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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린토피아
강하라
을지로에는 문이 없어서 문을 열 수가 없다 간판 없는 카페들이 벽돌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입구라기보다는 오래된 벽의 단면
우리는 손잡이를 돌린다 손잡이는 돌아가지만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어긋난 시차 속으로 두 몸이 미끄러져 들어갈 뿐
그러면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붉은 실 뭉치를 꺼낸다 그것을 지도라고 불렀다
가지 말아야 할 곳들이 가고 싶은 곳들을 지우며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그런 건 이제 버리고 싶어 나는 손을 끌어 할머니를 의자에 앉힌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맛대가리 없는 빵 씹는다 혀가 아리다는 것은 혀가 있다는 뜻일까 취향은 없고 씹는 동작만 남은 식탁 위에서
할머니는 계속 뒤로 간다 뒷걸음질 치는 것이 유일한 이동 방식인 것처럼
그렇게 스크린 앞으로 도착하고 이민자 여자가 산 정상에 올라 소리지를 때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단 한 번도 소리쳐 본 적 없는 목구멍이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16:9의 화면 비율 밖으로 밀려난 어떤 울음의 총량 같은 것
그리고 빙하가 조금 녹아내렸다는 증거
나는 그가 잠든 사이 지도를 훔쳐 세탁기에 넣는다 울 코스를 누른다 세탁기가 웅웅거리며 붉은 선들을 뒤섞는다 금지된 구역들이 젖은 휴지처럼 풀어지고 철조망이 녹아내려
이제는 지도가 아니고 축축한 양털 한 뭉치
탈수가 끝난 세탁기 안에서 할머니의 구겨진 몸을 편다 그것을 들춰 업고 가로등 아래를 걷는다
붉은 혈관들이 지도처럼 다시 돋아나고 있었다 달이 잠들 때까지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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