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와 사랑. 꽤 오래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다. 하나가 영원의 일이라면 다른 하나는 찰나의 일이다. 세상을 둘러보라. 무엇이 영원의 일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문학은 이를 뒤집는다. 찰나에 속한 사랑을 마치 영원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기어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끔 한다. 문학은 불안한 희망이다. 덧없는 세계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이 ‘거짓말’을 나는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잡념이 끓어오르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빈 화면에 글자를 채우면, 그리하여 내 안의 언어를 다 토해내고 나면 조금 괜찮아졌다. 말이 떨어졌다 싶을 때 다시 책을 집었다.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래서 내 가방은 늘 무거웠다.
짧지 않은 시간, 문학과 멀어져 있었다. 간절히 원했던 문학과 다시 마주했을 때, 그 감정은 ‘즐거움’이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중독’이나 ‘도취’는 어떨까. 그나마 조금 가까운 것 같다.
나를 비평가로 키워낸 것의 팔할(八割)은 조효원 교수님이다. ‘정확히 길을 잃는’ 방법을 알려준 스승께 오늘의 기쁨을 돌린다. 지난 2년간 나의 글들을 예리한 눈으로 읽어준 김미경·홍지민 선배를 포함한 동료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글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아직 지상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나의 ‘즐거운 편지’(황동규)를 받아 마땅한 이에게.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과 학살.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소녀들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을 뿐.”(김숨, ‘간단후쿠’ 작가의 말에서)
‘간단후쿠’가 돼야 했던 소녀들에게, ‘쓰인 적 없는’ 편지를 보내온 이들에게 뒤늦은 답장을 보낸다. 부질없는 이 기록을 어여삐 읽어주신 김주연 선생님과 세계일보사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얼마 전 거금을 들여 가볍고 부드러운 만년필을 하나 샀다. 그런데 오늘 손에 쥔 이 만년필이 왜인지 무겁고 뻑뻑하다.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아프게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