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지만 신호는 확실히 잡혔다.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작고 동그란 구체가 맵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산책이라도 하듯 골목 사이사이를 배회하던 구체는 어쩌다 한 번씩 멈춰 서기도 했다. 하늘이라도 올려다보는 걸까. 아니면 새나 고양이를 만났나. 나는 맵을 키워 구체가 돌아다니고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재언 선배가 살던 동네였다.
그럼 이 사람 정말로 산책 중이잖아.
맥이 탁 풀리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거치대에 휴대폰을 받쳐두고 팩맨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부지런히 누비는 구체의 행방을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살폈다. 신호가 멈추면 맵을 눌러 그곳을 함께 둘러보기도 하면서. 애초에 행동거지가 불안정한 환자의 위치를 보호자가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이 미나스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구체를 누르면 가장 가까운 CCTV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거리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구체는 작은 공원을 한 바퀴 돌더니 이윽고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새 담배를 사서 불을 붙이는 선배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편의점 앞에 멈춰있던 구체는 한순간 갑자기 사라졌다. 어쩌면 거기서 큰 개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어떤 동물이든 좋아했지만 큰 개만큼은 무서워했으니까. 어릴 때 줄이 풀린 도사견에게 허벅지를 물린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이빨이 완전히 박혔었어. 거의 관통했다니까. 선배의 허벅지엔 그때 생긴 흉터가 남아있었다. 성장과 함께 피부가 팽창하면서 모양도 질감도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했지만 본래의 흉터를 알 길 없는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소리굽쇠처럼 보였다. 그건 선배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선배의 두려움을 공명시키고도 남을 만큼 거무죽죽하고 무서운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빠 펭귄이 다 똑같이 생긴 새끼 펭귄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기 자식을 찾아내는지 알아?
언젠가 선배가 그렇게 물어왔던 적이 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나는 선배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피부의 양감을 따라 점자를 읽어나가듯 그 흉터를 매만지는 데 느슨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울음소리를 듣고 안대. 배고파서 빽빽거리는 새끼 펭귄 무리 사이에서 정확하게 자기 자식 울음을 분간해서 사냥해온 물고기를 먹인다는 거야.
대단하네요.
그치. 그러니까 그 흉터는 말하자면 내 울음 같은 거야. 수십억 인간 중에 유일한 내 특징. 자그마치 눈을 감고도 보이는 흉터잖아. 아픔이 크고 그 통증이 구체화될수록 개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목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쓸쓸해서 나는 선배가 울고 있는지 확인했다. 선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소파의 한 귀퉁이를 밝히고 있는 햇살의 파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선배는 뭔가 예감했던 걸까? 자신이 머잖아 어떤 흉터이자 울음으로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얼마간 더 신호를 기다렸지만 구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앞으로 며칠은 또 잠잠할 테지. 한 번씩 신호가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내 기분은 터질 듯이 부풀었다 맥없이 고꾸라지길 반복했다.
선배의 신호가 처음 감지된 건 삼주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무렵이었다. 미나스 시술을 받은 사망자들 중 간혹 gps 신호가 잡히는 경우가 있다는 얘길 뉴스로 들어 알고 있었다. 생전에 수집된 gps 신호가 앱 내에서 무작위로 재생되는 현상으로, 업데이트 버전을 설치하면 해결될 간단한 버그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죽은 부모나 자식, 애인, 친구로부터 신호를 받은 이들이 정신적인 고통과 피해를 호소하며 미나스 제작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뉴스를 들으면서도 사용자가 죽으면 자동 소실되리라 여겼던 데이터가 남아있다는 것에 은근히 놀랐을 뿐 내가 같은 일을 겪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배의 신호를 받은 그날 오후에 나는 청첩장에 넣을 문구를 고르는 중이었다. 업체에서 예시로 보내준 문안들은 하나같이 상투적이었으며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게다가 아주 전형적인 단어들로 운명을 예찬하고 있었다. 운명이라. 아무리 청첩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하객들이 그런 걸 믿을 리가 있나. 나는 운명이란 말을 쓰는 사람을 곁에 둘 순 있어도 뼛속까지 신뢰하진 못할 것 같았다. 세상엔 수많은 우연과 필연만이 배차 간격이 제멋대로인 버스처럼 찾아올 뿐이다. 말하자면 운명이란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특급 열차 같은 거였다. 나는 적당히 포멀한 문구를 선택했다.
삭제하는 것도 잊은 앱으로부터 띵, 하고 익숙한 알람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미나스였다. 알림 팝업을 눌러 앱에 들어가자 작은 구체가 익숙한 맵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듯이. 참으로 선배다운 타이밍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우연은 기다리지 않은 자에게, 필연은 기다린 자에게 오라.
아무도 그 문구를 누가 붙여놨는지 알지 못했다. 동아리 내에서 인간 나무위키로 불리는 최고학번 윤 선배조차 그 출처를 몰랐다. 그 사실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로 자신이 입부했을 때도 붙어있던 건 확실하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최소 십 년은 됐다는 얘기였다. 코팅된 문구는 네 귀퉁이가 살짝 벌어지긴 했지만 종이는 색바램도 없이 깨끗했고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이 동방 한쪽 벽면에 부적처럼 꼿꼿하게 붙어있었다. 나는 오며가며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문구를 쓴 이는 대체 어떤 우연과 필연의 순간을 직면한 끝에 그러한 깨달음을 얻었으며 왜 그 깨달음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않고 자필로 일필휘지 세로쓰기 하여 하필 동방에 내걸었는지를 추측해보곤 했지만, 내 추측이야 어찌됐든 간에 연영과 동아리에 걸맞은 문구임을 부정할 순 없었다.
재언 선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문구가 먼저 떠오른다. 선배가 그 문구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일 년 365일 중 200일 쯤은 산에 틀어박혀 다큐를 찍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히 날아오르는 산제비나비 무리를 찍기 위해 시험도 패스하고 산초나무 덤불 속에서 사흘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꼼짝없이 엎드려있었다는 그의 일화는 유명했다. 그는 우연과 필연을 결정짓는 것은 오직 기다림뿐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우기자필기자.” 멋대로 줄인 문구를 단골 건배사로 쓸 정도였으니. 나는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술이나 마시는 선배가 부끄러웠다. 4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이나 취업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불편했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그런 선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동방에서 처음 선배를 만나 그의 얼굴을, 그 흔들리는 눈을 본 순간부터 쭉 아슬아슬하다고 느꼈다. 내 눈에 포착된 그 불안정함은 선배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짧은 시간 동안 내 눈을 선배에게 붙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내가 보기에 선배는 늘 무리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면서 은밀한 방법으로 자신을 혹사하고 있었다. 나는 선배의 근처를 배회했다. 눈을 떼면 선배에게 아무도 책임지지 못할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건 아마도 양치기 개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믿는 우연과 필연이 좋은 방향으로 그를 인도해주길 바랐다.
선배는 무제라는 제목의 다큐를 몇 년째 만들고 있었다. 한 달에 두어 번쯤 동방에 나타나서 마지막 상영으로부터 고작 5초 내지 8초쯤 늘어난 영상을 틀어주곤 했다. 소금쟁이처럼 팔다리가 길고 턱엔 푸릇한 수염 자국이 늘 버석하게 피어있던 그의 몰골은 농담으로라도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차가운 프로젝터 빔을 맞으며 자신의 작품을 삐딱하게 서서 들여다보는 창백한 옆얼굴만은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무제 속에 담긴 동식물들은 탈각이나 교미하는 벌레부터 동공이 좁쌀만 한 설치류, 초등학생에 비견할 만한 덩치의 맹금류, 벼락같은 뿔을 가진 사슴과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몹시 다양했다. 좋게 말하면 다채롭고 나쁘게 말하면 개괄적인 자연도감. 더 심하게 말하면 노래방에서 뮤직비디오 대신 틀어주는 자연의 신비와 크게 다른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이 명백해 보이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선배는 꾸역꾸역 5초를, 어떨 때는 8초를 이어 붙여왔다. 화면 안에서 삶은 계속 이어졌다. 목격되는 모든 종류의 생명을 찍고 나서야 무제는 완성되는 걸까. 무제에는 죽음의 순간을 직면했거나 죽은 동식물은 전혀 찍혀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그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사실 그가 찍고 싶었던 건 변태한 삶이 아니라 탈각된 죽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삶에 대한 끝없는 무력감이 느껴지곤 했다. 철저히 죽음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화면 너머의 죽음을 인식하게 하고자 하는 게 목표였다면 적어도 나에게만은 성공한 셈이었다. 숨김으로써 부각되는 진실 같은 것.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부력하는 것. 선배는 그런 걸 가지고 있었다. 깨달았을 땐 나는 은근히 그를 선망하고 있었다. 사흘이나 엎드려 굶주림과 피로에 찌들어가며 찍고 싶은 무엇이 나에겐 없었다. 영화를 하고 싶으면서도 영화가 뭔지 무엇이 영화가 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카메라를 들지 않을 때 선배는 몹시도 따분하다는 얼굴로 동방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편의점에서 파는 위스키를 동방 냉장고에 킵 해두고 독주를 아껴 먹는 노인네처럼 구석에서 홀짝거렸다. 몽롱한 눈으로 이상한 계보를 그리기도 하고 노선도를 외우듯 나비며 벌레 이름을 웅얼거리다가도 동방 문손잡이가 돌아갈라치면 귀신같이 누가 들어올지 알아맞히곤 했다.
사람마다 발소리가 다르거든. 너는 좀 엉겨 붙는 느낌?
선배의 긴 손가락이 내 이마를 콕 찍었다. 아마도 무릎을 스치며 걷는 버릇을 말하는 거였을 테지만 엉겨 붙는다니. 그 말이 부끄러워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가 처음으로 선배가 내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내 이름은 끝내 헷갈려 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원했던 건 선배가 은근하게 자신을 혹사하듯, 같은 방식으로 그를 지켜봐주는 것뿐이었으니까. 내가 선배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선배는 방학에도 아랑곳 않고 카메라를 들고 도사처럼 여기저기서 뜬금없이 신출귀몰하다가 졸업을 한 학기를 남겨두고 돌연 휴학을 한 뒤로는 학교에서 아주 종적을 감췄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가 졸업한 다음 학기에 겨우 졸업을 했다고는 들었으나 무엇을 하려고 한다든지, 하고 있다든지 하는 소식은 끝끝내 전해지지 않았다.
이후로 나는 선배를 잊고 살았다. 기다리지 않았으니 선배와 재회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의 힘이었다.
그와 다시 만난 건 내가 졸업한 뒤로 5년이나 지난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였다. 그때는 나도 선배도 영화나 다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초대권을 받기로 한 지인에게서 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먼지 쌓인 스위치가 눌러지듯 선배의 이름과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떠올랐으나 실제로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벽에 바투 서서 포스터를 뚫어버릴 듯 보고 있는 선배를 한눈에 알아봤다. 선배는 아니었지만.
연영과 12학번 오현수요.
이름을 듣고도 기억해내지 못하더니 내가 머리 위로 잔을 흔드는 시늉을 하면서 선배 머리에 술 쏟았던, 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아아, 그 덜렁이! 하며 웃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 잔을 들고 테이블을 돌다가 발을 헛디뎌 선배의 머리 위에 술을 쏟았었다. 완전히 잊고 있던 일이었는데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자 조바심이 머리를 쥐어 짜내 기억을 뱉어낸 것이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보다 몸이며 얼굴에 살이 붙어 전체적으로 통통한 소금쟁이처럼 보였고 제법 호방하게 웃을 줄 아는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선배가 명함을 팔 만한 직업을 가졌다는 데 놀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가 건넨 명함엔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얇은 폰트로 맹그로브 심재언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맹그로브?
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그런 반응엔 익숙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상처 입거나 도움이 필요한 야생동물들에게 셸터를 지어주는 곳이야.
나는 선배를 티비에서 보게 될 줄 알았는데.
티비에서? 나를? 왜?
왜 그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 있잖아요. 선배 거의 드루이드였잖아. 아직도 찍어요, 그거? 무제.
이야, 기억해주다니 영광인데.
어물쩍 대답은 피하면서도 선배의 눈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내 얼굴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어디 더 해봐, 하는 식으로.
나 다른 것도 기억하는데.
뭐를?
우기자필기자.
그것을 신호로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갔다. 처음에는 역전에서 가볍게 치맥으로 시작했던 것이 배가 부르다는 핑계로 자리를 옮겨 곱창전골에 소주로 안주와 주종이 바뀌고 정신을 차렸을 땐 양꼬치집에서 중국술을 마시고 있었다. 선배는 도쿠리에 담긴 연태고량주를 눈을 감은 채로 홀짝홀짝 마셨다. 동방에 틀어 앉아 위스키를 아껴 먹던 그의 얼굴이 오버랩 됐다. 술이 오른 그는 운 사람처럼 눈가가 붉었다.
나보다 먼저 쓰러지면 또 술 부어버릴 거예요.
선배는 대답 없이 입을 비틀어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비밀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술을 더 먹일까. 그런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선배는 겨우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술병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는 취기에 흘러내리듯이 테이블 위로 쓰러지더니 차가운 테이블에 뺨을 대고 아, 시원하다 시원하다 중얼거렸다. 얇은 머리칼이 내 쪽을 향해 돌풍을 맞은 억새처럼 멋대로 뻗쳐있었다. 손을 뻗어 그것을 정리해줄까 말까 고민하는 스스로가 맹랑하게 느껴졌다.
그림=조미형 작가
선배, 자요?
사실 나는 오전 시험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동방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선배의 얇은 잠바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그의 몸에 테두리처럼 달라붙어 있던 그 허물과도 같은 얇은 잠바에서는 축축하게 젖은 흙과 말라붙은 비 냄새가 났다. 그대로 심으면 뭐라도 피어날 것 같은 냄새. 사람이 아닌 흙의 체취. 맡고 있자니 몸속에서 뭔가가 꿈틀꿈틀 움틀 것만 같았던, 간질간질 몸을 깨우던 냄새. 아직도, 그 냄새가 날까? 나는 무릎을 굽힌 채로 일어나 선배의 목덜미 쪽으로 몸을 숙였다. 너무 급하게 몸을 기울인 탓에 마치 다이빙을 한 것처럼 눈앞이 아득해졌다.
*
꿈은 항상 그렇듯 급강하하는 감각과 함께 끝났다.
나는 신우의 목덜미에서 눈을 떴다. 선배의 꿈을 꾼 날이면 정신이 온전해질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다 일어나야 했지만 오늘은 신우가 곁에 있으니 서둘러 정신을 추슬러야 했다. 나는 어깨에 둘러진 묵직한 팔에서 천천히 몸을 빼냈다. 그를 깨우지 않고 먼저 씻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는 샵을 최종적으로 셀렉하기 위해 플래너와 미팅을, 그는 신혼집에 가서 오늘 배송예정인 가구들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잠을 깨웠는지 신우가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거 아스파라거스랑 다른 거지?
그가 줄기콩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플래너랑 미팅 끝내는 대로 집으로 갈게. 이번엔 진짜 끝장을 볼 거야.
아냐, 어차피 기사님들이 설치까지 해주시는데 뭐. 도와줄 건 없으니까 어머님이랑 저녁 먹고 천천히 와.
그가 내 접시 위에 계란프라이와 구운 줄기콩을 덜어주었다.
그래도 돼?
자기가 자잘한 것까지 체크하느라 더 바빴잖아. 이게 뭐라고. 내 눈치 보지 마.
알았어. 엄마 좋아하겠다. 안 그래도 요즘 좀 우울해하셨거든.
그럼 아예 자고 오는 것도 괜찮겠네.
그러는 게 후환이 없을 것 같긴 해.
끝날 것 같지 않던 결혼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가구가 다 들어오면 각자의 짐을 신혼집에 옮긴 뒤 식까지 남은 3개월 동안 각자의 집을 오가며 편하게 생활하기로 했지만 신혼집이 출퇴근하기에 한결 편한 위치라 신우는 침대가 들어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나도 곧바로 들어와 살길 원하는 것 같았지만 짐짓 모르는 척할 작정이었다. 종잇장처럼 얄팍할지라도 자유는 자유였다. 기혼자가 되기 전에 누릴 수 있는 기한제 자유. 모르긴 해도 나는 분명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거였다. 텀블러에 진하게 내린 커피를 담아 식탁에 올려두고 신우에게 인사를 한 뒤 나는 집을 나섰다.
볼에 닿는 바람이 매서웠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히터를 틀고 시트를 한껏 뒤로 젖혔다. 신우가 내 침대를 쓴 날이면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결렸다. 침대가 둘이 눕기엔 좁은 탓도 있지만 살을 붙여오는 그의 잠버릇 때문에 늘 어딘가 짓눌린 채로 새벽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슬쩍 몸을 돌려 품에서 벗어나도 그는 집요한 사냥꾼처럼 나를 옭아맸다. 신혼집이 큰 가구들을 넣기엔 빠듯한 평수임에도 침대만큼은 고민할 필요 없이 퀸 사이즈를 고른 이유였다. 요즘엔 싱글 두 개를 붙여서 쓰기도 한다지만 경계가 생기면 그는 자신의 영역을 등지고 몰아붙이듯이 몸을 붙여 올 것이 뻔했다. 사냥 당하는 밤. 그런 매일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휴대폰을 꺼내 무음 설정을 풀었다. 선배는 오늘도 잠잠했다. 편의점 앞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로 며칠째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신호는 사나흘에 한 번, 길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타나 수분 동안 위치를 표시하다가 돌연 사라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렸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진지하게 신호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배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오류일 뿐인데. 오류를 오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그 안에서 뭘 찾으려고 하는 걸까. 이제 와서 대체 무엇을.
선배와 연인으로 지냈던 시간은 삼년 남짓. 아무리 좋게 말해도 순조로운 연애는 아니었다. 선배는 서식지를 잃거나 다쳐서 자생이 어려운 야생동물이 임시로 묵을 수 있는 셸터를 설치하기 위해 전국의 야산을 누볐다. 산을 떠나지 못할 팔자였다. 설치한 셸터의 관리와 회수. 대외적인 업무는 그것이었으나 올무나 덫에 걸린 동물이 발견되면 일대를 뒤져 추가적인 피해가 없는지 확인하고 불법엽구를 제거하는 일도 했다. 겨울엔 거기에 먹이 주기 활동이 추가되었다. 그의 휴대폰엔 구출한 가마우지나 금개구리, 솔부엉이, 하늘다람쥐 따위의 사진이 빼곡했다. 무제의 연장선이었다.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선배는 여전히 삶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선배를 여전히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선배와 나는 각자 일을 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필요한 방식으로 곁에 있어주진 못했다. 우리의 문제는 서로를 존중하는 동시에 멸시한다는 거였다. 그맘때 나는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촬영을 다니느라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영화를 한답시고 말아먹은 건 비단 인간관계나 프라이드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프리랜서 사이트에 포트폴리오를 올리고 개인 계정을 만들어 가리지 않고 일을 받았다. 들어오는 일은 주로 웨딩이나 기업 홍보물, 워크숍 촬영 같은 것들이었다. 목적이 분명한, 그 어떤 문제의식이나 감정이 끼어들 틈 없는 촬영들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대상의 이름과 얼굴만 바뀌는 누가 찍어도 그만인 영상들. 이름을 빼더라도 내 작품임을 알아주십사 열망했던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 페이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매달 대출금을 갚고 적금도 들었다. 마음이 편하니 달고 살았던 수면유도제도 자연스럽게 끊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은 나의 전향을 포기선언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지만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내 부끄러움의 원인은 돈이 아니라 찍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했던 알량한 자존심에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걸 내려놓고 나자 세상이 한결 명료하게 보였다. 하지만 선배의 생각은 달랐다. 한 번도 먼저 얘길 꺼낸 적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는 내가 찍은 작업물을 보려고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것이 나를 위한 배려라도 되는 양. 내 작업물을 모른 척하면 그가 믿고 있는 나의 감독적 소양이나 프라이드가 보존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선배의 그러한 믿음은 역으로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가 다르다고 믿고 있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기점으로부터 우리는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두 갈래뿐인 연인이라는 관계의 생태 안에서 헤어지는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고. 새벽녘에 내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를 끌어안고 애틋함을 느끼면서도 다가오는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이 이별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만일 선배의 몸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건강하게 헤어지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돌고 돌아 처음 피팅한 곳으로 숍을 결정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신우에게 가구는 잘 도착했으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나는 이쪽도 일정을 잘 마쳤다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곧바로 식사 후에 혹시 마음이 변하면 넘어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자고 오라던 게 본인이라는 걸 잊은 걸까. 나는 귀가 축 처진 토끼 이모티콘을 보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편히 자고 싶었다. 가뜩이나 여기저기 결린 몸을 이끌고 숍을 오가느라 피곤이 더해진 상태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숍 근처에 바 자리가 딸린 덮밥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매한 시간대임에도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바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 적당한 곳에 앉아 주문을 했다. 그 사이 신우는 포기하지 않고 도착한 침대와 소파 사진을 차례로 보내왔다. 마지막엔 회심의 일격인 양 셀카까지 끼워져 있었다. 강아지처럼 크고 선한 눈. 신우는 선배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외형은 물론 몸도 성격도 풍기는 분위기며 목소리까지. 교집합이라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선택한 사람이기도 했다. 선배의 특징과 형질을 모두 배제하고 남은 사람을 골랐다는 게 맞겠지. 선배가 선배로서 온전할 수 있게끔. 다른 누군가가 선배와 닮은 어떤 것을 휘둘러 그를 훼손할 수 없게끔. 그렇게 따지면 신우는 내가 만들어낸 필연인 셈이었다. 신우는 선배의 존재를 모른다. 지난 연애가 좋지 않게 끝났다고만 했을 뿐인데 금기를 다루듯 신경 써주어서 이후로 내 입으로 언급할 일이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 친구가 죽은 전 애인이 보내오는 신호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식사 대신 커피 약속을 잡고 엄마의 집으로 가는 길에 알림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내내 그 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확인해보니 아무런 길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맵 위에 구체가 움직임 없이 박혀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맵을 축소해보니 그곳은 길이 아니라 산이었다. 위치를 복사해 지도에 검색하자 익숙한 산명이 떴다. 선배가 무제를 찍던 시절부터 자주 가던 속리산이었다. 우연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필연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라. 왜 하필 지금 그 말이 떠올랐을까. 나는 네비게이션에 새 목적지를 입력하고 핸들을 틀었다.
선배의 몸에서 이상이 발견된 건 만난 지 일 년쯤 됐을 때였다. 그는 매끈한 노면에서도 자꾸만 넘어졌다. 삐끗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기 발에 걸려 크게 넘어지는 식이었다. 다리에 자꾸만 힘이 빠진다고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보양을 한답시고 오래 끓인 음식들을 찾아 먹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수저도 제대로 쥐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밥을 먹는 도중에 그의 손가락 사이로 수저가 맥없이 빠져나갔다. 놓친 게 아니라 쥘 수 없어 떨어뜨린 거란 걸 알고는 서로 놀랐다. 선배의 손을 잡자 작은 물고기를 쥔 듯 근육이 튀며 파득거렸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무력하게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선배의 몸속 신경들 중 운동신경만이 선택적으로 사멸하고 있다고 했다. 점진적인 사지의 쇠약과 위축으로 몸이 굳어가다가 결국엔 호흡근까지 마비될 거라고도 했다. 루게릭병의 증상이었다. 선배가 보이는 증상과 진료, 근전도 검사 결과 모두 같은 결과를 가리켰다. 이후엔 비슷한 증상을 가진 다른 병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MRI와 뇌척수액 검사, 골밀도 검사 등 굵직한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은 3년에서 5년. 하지만 그중에서 10%의 환자는 10년 이상 생존하기도 한다고, 치료제는 현재로선 없지만 세계 전역에서 진행 중인 임상이 300여개가 넘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의사는 말했다. 희망을 잃지 말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에게는 그 말이 종래엔 반드시 희망을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선배는 확진 판정 8개월 만에 용변을 보고 변기 버튼을 스스로 누르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왼쪽 종아리부터 시작된 근력 약화는 왼쪽 팔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튀어 팔다리가 꿈틀거렸고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금세 지쳐서 외부활동이 어려워졌다. 발 앞부분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을 때 발등이 자꾸 아래로 처졌고 그 감각을 인식하지 못해서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오래된 멍과 새로 생긴 멍의 합작으로 선배의 다리는 늘 꽃핀 듯 울긋불긋했다.
휠체어를 사야겠어.
마치 새 휴대폰을 사야겠다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선배가 말했을 때 나는 결국 잘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선배는 나무토막 같은 손으로 내 등을 쓸어주며 괜찮아, 괜찮아 했다.
미나스 시술을 먼저 제안한 것도 선배였다. 환자의 생체정보와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는 그 작은 칩은 갑자기 선배에게 마비 증세가 오거나 쓰러졌을 때 도움이 될 거였다. 선배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시술을 받았다. 시술은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간단했다. 이후로 나와 그의 어머니는 보호자 권한으로 선배가 어디에 있든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맵 위에 떠있는 작고 희붐한 구체. 나는 그게 꼭 영혼의 결정 같다고 생각했다.
자취집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간 선배는 사나흘에 한 번은 대형 택시를 불러 국립공원이며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대동할 때도 홀로 갈 때도 있었다. 나도 종종 동행했다.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거나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견딜 때와는 달리 산에 가면 통증 때문에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이 서있던 선배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평소만큼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내 팔을 붙잡고 쇳소리를 내뱉으며 산책로를 오르는 그의 손마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산에서 뿜어 나오는 불가해한 에너지가 선배를 감싸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산책 대신 나무 등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동자만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바람의 행로를 쫓았다. 몸이 굳어갈수록 정신과 감각은 오히려 겹이 벗겨지며 야생동물처럼 예리해지는 듯했다. 그의 귀는 작은 바스락거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낙엽 위로 열매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 새가 앉아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 꽃잎을 가르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
선배는 그 모든 소리를 흘려보내지 않고 차곡차곡 귀에 개어 넣었다. 무위에 대한 존중이 담긴 작업이었다. 그 순간에 선배에겐 잃어버린 기회나 굳어가는 육체, 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직 그 순간만큼의 삶이 고요하고 치열하게 흘러갈 뿐. 나는 그제야 그가 왜 그토록 생의 흔적에 집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소리들은 선배의 몸 안에서 고이지 않고 흐르며 선배를 채우는 무엇이 될 것이었다.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는 살이 되어줄 것이었다.
산을 내려갈 때 그는 신기하게도 올라갈 때보다 조금 무거워져 있었다. 휠체어를 미는 내 손에 번번이 땀이 찼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카메라를 챙겼다. 어떤 예감에서였다. 무언가를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 실로 오랜만에 찾아든 감각에 가슴이 뛰었다. 잦은 출장으로 활동성 좋은 여벌의 옷과 신발은 항상 차에 구비되어 있었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두꺼운 플리스와 바람막이를 껴입자 한결 든든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매표소가 있는 법주사에서 세조길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의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함께 와본 적이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선배는 이후로 다시 속리산을 찾지 못했으니 지금 나타난 신호는 함께 산을 올랐던 날의 데이터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호의 발신지가 어딘지 대충 짐작이 갔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발끝에 힘을 주어 걸었다. 이틀 전에 전국적으로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붙어 있었지만 평지나 다름없는 세조길을 걷기에 무리는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하는 산객들의 얼굴이 저마다 밝았다. 내 쪽을 향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도 내려올 때는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최대한 천천히 폐 속으로 집어넣었다 뱉었다. 코끝이 못 견디게 시렸다.
그림=조미형 작가
점차 험악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반쯤 올랐을 때쯤 문장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보통 산행은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전체적인 산의 풍광이 짐작되는데 반해 속리산은 문장대 정상에 올라야만 노고에 대한 보상처럼 경치를 내어주었다.
예고편 없는 영화 같지 않아? 너무 자신만만해서 예고편도 안 만든 아주 끝내주는 영화.
선배가 했던 말을 되뇌며 문장대 정상을 밟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머리까지 띵했다. 무릎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들자 눈 이불을 포근하게 덮은 암릉과 깎아지른 속리산의 유려한 등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절경에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로 손이 가지 않았다. 내가 찍어야 할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괜히 울컥해 뜨거워진 눈시울을 꾹 눌렀다. 구체는 여전히 움직임 없이 한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가 내 귀에 속삭였다. 다 왔어 현수야. 바로 앞이야. 나는 중얼거렸다. 그치만 여기가 끝이야, 선배. 우리는 문장대까지 오르고 왔던 길로 내려갔었으니까.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는 거야. 왔던 길이 아니라면.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금 내려다봤던 능선들로 이어지는 또 다른 길을 바라보았다.
다시 발걸음을 떼기까진 꽤 큰 각오가 필요했다. 드문드문 앞서가던 이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석양도 능선 너머로 완전히 넘어가 자칫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나를 추동하는 이 예감의 정체를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계속 나아갔다. 숨은 찬데 몸이 접히는 모든 곳에서 땀이 쏟아졌다.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낮은 경사로 반복되었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다가 발을 접질러 넘어진 것은 찰나였다. 반사적으로 한손으로 카메라를 안고 한손은 중심을 잡기 위해 뻗었지만 무릎을 박으며 계단을 굴렀다. 단차가 높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섭게 얼어붙은 땅의 냉기가 엎어진 몸을 곧장 밀어냈다. 일어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돌계단에 앉은 채로 숨을 골랐다. 까진 무릎과 손바닥에서 흙을 털어냈다.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몸이 얼어선지 시큰거리기만 할 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위는 겨우 한 치 앞만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워져있었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카메라의 상태를 살폈다. 돌에 조금 쓸린 거 말곤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였다. 휴대폰도 잘 터졌다. 다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무섭지 않아.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여서 처음엔 잘못들은 줄 알았지만 잠시 기다리자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 분명한 기척이 실려 왔다. 정체가 무엇인진 몰라도 내 쪽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다급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최대한 천천히 돌계단에 등을 대고 누웠다. 카메라를 명치 부근에 고정시켰다. 삽시간에 땀이 식었다. 추위에 턱이 덜덜 떨려왔지만 입술을 꽉 물고 버텼다. 내 기척을 느꼈는지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상대와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는 심정으로 나는 버텼다. 긴장감으로 엮은 밧줄의 끝단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숨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체감으로는 삼십분, 아니 한 시간쯤 지난 것 같았지만 고작 십 여초 정도밖에 안 됐을지도 모른다. 추위와 어둠, 미지의 대상이 주는 긴장감이 나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시킨 것 같았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제 박동을 찾아갔다. 더 이상 숨소리도 거슬리지 않았다. 나는 어둠에 섞여 들었다. 아주 서서히 그 공간에 동화되어갔다.
다시 수분, 아니 어쩌면 수초가 흘렀을까.
어둠 속의 한 지점이 흔들리더니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하얀 꽁지깃으로 눈 비탈을 쓸며 신중하게 발을 내딛는 그것은 새였다. 크기는 꿩과 비슷했지만 긴 꽁지깃은 공작을 연상시켰다. 눈가가 유리가루가 섞인 푸른색 잉크를 쏟은 듯 오묘하고 차갑게 빛났고 머리에 같은 색의 댕기깃이 솟아있었다. 멀리서 보면 눈 속에 파란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일 듯했다. 새는 머리를 두런거리며 자신의 족적을 확인하듯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고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요 속에 눈과 흙, 나뭇잎 위를 밟는 작은 발소리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귀를 두드렸다. 검고 작은 눈이 내게 겨냥하듯 당겨져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새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인사를 하는 듯도 했다. 애타는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놀란 새가 지면을 박차며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하얗고 긴 날개와 늘어진 꽁지깃이 어둠 속에서 성호처럼 빛나다 사라졌다. 찰나였으나 내게는 그 순간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재생됐다. 가슴이 서늘하도록 매섭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나는 고여 있던 숨을 터트렸다. 뜨거운 입김이 피어올랐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그토록 선명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던가.
어느덧 신호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신호를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카메라를 품에 안았다. 그는 무제 안에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