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일이 절박하지 않아졌을 때 응답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가 다만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것. 시를 무엇보다 우선했던 순간들이 빚었던 과잉들이 씻겨나가고 쓰는 행위만 남았을 때, 일상의 다른 부분들이 시의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예의’를 쓰던 당시에 나는 주변 동료들로부터 수많은 민원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 사건들로 비롯된, 채 지면에 적을 수 없는 감정들을 소화해야만 했다. ‘예의’ 외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의 과정이 있었다. 나는 일상에서 현장들을 맞닥뜨리고 그것들을 적어 보여주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 시의 내부로 들어오는 생활을 밀어내지 않았다. 시 쓰기의 내부에 갇혀 있을 때의 고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일들은 아침에 눈을 쓸어내는 일, 식탁 위에서 맥주를 마시는 일, 소파에 누워 평소보다 일찍 눈을 감는 일. 시 쓰기는 이들 사이 어딘가를 횡단하고 있을 뿐이다. 시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어서 나는 오래 시를 쓸 수 있었다.
제 시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시고 기본기를 다듬어 주셨던 권박 선생님, 대학 생활을 이끌어주셨던 방민호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나의 문학 생활을 함께 해주었던 대학 친구들, 이 지면에 밝힐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름을 다 밝혀 적지 않더라도 나의 정신은 이들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뒤에서 응원해 주었던 가족들 고맙고 사랑합니다. 또 무엇보다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해주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아내 수진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작품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일과 시 쓰는 일을 함께 해나가겠습니다.