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생을 포기해야겠다, 모질게 마음먹지 않는 이상 누구나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고, 또 세상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포기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아직까지는 더 가치 있는 덕목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글쓰기라는 것도 그렇게 다수가 살아가는 평범하고 다양한 모습중 하나라 여기고,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며 살아갈 것.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서툴고 숙련되지 못한 부족을 채우기 위해, 글쓰는 연습과 살아가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심사 위원의 따끔한 질책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흔들리는 차창에 기대 가로수와 전깃줄, 무질서하게 솟은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고 있었다. 추위에 새파랗게 질린 겨울 하늘과 까만 전선 가닥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 그리고 무질서해 보이는 빌딩들도 딛고 선 땅을 배경으로 역시 어디론가로 향해 이어져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내 상체는 마을 버스가 튀는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들썩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신문사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공손히 전화를 받지 못했다. 추운 날씨와 늦게 도착한 마을 버스에 화가 나서가 아니였다. 신문사에 응모를 하고 돌아와 다시 읽어보고는 금방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고쳐 응모하는 수고로움을 몇 번이나 반복하느라 내 자신에게 지친 탓이었다. 늘 하던 '왜?'라는 질문도, 신중히 선택하던 '방법론'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불만들로 가득찬 작품은, 모호했다. 뒤늦게나마 힌트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30, 40년대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중이었고, 버스에 오르기 전에는 막 최명익의 '심문(心紋)'을 읽은 뒤였다. 마음의 무늬… 하지만 나는 아무런 힌트도 얻지 못했다. 응모한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이유를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만약 당선 소감으로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아무런 조건 없이 기회와 용기를 제공해 주셨던 분께 드리는 감사일 거다.<황광수> <약력> △69년 전남 구례 출생 △88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96년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98년까지 전자회사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