌릴 때처럼 지직지직 소리가 났다. 신작로 위에 던져진 어린 소년의 작고 여린 심장이 타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래도 소년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보통 그 나이에 입양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양아버지는 장군, 하고 불렀고 양어머니는 아들, 하고 불렀다. 양아버지는 엄하고 양어머니는 자상했다. 양아버지는 늘 말했다. 식욕이 있는 애들은 욕심도 많아서 공부를 잘 해. 깨작거리는 것들은 의욕도 없고 공부도 못하지. 소년은 화장실로 들어가 다섯 손가락을 입 안 가득 물고 울었다. 하필 저런 애를 고른 거야, 당신은. 몸도 약하고 강단도 없고 둔하잖아, 라고 양아버지가 말하면 양어머니는 애 듣겠어요, 라며 그를 꾸짖었다. 항상 소년을 염려한 양어머니는 아기를 가지기 위해서도 열심히 밤을 보냈다. 양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소년 역시 열심히 운동하며 체력을 키웠다. 그렇다고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아기의 대타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끝내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는 터지지 않았다. 소년은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이다. 한강 다리 아래서 종일 와이퍼를 작동하게 한 아내가 막상 결혼 얘길 꺼냈을 때 고막 안쪽에서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타듯 명치 윗부분이 아파왔다. 당신은 나를 몰라. 내 말에 아내는 놀라지 않았다. 걱정 마, 당신도 나를 모르니까. 그때는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게 들려왔다.
나는 긴생머리챙모자가 들어간 아파트의 벨을 눌렀다. 시간이 약간 지나서야 작은단발분통이 문을 열었다.
“일찍 왔네.”
이번에 나는 허둥대지 않았다.
“혹시 여기 들어온 사람 없었어?”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없어?”
내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내가 잠깐 나갔다오긴 했어.”
나는 아내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얼굴을 뚫어지게 봤다. 그러고 보니 그날이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 채 죄송하다 고개를 숙인 그날, 잠복근무 중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여자를 따라 집까지 왔었던 걸 비로소 기억해냈다. 챙모자 아래로 비친 여자의 새하얀 얼굴이 떠오르자 내 머릿속은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던 삼 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피해자 박형석의 부인과 아이들이 캐나다로 갔던 시점과 맞아떨어졌다.
집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재빨리 주방과 거실을 훑어보고 안방과 화장실 문을 열어봤다. 텅 빈 집에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아내의 시선이 줄곧 내 발치에 머물러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신발을 신고 있는 상태였다. 욕실에서 걸레를 들고 나오는 아내를 불러 세웠다.
그림=화가 김경렬
“P오피스텔 알아?”
아내가, 아내라고 생각되는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회전력이었다. 왜? 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어디에 있는 오피스텔인지도 그녀는 묻지 않았다.
“알아, 몰라?”
초조한 건 나였다.
“알아.”
마주보던 시선을 비켜선 건 이번에도 나였다. 친구가 살아, 하고 그녀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거실바닥에 어지럽게 찍힌 내 발자국을 닦아내고 있었다.
“친구 누구?”
“당신이 모르는 친구야.”
아내의 대답은 나지막하지만 단호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집으로 들어간 걸 내가 잘못 봤나봐.”
내가 본 건 분명 우리 집이 맞다. 그러나 집에는 아내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옆집 벨을 눌렀다. 아내의 하얀 얼굴이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옆집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끝내 박형석의 내연녀는 잡지 못했다. 범인이 잡혔기 때문이다. 내연녀를 잡지 못함으로 해서 내연녀의 존재자체도 불투명해졌다. 수사는 내연녀가 있으리라는 가정 하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쪽에서 풀렸다. 비상계단으로 드나든 사람들 모두 조사했지만 수상한 자를 찾지 못했다. 수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박형석이 다녔던 학교와 살던 지역이 일치하는 사람까지 조사대상에 올랐다. 그 결과 맨 처음 조사한 방문판매 영업사원이 박형석과 고등학교 동창임을 밝혀냈다. 그가 한밤에 다시 박형석을 찾아온 사실도 알아냈다. 그를 소환해 추궁했다. 피의자는 동창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박형석이 집밖으로 쫓아낸 것에 앙심을 품고 다시 찾아갔노라 실토했지만 범행은 부인했다. 그러나 반장이 직접 나서서 자백을 받아냈다.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든 건 나만이 아니었다. 김시호 형에 대한 기소도 이루어지지 못하자 지모는 혼자서라도 조사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소주 석 잔에 루돌프사슴코가 된 지모가 토로했다.
“금치산자도 아니고 멀쩡하게 사회생활 하는 이십 대 머리 좋은 회사원이에요. 동생이 아버지를 죽이고 그 시체가 방안에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결코 상식적인 일이 아니잖아요.”
시신이 발견됐을 때 보인 김시호 형의 반응이 떠올랐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해했지만 곧 침착한 얼굴이 됐다.
“그는 분명 알고 있었어.”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지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걸 밝힐 가능성은 없을 거야.”
“네?”
“자신을 속이는 것만큼 확실한 은폐도 없거든.”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토막 난 다리를 꿈틀대는 낙지를 보며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뇌에서 받아들이길 거부했던 거겠지. 동생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스스로는 정당화시켜 뇌 속에 입력하고 받아들였던 건지도 몰라.”
“기억의 재구성 말인가요?”
지모의 대꾸에 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엄마는 일찍 집을 나가고 전형적인 폭력아버지 밑에서 형제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어.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하나뿐인 동생은 살인자가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어?”
말을 하면 할수록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그러나 지모는 납득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 해도 시체 썩는 내가 진동하는데 음식물 쓰레기란 말을 믿을 수 있나요? 안방 문을 테이프로 붙여놓고 베란다 창유리가 깨졌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믿어요? 아버지가 반평생 의절하고 살아온 본가에 갔다는 말을 어떻게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죠?”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믿어질 때가 있거든.”
“그게 언젠데요?”
“상대가 진실에 대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
지모는 실망한 낯빛이 역력했다. 이제 내 일이 아니라 이겁니까, 하는 표정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안은 보지 못한 낯선 얼굴이었다. 내가 경무과로 발령 받았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났다. 해가 지진 않았지만 나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자 지모가 술집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물고 있었다.
“저번에 쫓아갔던 여자 말이에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뭔가 더 묻기 전에 나는 재빨리 말했다.
“놓쳤어.”
“연거푸 두 번 다요?”
착실한 내 파트너는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대답하기 곤란하셔도 언젠가는 설명해주실 거죠?”
나는 담담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갈아탄 마을버스 안에서, 버스정류장에 내려 걷는 내내 나는 사람들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들 중 나를 아는 이가 꼭 있을 것만 같았다. 역시나 자꾸 뒤가 당겨 돌아보니 각진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남자가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내가 인사를 하자 남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를 아세요?”
예상 밖의 상황에 정작 놀란 건 나였다.
“절 모르세요?”
이번엔 상대가 당황했다.
“아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다시 보니 아닌 것 같네요.”
말을 마치자 남자는 빠르게 나를 스쳐갔다. 깡패 서너 명은 때려잡은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오늘 나에게 말을 걸어온 낯선 얼굴들을 떠올렸다. 어제 내게 말을 걸어온 낯선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나를 아는 걸까. 나는 정말 그들을 알고 있는 걸까.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거리도 낯설고 사람들도 하나같이 낯설었다. 가로등이 하나 둘 밝혀지더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한동안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있는데 저만치서 아내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제야 내가 더 이상 낯선 길 위에서 우는 소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 반가워 그녀를 향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나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아내 역시 기뻐서 펄쩍 뛰었다. 고무공이 시멘트 바닥을 울리는 것처럼 소리 없는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차오르는 기쁨을 누르고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몰라보면 누가 당신을 알아보겠어.”
막상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양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의 머리 위에 턱을 얹고 고개를 숙이자 코끝이 그녀 정수리에 닿았다. 아내의 냄새가 맞았다. 여보, 하고 부르자 그녀가 응, 하고 대꾸했다. 아내의 음성이 맞았다. 나는 안심하면서도 한편 초조한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아내가 맞아. 아무리 낯설어도 내 아내가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