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숨이 차오를 때
성 명 : 이수정
모두 달리는데 엄마는 가만히 있었다.

휴대폰 영상을 조금 키워서 보니, 엄마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양 손바닥을 무릎에 붙이고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아니, 숨을 헐떡였다. 혀를 늘어뜨린 채 숨을 마시고 뿜을 때마다 엄마의 꺾인 허리가 점점 더 내려갔다. 파리한 얼굴이 죽을 것처럼 일그러지더니 급기야 숨이 바닥났는지 엄마는 풀썩, 땅바닥에 엎어졌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 이제 맨 앞으로 돌려서 처음부터 봐.

이모가 중환자실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나는 군말 없이 영상을 맨 앞으로 돌렸다. 보조 기구를 쓴 듯 공중에서 찍은 영상에 ‘명주시립병원 주최 고환암 퇴치 단축 마라톤 대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클로즈업되었다. 파란색 글자 가운데 저 혼자 빨간색인 ‘고환암’이 늘어진 현수막 위에서 주먹질하듯 불거졌다. 탕! 출발 신호와 함께 카메라가 움직여 출발점을 잡았다. 티셔츠와 바지를 흰색으로 맞춰 입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움직이는데 엄마는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잡이하듯 이모와 머리를 붙이고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려니 엄마를 찾지도 못했는데 벌써 고단해졌다. 영상을 처음부터 봐야 하는 이유를 물으려는데 이모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느이 엄마, 여기!

폭넓은 머리띠로 앞머리를 올려붙인 엄마는 이모가 짚지 않았다면 못 알아볼 정도로 낯설었다. 기껏 찾은 엄마가 다시 작아지더니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화면에 들어왔다. 온통 흰색인 가운데 언뜻 보이던 노란색…. 그게 엄마였다. 노란색은 엄마가 흰 티셔츠 위에 덧입은 망사 조끼였다. 엄마는 일제히 날개를 파닥거리기 시작한 흰 나비 떼에 물색없이 낀 노란 나비처럼 도드라졌다.

엄마를 도드라지게 하는 건 더 있었다. 주최 측에서 나눠 줬을 파란 리본 핀을 다른 이들은 가슴 한쪽에 달았는데 엄마는 한복판에 붙이고 있었다. 그런 엄마는 다른 이유 일절 없이 오로지 고환암 퇴치를 염원하며 마라톤에 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가 난데없이 마라톤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문은 있었다. 삼 년 전 조 사장을 죽게 한 어떤 암이 사실은 고환암이어서…. 소문은 엄마가 속한 독서 모임인 ‘북새통’ 회원들 사이에서 특히 거셌다. 그러던 게, 엄마가 회원 전원에게 고급 한정식 이용권을 돌리면서 소문의 내용이 슬며시 바뀌었다. 엄마가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이유는 다리를 절었던 조 사장의 생전 회한을 달래려는 것으로, 조 사장이 암으로 죽은 건 맞지만 정확한 진단명까지 구태여 알 필요는 없는 것으로…. 설사 고환암이 맞는대도 그건 가슴 아플 일이지 뒤에서 수군거릴 일은 아닌 것으로…. 엄마가 마라톤을 하는 진짜 이유를 알 만한 사람은 이모뿐이었다. 이 풍진 세상 탈탈 털어봐야 엄마에게 남은 피붙이라곤 이모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모는 엄마와 같이 살지 않으면서 같이 사는 것과 진배없이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나는 명절이나 생일이 돼야 만나는 엄마를 이태 전 바다 지척으로 근무지를 옮긴 뒤로는 거의 안 보며 살았고….

그림=조미형 작가
이모와 나 사이에, 어쩌다 엄마가 낄 때도, 금기어가 있다면 단연코 ‘피붙이’라 할 만했다. 이모 생일에 둘이 밥 먹다 내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온 건 순전히 미역국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한 무더기의 핏덩어리와 함께 말 그대로 ‘피’붙이를 세상에 내어놓고 구겨진 몸을 악착같이 일으켜 챙겨 먹는…. 끈적이는 미역의 질감도 피의 그것과 흡사한 데다 피가 되고 살이 되니 많이 먹으라고, 국을 푸면서 이모가 얹은 말도 한몫했다. 내 입에서 한 번도 발음돼 본 적 없는 단어답게 그걸 말할 때 입자 큰 모래알이 입안에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단어가 나오자 이모는 피 냄새를 맡은 모기처럼 날래게 물컵을 당기더니 거기다 소주를 들이부었다.

―넌 뭐 최순주 여사 피붙이 아니라니.

꼬부라지려는 혀를 진정시키려는 듯, 이모는 한 단어씩 힘주어 말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엄마가 개입될 여지가 보이면 심드렁해지는 나와 달리, 이모는 기민하고 집요해졌다. 평소에도 이모는 엄마가 나를 키웠다는 내 생후 육 년간의 시간을 떠올려주려 용을 썼다. 그때를 기억하기는커녕 기억해내려는 의지나 성의를 보이지 않는 나더러 ‘돌대가리’라며 험한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은 외할머니가 사준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고 좋아하던 순간을 기억하는데 그게 걸음마를 늦게 뗀 생후 22개월이었다며….

―느이 엄마, 마라톤 대회에 나간대.

어지간하면 아는 척 않곤 못 배기겠지. 입술을 실룩여 잇몸에 뭉친 밥을 입안으로 들이미는 이모의 입가에, 늘 지는 시합에서 모처럼 이긴 승리자의 미소 같은 게 떠올랐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물론, 엄마 일이라 궁금한 건 아니었다. 모르는 동네 칠순 노인이 마라톤을 한대도 궁금해질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사람에 대해 애정은커녕 털끝만치의 관심이 없어도 가능한…. 나는 급한 문자에 답을 찍으며 엄마가 왜 마라톤을 하느냐고 물었다.

―느이 엄마가 조 사장한테 시집간 건 다 우릴 위해서였어. 그런데 넌 그걸 당최 이해 못하는 것 같어.

맥락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대답은 이모가 취했다는 신호였다. 맥이 탁 풀리면서 없던 갈증이 올라왔다. 문자를 찍던 휴대폰을 내려놓다 전에 없던 유리가 식탁에 깔린 걸 알아챘다. 말끔한 표면에 밥풀 하나가 들러붙어 있었다. 숟가락을 들어 손잡이 끝으로 밥풀을 문질렀다. 쉬 떨어질 기세가 아니었다. 이모는 평소보다 취기가 빨리 올랐고 취하면 늘 그렇듯,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이미 한 이야기를 무한 반복할 기세였다. 내가 뭘 이해 못한다는 부분에서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두드리는 것도 한결같았다. 같은 소리를 귀 닳도록 들을 때마다 턱까지 기어오르는 말을 삼키곤 했는데 이제는 내놓자는 결심이 올라왔다. 밥풀에 고개를 박느라 이모 얼굴을 보지 않아 그런지도 몰랐다. 애 딸린 과부가 돈 좀 있는 홀아비 하나 잡았는데 그 홀아비가 과부의 딸린 애는 받아주지 않았다는, 그 쉬운 이야기를 이해하고 못할 게 뭐 있느냐고….

그런데 하필 그 순간 밥풀이 유리에서 똑 떨어져, 나는 기껏 ‘애 딸린’ 밖에 내놓지 못했다. 밥풀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이모 앞에 놓인 미역국 속으로 떨어졌다. 컵에 술을 따르던 이모는 그걸 보지 못했다. 술병 머리를 잔에 제대로 겨냥 못해 질질 흘린 술이 식탁 아래로 떨어지자 이모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와중에도 입은 쉬지 않았다.

―태어나 며칠 만에 엄마를 잃었잖니, 느이 엄마가…. 배 타느라 얼굴 보기 힘든 아버지가 새엄마 들여 살 만해지나 했는데, 세상 야속한 이 아버지, 고마 세상 저버리네? 그때부터 중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새엄마에, 이복동생에, 매정한 딸년 수발하느라 꽃다운 청춘 다 보낸 게 느이 엄마야. 정작 자기는 엄마 젖도 못 빨아봤는데!

골백번도 더 한 이야기면서 ‘이복동생’이 등장하는 지점에서 이모의 목소리는 여지없이 흔들렸고 ‘매정한 딸년’에서는 벌겋게 초점 잃은 눈을 내 쪽으로 부릅떴다. 휴대폰 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내가 일어설 참이었다. 어떤 전화든 받을 작정이었지만, 하필 걸려 온 전화는 ‘어떤’에도 끼지 못할 번호였다. 잠시 주저하는 사이, 이모가 밥을 욱여넣은 입으로 ‘느이 엄마가 조 사장이랑 혼인신고를 안 한 건 서류상이나마 널 지키려’ 어쩌고 중얼거렸다. 그나마 처음 듣는 소리라 멈칫한다는 게 그 반동으로 전화기 수신 버튼이 눌러졌다.

상대는 긴 한숨부터 내뿜었다. 용건이 있을 턱이 없는 나는 상대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모는 휴대폰을 코에 갖다 대고 검지로 화면을 위아래로 밀어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통화 상대는 나를 힐책한다는 티를 안 내려 딱할 만치 애쓰며 말을 이었다. 대충 끊으려 ‘그럼’, ‘이만’을 입에 올렸으나 상대는 아랑곳없었다. 열린 창으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운전 중이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하자 덜컥, 전화 끊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잠잠해진 전화기를 잠시 쳐다보았다. 버린 건 그쪽인데 왜 자꾸 버림받은 척하느냐고 말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올라왔다. 코앞에 이모가 있어서 어차피 못 내놓고 말았겠지만….

전화기를 귀에서 떼기 무섭게 이모가 휴대폰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스포츠 뉴스 중간에 들어간 인터뷰 영상이었다. 운동선수치고는 좀 늙수그레해 보이는 두 여자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대고 있었는데 들리는 소리도, 보이는 자막도 일본어였다. 이모가 총각무 대가리를 크게 베어 물기 직전의 입으로 말했다.

―그걸 보고 마라톤을 하기로 작심했대. 느이 엄마, 일본어 잘하잖아. 단추공장 사장 마누라가 일본 사람이었지, 왜.

단추공장 사장도 누군지 모르는 내가 단추공장 사장 ‘마누라’를 알 리 만무했다. 엄마가 일본어를 잘한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언젠가 셋이 인사동을 걷다가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엄마가 일본어로 말한 적은 있었다. 그 기억 속 엄마는 일본어를 할 줄 안다기보다, 어눌하지만 한국어로 묻는 동양인에게 덮어 놓고 일본어로 대답하는 섣부른 사람이었다.

―뭐라는 거냐고 물으니 몰라도 된대. 기껏 궁금하게 만들고 몰라도 된다는 사람, 정말 짜증 나지 않니? 네가 인터넷에라도 좀 물어봐.

이모는 대학 때 내 부전공이 일본어였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블록체인 잡지에서 일본어 번역 아르바이트한 적도 있다고 말할지 어쩔지 망설이는데 영상에서 달뜬 목소리가 들렸다. 막 마라톤 결승점에 들어온 두 여자에게 기자가 뭐라고 물으며 마이크를 갖다 댔다. 한 여자가 말하다 말고 목이 메자 다른 여자가 그 어깨를 두드렸다. 거기서 더 듣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할 걸 뭘 그리 오래 들여다보냐며 이모가 전화기를 되가져갔기 때문이다.

나는 젓가락으로 콩조림 하나를 집으며 여자가 한 말을 되새겼다. 일본어를 놓은 지 좀 돼서, 처음엔 ‘시큐(しきゅう)’가 ‘지구’라는 뜻의 ‘치큐(ちきゅう)’로 들렸지만, 그 여자가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마마(まま)’라고 한 덕에 ‘자궁’으로 고쳐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한 만큼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마라톤 결승점에 들어오는 순간은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가 일시에 터지는 느낌이다… 엄마의 자궁에서 밀려나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

엄마가 뛰는 영상을 제대로 안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이모가 손바닥으로 내 무릎을 세게 쳤다. 얇은 레깅스 진을 입고 있어 맞은 부위가 몹시 따가웠다.

―눈 크게 뜨고 보라니깐! 누가 밀쳤거나 뭔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느이 엄마가 어떤 사람인데 그깟 숨 좀 차다고 정신 줄을 놔!

애먼 내게 삿대질하며 성을 내는 이모에게서 오랜만에 그 느낌이 왔다. 이모가 울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이 오면 이모는 거의 예외 없이 울었다. 그 느낌은, 울음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왔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깔깔대던 중에도 온 적 있는데 그러면 이모는 깔깔대다 말고 울었다. 적중률을 확인하고 싶어 부러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그 느낌은 내가 기다리면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바깥 대기 중 어딘가에 잠복했다가 저 내킬 때만 불현듯 다녀갔다.

그 느낌의 속성을 나름 간파한 뒤로 나는 그게 올라 치면 얼른 화제를 바꾸는 요령을 터득했다. 그러면 아직 눈물까지는 안 나는 수준에서 이모의 울음을 막을 수 있었다. 차라리 화낼 때가 낫지, 이모가 울면 나는 보통 난감해지는 게 아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하면 안 되는지 종잡을 수 없어 무력하게 얼어붙기 일쑤였다. 이모와 살기 시작한 여섯 살부터 그랬다. 엄마가 나를 이모에게 버리고 간 그때부터 죽….

나는 얼른 이모에게 누가 영상을 찍었냐고 물었다. 대학생 둘을 출발점과 결승점에 배치해서 찍고 나중에 두 영상을 이어 붙였다고 설명하는 사이 이모는 서서히 흥이 올랐고 그 느낌은 사라졌다.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머리가 벗어진 초로의 의사와 젊은 간호사가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들었다. 이모가 엄마 상태를 묻자, 의사가 휑한 머리 부분을 검지로 긁으며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모가 비틀, 주저앉으려 했다. 마주 섰던 의사가 반사적으로 이모를 부축하긴 했는데 양 손바닥을 세워 이모의 겨드랑이에 넣는, 좀 야릇한 모양새가 되었다. 내가 이모를 넘겨받듯 해 의자로 데려가 앉혔다. 벗어진 머리까지 붉어져 아까보다 얼굴이 길어 보이는 의사가 이번엔 콧등을 간질이며 말했다.

―다행히 바이털이 돌아오고 있으니 큰 염려는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다만, 심장 부정맥이 있으신 듯한데 이런 경우, 마라톤은 치명적인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엄마의 병력이며 검사 결과에 관해 다소 긴 설명을 하고 이모가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죄인처럼 양손을 깍지 낀 채 “전 몰랐어요.”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두 얼굴을 번갈아 쳐다만 보았다. 격앙돼 말하던 이모가 침을 잘못 삼켰는지 발작적인 기침을 했다. 내가 손수건을 꺼내 이모에게 내밀었다. 손수건을 입으로 가져가는 이모 손에 내 손도 딸려 갔다. 악력이 남다르게 센 이모 손안에서 우그러진 손이 몹시 아팠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내 가방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튀어 오르자 지루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짓고 섰던 간호사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긴급한 전화인 척 일어서며 이모에게 잡혔던 손을 거북살스럽지 않게 빼낼 수 있었다.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중환자실 부근에서 통화하시면 안 돼요.

내 뒤통수를 주시하고 있을 간호사 눈에 중환자실 근처가 아니라고 판단될 만한 곳으로 종종걸음을 쳐 갔다. 모퉁이를 돌아 창가로 다가갔다. 상대가 전화기에 입을 바짝 대고 있는지 휴대폰에서 새 나오는 짙은 숨소리에 귀가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상대에게 어디냐고 물었다.

―수영장입니다.

부동산 중개소나 투자 회사가 아니고 수영장이라…. 중환자실을 가리키는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재게 걷던 여의사가 흘끔 쳐다보는 통에 내 몸이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문유정 님 되시죠? 회원 등록서에 최순주 회원님 가족으로 되어 있어서요.

상대는 말할 때도 숨을 깊게 몰아쉬는 편이었다. 자신을 ‘마스터 곽’이라 소개한 남자는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데도 ‘미스터’가 아니고 ‘마스터’라고 재차 말했다. 수영장 회원 관리 책임자라는 마스터 곽의 말에 따르면, 작년 이맘때 수영장이 ‘그랜드 오픈’을 하면서 아파트 부녀회에 초대장을 돌렸고 그때 엄마가 수영장 이용권을 구매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수심 7미터, 레이스 길이가 75미터로 급이 다른 ‘럭셔리 프리미엄 프레스티지’ 수영장이라 연간 회원제로 운영되지만, 오픈 기념으로 특별히 단기 회원권을 팔았고 엄마가 그걸 샀다. 마스터 곽은 엄마가 수영장에 세 번밖에 오지 않았는데 이용권 유효기간이 다음 달 말에 만료된다고 설명했다. 엄마가 5성 호텔급 스파 이용권도 추가로 샀다고 할 때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림=조미형 작가
―등록하신 분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못 오실 경우, 이용권의 가족 양도가 가능합니다.

나는 ‘등록하신 분’이 마라톤을 뛰다 쓰러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상황을 ‘불가피한 상황’에 대입시켜 보았다. 뒤이어 엄마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딸이 대신 이용권을 써도 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까 이 와중에 수영이나 하고 있어도 될까, 하는….

―최순주 님이 등록하신 수영 강습도 자동 양도됩니다. 언더더씨라고, 육십 대 이상 여성분들로만 이루어진 반인데 이런 경우, 나이와 관계없이 수강하실 수 있어요.

바다 지척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알았는데, 바다 지척에 사는 사람들은 회식이나 단합회 같은 것도 바닷물에 들어가서 하길 좋아했다. 어릴 적, 깊이 모를 호수에 빠진 적 있어 물을 무서워한다는 말 따윈 씨도 안 먹힐 것 같아 하지 않았다. 그쪽 사투리에 익숙지 않아 웃을 타이밍에 잘 웃지도 못하고 바닷물에도 못 들어가는 나는 그들과 단합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확고한 결심으로 바뀐 지 좀 되었다. 회원권을 양도받겠다고 말할 때 나는 주변에 사람도 없는데 창 쪽으로 돌아섰다. 엄마 때문에 병가 낸 일주일 동안 자유형 정도는 익힐 수 있는지 물으려는데 다른 고객이 기다려서 전화를 끊어야겠다며 마스터 곽이 숨 가쁘게 말했다.

―아, 오실 때 가족관계증명서를 꼭 가져오세요.

*

언더더씨의 회장은 마스터 곽이 소개하자 내 손을 덥석 잡았지만 ‘최순주 씨’를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가 수영장에 왜 안 오는지 물을 땐 아예 시선이 딴 데 가 있어 그 틈에 나는 돔 모양의 천장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물보라 이는 바다, 검고 큰 배, 여신 옷을 입은 육감적인 여자들, 정체불명의 동물들….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높고 광활한 천장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드러난 팔다리가 예순을 넘긴 게 확연하다고 알려주는 서너 명의 신입 회원에 이어 회장이 나를 소개하자 나를 대놓고 가리키며 숙덕이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파란색 수영복에 흰 수영모를 맞춰 착용한 마흔 명 남짓 되는 회원들의 박수 소리가 너른 수영장에 울렸다. 답례로 인사를 하려는데 급조한 수영복이 너무 껴 허리가 꺾이다 말았다. 젊은 애가 버릇없어 보이겠다는 염려보다는 나만 노란색 수영복을 입었다는 게 더 마음 쓰였다. ‘L’ 사이즈로 파란색 수영복은 품절이었다. 다행히 수영모는 회장이 여분의 흰색으로 챙겨주었다. 정수리 부분에 마커로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는 ‘초급’ 표시라고 했다.

언더더씨는 레벨에 따라 초·중·고급 세 개 조로 나뉘었다. 인원 점검이 끝나자 안전요원이 안전수칙을 설명했다. 초급 조는 목을 빼고 듣는데 중, 고급 조는 대놓고 떠들었다. 안전요원의 입 모양에 기대 알아들어보려 용을 쓰다 미간이 절로 찡그려질 무렵, 떠들어대던 어르신들의 목이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남자 탈의실에서 강사들이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키가 크고 어깨가 역삼각형인 젊은 남자들이 레인 별로 설치된 다이빙대 위에 올라섰다. 가려야 할 곳을 최소한으로만 가린 수영 팬츠는 몸에 과도하게 밀착되어 살에 들러붙은 듯 보였다. 반복해서 보는 영화를 틀어놓고 “이 대목이 제일 좋아!” 하듯 두 손을 깍지 끼고 쳐다보는 어르신도 있었다. 강사들이 동시에 몸을 날려 입수했다. 나도 모르게 반보 뒤로 물러났는데 희한하게도 물이 튀지 않았다. 강사들이 회원들을 향해 입수하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어르신 회원들이 흩어져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급 조원들은 다이빙대 쪽 사다리식 계단으로, 초급 조원들은 수위가 제일 얕은 쪽 경사면으로 입수하게 되어 있었다. 고급 조원들의 입수 방식은 사뭇 남달랐다. 그들은 반대편을 향해 줄지어 서더니 팔을 쭉 펴고 일정하게 흔들면서 행진하듯 걸어갔다. 고급 조원들이 멈춘 지점에는 커다랗게 ‘수심 3M’라고 쓰여 있었다. 글자의 절반은 물속에 잠긴 채였다. 그쪽 다이빙대 너머 멀리 수영장 끝 쪽에는 ‘수심 7M’ 표시와 더불어 뭐라고 빽빽하게 글자가 박힌 안내판이 따로 서 있었다.

고급 조원들이 하나둘 다이빙대로 올라섰다. 그들이 질서 있게 입수할 때도 아까처럼 물이 튀지 않았다. 수면의 얇은 막을 사람 몸 하나 들어갈 정도로만 찢고 빨려들듯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예순을 넘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치 날렵하게 물 위를 전진해 오는 그들에게 눈을 붙박은 채 나는 초급 조원들 뒤를 따라 움직였다.

물속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동안 수면이 점점 높아지더니 허리를 지나 배꼽을 넘어 명치께까지 올라왔다. 대중목욕탕에 가도 탕에는 절대 안 들어가는 나로서는 평생 처음 겪어 보는 물 높이였다. 아, 호수에 빠진 적 있으니 처음이라 하면 안 될지도…. 나는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코를 너무 크게 벌름대지 않게 조심하면서 밭은 숨을 자주 쉬었다. 강사는 수영장 벽에 설치된 가로 봉을 잡고 엎드려 물장구를 치라 했다. 물 밖으로 뽀글뽀글 거품이 날 정도로만 발을 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강사가 하필 내 발을 잡고 시범을 보였다. 지난밤 발뒤꿈치 각질을 꼼꼼히 없애길 잘했구나 싶었다. 종아리에 온 신경을 모아 발차기하다가 다리에서 쥐가 날 무렵, 강사가 다 같이 머리를 물에 담그고 5초를 견디자고 했다.

―수영에서 가장 큰 고비가 물에 머리를 담그는 겁니다. 그걸 넘으면 반은 된 거예요.

강사는 분명 다 같이하자 했건만 한 어르신이 시범을 보이라며 나를 지목했다. 젊다는 게 이유였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이고 강사가 격려의 박수를 유도했다. 나는 티 나게 떨리는 손으로 머리에 걸쳤던 수경을 끌어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푸르스름한 물이 한입에 나를 집어삼킬 듯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물 밖인데도 숨이 가빠져 나는 애먼 수경을 만지작거렸다. 후들대는 다리는 그나마 물속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 공기를 죄 쓸어 담을 기세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속으로 숫자를 세었으나 머리를 담그지 못하고 숫자만 커졌다. 그 모습이 궁색해 보였는지 강사가 나섰다.

―몰라서 두려운 거예요. 물에 들어가면 그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거예요.

나는 한 줄 숨이라도 샐까,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고 피가 배어날 정도로 이를 꽉 물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새 나오는 한숨이 천둥소리 같았다. 코로 숨을 조금 더 보충한 뒤 물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눈이 저절로 감겨 앞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숨넘어갈 듯 빠른 속도로 ‘다섯’을 세고 얼굴을 들었다.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폭포처럼 흐르는 물을 문지르는데 사방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강사마저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한 어르신이 손바닥으로 수면을 치며 소리쳤다.

―이 아가씨야. 고양이 세수해? 얼굴만 삐쭉 담그면 어째, 머리를 담가야지, 머리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가 강제로 박기라도 하듯 내 머리가 물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순전히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눈알이 꺼질 것처럼, 감은 눈에 힘이 들어갔다. 명상의 달인이라도 된 마냥, 내가 물속에 들어가 있다는 한 가지 생각 외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 보면 좋다는 느낌이 뭔지 느낄 겨를 따윈 없었다. 숨 가쁘게 ‘다섯’을 센 뒤 물 밖으로 고개를 들고 숨을 터뜨리는 순간,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강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뒤로 또 주저하는 사람이 나오자 강사가 이젠 대놓고 내게 시범을 보이라고 했다. 얼떨결에 해낸 일이라 나는 첫 경험을 앞둔 여자처럼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앞서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고양이 세수, 웃음소리, 강사의 크고 흰 이…. 그러자 용기 같은 게 나서 이번엔 어깨를 좀 더 기울여 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물에 머리를 넣고 어깨를 더 기울이니 머리가 덩달아 내려갔다.

이전과 다른 느낌이 있었다. 바닥을 움켜쥘 기세로 온 발가락에 힘을 주고 섰는데도 발아래가 막막한 느낌이 아까처럼 무섭지만은 않았다. 수면 가까이 어깨 쪽 맨살에 미약하지만 뭔가 닿는 느낌도 새로웠다. 숨결처럼 얇은 막이 수면을 덮고 있다가 내 머리가 들어가는 순간, 딱 그만큼만 벌어졌다 도로 닫히는 느낌…. 소리의 느낌도 달랐다. 물 밖에서 웅얼대는 소리가 덩어리로 뭉쳐 비닐 공처럼 수면을 부유할 뿐 물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물속이 아니라 방음 잘된 밀실에 몸의 일부를 디밀고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묘하게 아늑해 천천히 수를 세는 동안 나는 눈도 뜰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사람들의 다리였다. 사타구니까지 드러난 맨다리들이 수몰된 문명의 아이오닉 기둥처럼 적막하게 늘어서 있었다. 얼핏, 숨이 가빠졌다. 아직 숨찰 무렵은 아니었다. 어떤 기시감 때문이었다. 그럴 리 없는데, 물속이 낯익었다. 물속이 낯익은 건지 얼굴이 낯익은 건지…. 거기, 얼굴이 있었다. 맨다리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얼굴은 물결 따라 일렁이면서 표정이 바뀌었다.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물 밖에서 물속의 나를 보고 있었다. 수영장 천장의 그림 속 여신 얼굴이 비친 걸까. 더는 숨을 참기 힘들어 물 밖으로 고개를 들려는데 물결이 잦아들며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안도감이랄까, 두려움이랄까….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개의 표정을 한꺼번에 지닌 여자의 얼굴은 기괴했다. 여자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듯 여자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덮쳐왔다. 나는 비명처럼 숨을 터뜨리며 허리를 세웠다.

요란한 박수 소리가 수영장을 울렸다. 나는 물기를 닦는 척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보는 각도가 달라져 그런지, 과도하게 밝은 조명에 가려 그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물속 얼굴과 엇비슷한 연배의 여자는 나뿐이었다. 죽을 것처럼 숨찬 나머지, 나는 내가 화난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콧김을 뿜어내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조원 모두 물에 머리를 넣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되자 강사는 ‘새우등 뜨기’라는 걸 해 보였다. 새우처럼 몸을 둥글려 등으로 뜨는 연습이었다. 수영장 바닥에서 드디어 발을 떼는 셈이었다. 젊은 데다 머리 넣기를 남다르게 잘했다는 이유로 또 내가 첫 순서로 지목되었다. 나는 가뜩이나 빡빡한 수경을 더 바투 조이고, 볼 빵빵하게 숨을 들이마신 뒤 물속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웅크려 몸피를 줄인 뒤 두 팔로 몸을 싸안았다. 천천히 바닥에서 한 발씩 뗐다. 몸이 기우뚱하며 가라앉을 기세였지만, 어깨부터 힘을 빼니 몸이 떠올랐다. 여자 얼굴이 또 나타나도 볼 수 없도록 눈은 질끈 감았다. 불끈거리는 내 심장 진동이 몸을 감은 양팔에 전해 왔다. 심장 뛰는 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기차 바퀴 소리처럼 아늑했다. 누군가에게 편안히 안긴 느낌이었다. 내 몸이 원하는 최적 온도의 보드라운 막 같은 게 몸을 감싼 듯…. 오죽하면 물속에 더 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네 개울가에서 자맥질하며 스스로 수영을 깨친 사람처럼, 호수 같은 곳에는 일절 빠진 적 없는 사람처럼….

강습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물이 뚝뚝 듣는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니 엄마가 깨어났다는 이모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

내가 병실로 들어섰을 때 엄마는 밥을 먹고 있었다. 꼬박 하루 동안 의식을 잃었던 사람치고는 식욕이 좋아 보였다. 마라톤 대회를 주최한 병원에서 제공했다는 특실에는 2인용 소파와 커피 테이블도 있었다. 병원에 오는 도중에 운전하느라 확인 못한 이모의 다른 문자를 열었다.

원무과에서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영상 판독도 해야 하는데 미적거리고, 공짜라더니 돈 내라는 게 있지 뭐야. 내가 말 바꾸는 엉큼한 인간들 못 참는 거 알지? 느이 엄마 식사 좀 챙겨줘.

휴대폰을 내려놓고 엄마 쪽을 보니, 입가에 미역 조각이 붙어 있었다. 티슈 갑을 집어 내미니 엄마가 티슈 몇 장을 뽑아 요란하게 코를 풀었다. 반찬이 여럿 있었지만, 엄마는 미역국에 말은 밥만 먹었다.

―식당처럼 메뉴판을 다 주네. 먹을 만한 게 이것뿐이지만….

숟가락을 내려놓길래 입을 닦고 싶어 할 것 같아 티슈 갑을 또 내밀었다. 못 봤는지, 엄마가 코 푼 휴지를 도로 집어 입가를 문댔다. 그릇을 하나하나 겹치는 내 손 위에 엄마의 시선이 닿았다. 스테인리스 식기가 부딪는 날카로운 소리에 이가 다 시렸다. 어디서 진동음 같은 게 들려 둘러보니 소파 탁자 위에 웬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보라색 커버에 자잘한 큐빅…. 이모 것이었다. 성가신 진동음에 엄마가 얼굴을 찡그렸다. 다가가 전화기를 집으려는데 진동음이 그치면서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하 변호사’란 이름으로 전송된 문자 앞머리가 화면 위로 솟았다.

언니 사망 시 상속 1순위는 따님이라 자매인 최순영 씨는….

나는 휴대폰을 건드리지 않고 몸을 돌려 침대 쪽으로 갔다. 그릇을 챙겨 쟁반을 들고 문 쪽으로 향하는데 엄마가 누우려는 게 보였다. 이불을 덮어 주려 쟁반을 놓는 동안 엄마가 알아서 이불을 당겨 덮었다.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엄마가 말했다.

―마라톤을 또 한다 그럼, 노망났다 그러겠지?

돌아누우며 말하는지 소리가 뒤로 가며 멀어졌다. 마라톤을 또 한다면 엄마더러 노망났다고 할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짚이지 않아 문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엄마에게 오래도록 묻고 싶었던 일에 관해 묻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모도 없고, 엄마와 단둘이 있지만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을 때…. 이 세상에서 오로지 우리 둘만 알고 있을 그날에 관해 묻고 싶었다. 그때 내가 왜 호수에 빠졌던 건가요, 내가 실수로 빠졌나요, 아니면 누가 날 떠민 건가요, 혹시 젊은 여자였나요, 나는 어떻게 물 밖으로 나왔나요, 누가 날 구해준 건가요, 혹시 젊은 여자였나요, 물속에 있는 날 내려다보며 안도하면서 두려워하던 사람은 누군가요, 혹시 젊은 여자였나요…. 한 번에 하나씩 물어보려 내가 바짝 마른 혀를 뗐다.

―난… 아니에요.

엄마가 내 쪽으로 돌아눕는 기척이 났다. 뭐가 아니라는 거니, 마라톤을 또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니, 마라톤을 또 한대도 노망났다고 안 한다는 거니…. 엄마가 물속에 있는 듯, 내가 물속에 있는 듯 말소리가 좀 아득했다. 대답할 차례인데 나는 아무 말 못했다. 난 아니라니…. 하려던 말도 아니었거니와 뭐가 아니란 건지 나도 알 수 없는 데다 그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이모가 울 것 같은 느낌…. 이모가 없는데 그 느낌이 올 수는 없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 문손잡이라도 잡으려 손을 뻗는데 문이 저절로 열리는 바람에 한 손에 든 쟁반을 놓칠 뻔했다. 이모가 들어서다 내가 든 쟁반을 마주 잡으며 침대 쪽을 보고 말했다.

―미역국은 잘 드셨수?

*

나흘이 지나는 동안 발차기와 새우등 뜨기를 매일 했다. 발차기를 오래 해도 이젠 다리에 쥐가 오르지 않았다. 새우등 뜨기로 물에 들어가 있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강사가 초록색 킥보드를 한 무더기 안고 왔다. 강사는 킥보드를 잡고 발차기로 전진하다가 바닥에 5미터 간격으로 거리 표시된 게 20미터가 되면 몸을 돌려 오라고 했다. 더 가면 발이 바닥에 안 닿을 깊이라며….

강사는 킥보드를 잡고 시범을 보이려 발을 차고 나갔다. 얼마간 가다가 강사가 물에 빠진 척, 수면 위로 손끝만 내보이며 허우적댔다. 거기서 더 가면 안 된다는 제스처 같았다. 그 모습에 웃지 않는 건 나뿐이었다. 발이 바닥에 안 닿아 수영 못하는 사람은 거기서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데 웃음이 날 턱이 없었다. 되돌아온 강사는 자신이 허우적대던 지점을 가리키며 혹여 거길 넘어갔다고 판단되면 당황하지 말고 레인과 레인 사이 줄을 얼른 잡으라고 했다. 유치원 단체 수영 강습이 있는 날이라 안전요원이 곱절로 보강되었으니 안심하라는 말도 했다. 과연, 인원은 늘어나 보였지만 안전요원들은 물 만난 미꾸라지처럼 교사들 손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호각을 불어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림=조미형 작가
강사가 말하는 동안 나는 저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수심 7M’ 글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강습 시작 전, 그 위에 쪼그려 앉아 물을 내려다보았다. 다이빙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리스트 밴드가 없으면 얼씬 못하는데 안전요원의 ‘감시’하에 투어는 할 수 있었다. 바닥이 직각으로 꺾여 절벽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그곳의 물은 색깔부터 달랐다. 더 짙게 푸르렀다. 그럴 리 없건만, 가기로 목적한 곳이라도 있는 듯 기운차게 일렁였다. 팔 놀리는 법, 발 쓰는 법, 다이빙하는 법을 익혀야 갈 수 있는 그곳, 내게는 심해나 다름없는 그곳, 수영모 정수리 부분에 빨간 동그라미가 있는 한은 갈 수 없는 그곳….

너무 멀리 왔다는 걸 깨달은 건 너무 멀리 나가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뭐에 정신이 팔렸는지 바닥의 숫자가 붉은색으로 바뀌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만 했는데 몸이 기우뚱했다. 기울어진 반대쪽에 힘주는 순간 균형을 잃은 내 몸은, 그걸 받쳐 주던 수막이 딱 그만큼 벌어지면서 물속으로 꺼져 들었다. 위로 뻗는 내 손끝에서 수막이 야멸차게 닫히는 게 느껴졌다. 정수리를 부유하던 소리가 일제히 막의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발가락을 곧추세워 더듬었지만, 바닥은 찾아지지 않았다. 양팔을 휘저었으나 벽도 짚이지 않았다. 레인과 레인 사이의 줄도 잡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용케도 새우등을 하면 물에 뜰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연습할 때처럼 몸을 최대한 오므려 양팔로 감쌌다. 물이 깊어서일까. 전과 달리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대로 온몸이 불끈거렸다. 이럴 줄 몰랐기에 미처 비축하지 못한 숨은 이내 가빠졌다. 한 가닥의 숨도 안 남았다고 판단한 순간, 나는 코로 숨을 내쉬었다. 물속에서 처음 뱉어 보는 숨이었다. 숨이 빠져나간 반동 때문인지 눈이 퍼뜩 떠졌다. 코앞에서 뽀글뽀글, 잔거품이 일었다. 거품은 알알이 또 다른 거품을 만들며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 거품 너머로 무언가 보였다. 움직이는 게 있었다. 처음부터 이 물속에 있었던 듯, 아니, 이 물이 시작되는 까마득한 심해에 있었던 듯 아득하게 떠오르며 사선으로 다가드는 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달리고 있었다. 팔을 젓는 게 아니라 다리를 놀려 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입은 노란 조끼가 물을 먹어 나비 날개처럼 나풀거렸다. 그 사람의 가쁜 숨소리가 확성기를 댄 듯 크고 넓게 울렸다.

그 사람이 내게로 바짝 다가들 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자는 오로지 달리는 일에만 전념한 듯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여자가 내 발끝에 당도했을 때 무언가 닿는 느낌이 있었다. 여자의 손이었을까, 어깨였을까. 뭐가 됐든 그게 닿는 순간, 내 온몸의 피가 발끝에서 머리를 향해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몸에 둘렀던 양팔이 스르르 풀렸다. 사방에서 몸을 조여오는 느낌….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스스로 밀어 올려지는 느낌…. 그 느낌은 내 안에서 어떤 의지를 솟게 했다. 그래서 날개를 펴듯 양팔을 벌릴 수 있었다. 팔로 물을 긁어내리자 발이 저절로 물을 찼다. 숨이 차올랐다. 다시 한 번 팔로 물을 긁고 발로 물을 찼다. 한 번 더, 한 번 더….

정말로, 정말로 남은 숨이 없다고 느낀 순간, 몸이 스프링 튕기듯 솟구쳐 올랐다. 수면을 덮은 막이 채 열리기도 전에 머리가 막을 찢고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 무더기,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눈과 귀를 찢어 놓을 듯 덮쳐왔다. 물 밖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숨, 숨, 숨…. 숨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민망하게도, 숨은 울음과 같이 터져 나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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