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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남궁산 판화가 |
나는 너에 대해 쓴다. 솟구침, 태양의 계단, 조약돌이 되는 섬; 깊은 수심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나는 너를 잊곤 한다. 로로, 네 빛깔과 온도를 나는 안다. 네 얼굴이 오래도록 어둠을 우려내고 있는 것을 안다. 더 이상 깊지도 낮지도 않은 맨살 같은 나날을 로로, 나는 안다. 네가 생각에 잠길 때 조금씩 당겨지는 빛과 무관한 조도를 안다. 마음에 마음이 부딪혔다. 소리가 났다. 그쯤은 네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내 망각은 너의 미래에서 쑥쑥 자란다. 마을은 물에 잠기고 고통은 가장 가볍다. 로로, 내 한 살 된 부엉이를 로로라 부를 때 날개에 대해 적고 싶은 두려움도 모른 채 쿵쾅이는 마음을 너는 알까? 여긴 쓸려갈 거야, 온 마을의 고양이가 낮 동안 밋밋하게 비상하는 것을, 환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너는 알까? 로로, 우리 모두는 네 내면과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형상이었다. 우린 오래도록 있어도 고요한 줄 몰랐지. 나는 오늘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내일도 빛을 삼키고 반짝일까 무섭다. 사지를 갖추고 내일이 지상에 엎드릴까 무섭다. 로로, 나는 널 부르면서 여전히 네가 고스란히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동안만은 날 잊곤 하는 걸까. 로로, 네가 들린다. 언제일까? 로로, 나는 너에 대해 쓴다. 내면에 내면이 쏟아졌다. 카스트라토 구름, 비틀림, 작은 의식, 이런 것들을 떠올리곤 하다가 나는 다시 너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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